한국어 자막에서 이 대사는 어떻게 번역됐을까 궁금하다. 

"좋다. 불알 두쪽 처방전을 써주마." 이런 식은 아니었겠지. 


Scrubs의 경이로운 면 (이 드라마가 수행하는 기적이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닌). 

이상으로서의 남성성의 구제. 마찬가지로, 여성성도 (그것의 이상의 면에서) 구제. 강한 인간의 옹호. 

인간은 어떻게 강해지는가의 탐구. 


HBO나 Showtime같은 프리미엄 케이블 채널 제작이 아니라서 

f-word 비롯해 쓸 수 없는 말들이 많음에도, 쓸 수 없음을 쓰지 않음이 되게 하는 막강한 자체 능력도 가진 드라마. 표나게 도발적이지 않지만, 깊이 반성적이라는 점에서 곳곳이 전복적인 드라마. 



*스크럽스 찬미 많이 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는다. 

잘 되지 않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시도. 앞으로 계속 시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시간 테라피보다 나은 25분. 스크럽스. 


이거 홀릭해서 보던 대학원 시절, 

아 이 드라마는 내 몫의 앳스홀들을 견디는 법에 대한 드라마구나. 

그러면서 뭔가 적어둔 게 있었다. 지금 찾아보니: 


유치원서부터 대학까지 커리큘럼에서 핵심적인 부분이 '인간의 뛰어남(누스바움이 좋아하는 "human excellence")'이 아니라 '인간의 못남'의 탐구라면 어떨까? 그래서 중 2 정도만 되어도, 가령 어지간한 인간 관계의 기본은 악의와 몰이해이며, 아우슈비츠는 현대인에게 올 수밖에 없던 재난이었지 결코 '도저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도저히 말할 수조차 없는' "악"의 실현이 아니었다는 등의 이해를 자연히 하게 된다면 어떨까? 세상이 더 미쳐 돌아가려나?


그 왜 <한나와 자매들> 시작할 때 등장하는 오쟁이 진 남편. 

한참 어린 아내의 한때 선생이었다가 지금은 남편인 그 남자가 

다른 남자 만나다 들어온 아내에게, 지식인과(지식인에게) 홀로코스트... ㅋㅋㅋㅋ 이런 주제로 강의하려 하면서, "인간성을 이해한다면, 홀로코스트가 왜 일어났느냐고 물을 수 없어. 홀로코스트가 왜 더 자주 일어나지 않느냐가 질문이어야지." 


가끔 수업에서도 이 주제로 얘기가 흘러갈 때가 있다. 

나쁜 인간들의 유형학, 악 혹은 악행의 유형학, 이런 걸 세밀하게 탐구할 수 있다면 

감당할 이유가 (가치가) 없는 데미지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damaged beyond repair,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그걸 몰라야만 인생을 살 수 있는 실망들을 모를 수 있게끔. 


하여간 Dr. Cox의 위의 대사는 이건 뭐 세기급 명대사다. 

인간들이 초콜렛이냐? 아냐. 인간들은 배스터드야. 배스터드 코팅하고 배스터드 속을 채운 배스터드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What is the source of our first suffering? It lies in the fact that we hesitated to speak. It was born in the moment when we accumulated silent things within us. – French philosopher Gaston Bachelard (1884 - 1962) #silence #thoughts


바슐라르 quotes로 검색하면 위의 것도 구해진다. 

<물과 꿈>의 결론 마지막 문단. 실제 영어판의 문장은 조금 다른데 (나와 있는 영어판은 1종이니 

위의 번역은 개인 번역인 듯), 이렇게 되어 있다: Where is our first suffering? We have hesitated to say. . . . It was born in the hours when we have hoarded within us things left unsaid. 


내가 했던 번역은: 우리 최초의 고통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말하기를 망설였다. . . . 그것은, 우리가 우리 안에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모아두던 그시간에 태어났다.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내 번역이 좋다고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문장은 바슐라르 좋아한다는 한 독자에 의해 이렇게도 번역되었다... 정도. 이 블로그에 올리는 모든 개인 번역들에 대해서 마찬가지.) 

















열화당인가에서 나왔던 (이라고 치고 검색하니 문예출판사에서 나왔던) 

한국어판이 있다. 나도 갖고 있다가 몇 년 전 누구 주었다. 책짐을 크게 줄여야 했던 상황이어서, 

갖고는 있었으나 깊이 읽지 않았고 읽지 않을 책, 혹시 나중에 필요해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책들부터 처분했는데 이 책이 그에 속함. 번역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영어판과는 비교 불가. 영어판 먼저 보았던 내게 둘은 전혀 다른 책이었다. 젊은; 언어인 한국어의 아직 미흡한 깊이(부피)와 유연성의 문제.. 가 여기 있는 것 아닌가는 생각을 지금 잠깐 하다가, 그런가 하면 <공간의 시학>이나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 같은 책들은 한국어 번역이 영어 번역을 능가하면 능가하는 쪽이므로. 바슐라르 문학 책들이 다 그렇지만 이 책에도 굉장히 개인적인 분위기, 영감받은 개인의 고독한 목소리.. 이런 거 있다. 그 내밀함이 잘 전해지지 않음. 






15년에 샀던 비싼 책. 아마존 중고로 50불. 흐으 내겐 거금이었음. 50불이면 월수입 대비... ㅋㅋㅋㅋㅋ 하여간 큰 액수. 그러나 이것도 잘 구입한 것이, 이 책을 구하려다 구하려다 구하지 못하고 세월이 가던 중 (그러던 거의 내내) 아마존에선 가장 저렴한 중고본이 90불 정도였었다. 검색을 꾸준히 했고 50불 등록된 걸 어느 날 발견. 바로 구입. 지금 검색해 보니 75불에서 240불 정도까지 4건의 중고본이 등록돼 있다. 이 책은 국내 도서관 중에선 서초동 국립도서관에서만 소장. 이 책을 보기 위해 (관외대출은 물론이고 사진촬영도 할 수 없는) 국립도서관에 주말마다 가서... 필사하며 읽어야 하는 거냐. : 이게 작년 가을 어떤 날의 좌절이었다. 


이 책 읽기 시작하면 책이 망가질텐데, 

복사 제본을 맡겨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 쓰고 있음. 복사 제본해서 그걸로 막 험하게 보고, 

50불이나 들여 구입한 원본은 고이 모셔두고 있어야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다 재간이 되면? 재간이 되어 새 책이라도 13불에 살 수 있어지면??? 




*말할 수 없던 것들을 쌓아두던 그 시간들 속에서, 우리의 고통이 태어났다... 

이 말을 기억하고 그리고 <부정의 철학> 영어판은 책이 있으면서도 복사제본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어서 쓴 포스트. 어제 종일 일하다 일찍 잤더니 심야에 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화가 충격적이었던 최근 사례. 



이 정도, 청년으로 기억되던 브래들리 윗포드. 

웨스트윙은 거의 이 사람 보려고 봤던 것인데 거기서도 시즌이 진행되면 늙어가던가? 

내가 보았던 1-2시즌에선 한 삼십대 후반 정도로 나왔던 것같다. 중년은 아직 결코 아닌. 

보던 나보다 두세살 많은 정도 느낌. 바로 위 오빠 정도. 





최근 모습은 이렇다. 못 본 사이 20여년을 건너 뛴것같은. 







중년을 건너 뛴 건 아니어서 50대 정도로 보일 이런 비디오도 있다. 

그의 모교를 위한 기부금 모금 캠페인. To give or not to give. That is NOT the question! Just GIVE! 

81학번이면 (그리고 미국은 졸업년도가 학번이 되니 실은 77 정도) 오빠... 가 아니셨고 삼촌 정도. 




이런 건 왜 쓰냐고? 

한때 내 세대라 (조금 위긴 하지만) 여겨졌던 사람이 노.. ㅋㅋ 노인이 되어 있는 걸 보면, 

무덤으로 (화장장으로...;;;) 질주하는 게 인생이구나, 그런 느낌이 순간 드는데 그런 느낌조차도 기록하기 위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책 95번 단장 제목이 "샹포르". 

처음 읽었을 때 바로 샹포르에게 관심이 생겨 위키피디아 검색, 카우프만의 역자주 참고하여 그의 삶을 얼기설기 한문단 요약 했었다. 


세바스티엔 로쉬 니콜라 샹포르 (1741-1794). - 잡화상("grocer") 부모에게 태어났으나, 태생의 한계를 뛰어난 두뇌와 미모로 극복하며 귀족 사회에 진출, 혁명 이전 프랑스 왕실과 귀족들의 총애를 받았던 작가. 근력(이라 쓰고 정력.. 이라)도 뛰어나서 그를 알았던 한 귀족 부인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아도니스의 외모를 한 헤라클레스". 그러나 왕실 근방 생활에서 오는 제약을 싫어하고 귀족들에게도 양가 감정을 느꼈던 그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열렬히 혁명의 명분에 투신한다. 전재산을 혁명 세력에 기부하고, 가두 시위를 이끌면서 바스티유 감옥 습격에도 앞장서는 등 무엇엔가 들린 듯이 혁명에 동참. 그러나 곧, 혁명 세력에도 환멸을 느끼며 프랑스 왕실에 그랬듯이 국민 공회를 향해서도 비판과 조롱의 글을 쓴다. 국립 도서관 직원의 고자질(지롱딘파와 한패 혐의)로 옥살이를 하게 되며, 출감 이후에도 체포 위협이 거듭되자 자살을 시도. 총을 얼굴에 겨누었으나, 코와 턱이 날아가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살아 남는다. 그러자 칼로 목을 찔렀으나 동맥을 찌르는 데 실패, 역시 살아 남는다. 그러자 욕조에서 가슴을 칼로 긋고 누워 있었으나, 그럼에도 살아 남는다. 피 웅덩이 안의 그를 하인이 발견하고, 이후 그는 1년 정도를 더 끔찍한 육신의 고통 속에서 살게 되는데, 죽기 전 마지막 유언은: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선 심장이 부서지거나, 아니면 심장이 청동의 심장으로 변해야 해. 친구여, 그런 이 세상을 떠나는 게 나는 기쁘다네!" *기록으로는 평민 부모에게 태어났지만 실제론 귀족 부인과 성직자 사이에서 사생아로 출생. 지금 위키피디아 가보니 이 내용이 아직도 업데이트가 안되어 있다. 


95번 단장에서 니체 자신의 말은: 


샹포르 - 인간의, 그리고 무리의 본성을 그토록 잘 알고 있던 샹포르가, 그럼에도 철학적 체념에 빠지는 게 아니라 무리에 합류하길 택했던 걸 설명할 길은 내가 보기엔 하나밖에 없다. 그가 가진 지혜보다 더 강한, 그리고 완전히 만족되지 못했던 본능이, 그에게 있었다. 타고난 혈통으로 귀족인 모든 인간들을 향한 증오가 그것이다. (....) 하지만 결국 그는 자기 모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 구체제 하의 "낡은 유형"의 모습을. 그는 격렬한 열정과 더불어 회한에 빠졌고, 이것이 그에게 그를 위한 고행의 옷으로 무리의 옷을 입게 했다. 그에겐, 복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양심의 가책이 있었다. 


샹포르가 철학자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했다면, 프랑스 혁명은 그 비극적 위트를, 또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안기는 가장 통렬한 아픔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에 혁명은 그 많은 정신들을 유혹하지 못한, 대단히 우매한 사건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샹포르가 알았던 증오와 복수가 한 세대 전부를 교육했다. 가장 걸출한 인간들이 이 학교를 거쳐 갔다. 미라보가 샹포르를, 그 자신의 더 고귀하고 더 나이든 자아로 존경했으며 그 자아에게서 오는 충동을, 경고를, 판결을 받아들였음을 주목하라. 그 미라보는, 작금의 가장 중요한 정치인들도 속하지 못하는, 위대함의 전혀 다른 층위에 속하는 인간이다. 




*이 책은 지금 읽고 있어야 하는 책이긴 한데 잠시 딴 데 두었다가 

이 포스트 쓰면서 꺼내와 이 단장 읽으니 무엇보다 카우프만의 번역에 감탄하게 된다. 

독어 몰라도, 그냥 이 문장들만으로도 감탄 인다. 이게 원문이라면, 그 원문도 누가 썼다 해도 감탄스러울 문장들. 


**"마흔에 이르기까지 인간혐오자가 아니라면 그는 인간을 사랑한 적 없는 사람이다." 이 말도 샹포르 말이라는데 샹포르 다음에 많은 이들이 따라했겠지. 평소엔 차단막을 친 것 같은 싸늘한 푸른눈이, 생기를 띠면 번개처럼 반짝였다... 는 누군가의 회고가 그의 fierce intelligence, 도덕적 열정. 이런 것 생생히 전해주는 것같음. 실제로 어땠을까가 참 궁금한 사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