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Radio 3 Documentary. 

아동문학과 검열 주제로 저 팟캐스트에 올라온 에피 들었는데, 

인터뷰로 나오는 누군가가 저런 말을 한다. "한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한 세계도 태어난다. 

어떤 아이이든 문화의 착오를 고칠 자연의 기회라고 테드 휴즈가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걸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쓰면서, 언제나 희망과 낙관주의를 가질 수 있다.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어둠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이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될 수 있다고 한편의 우린 느낀다. 더 좋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아이들이 가져올 것이다." 


아동문학에 현실을 가져와라. 아동문학의 검열을 폐하라. 

이 쪽 주장인 것 같고, 위의 인터뷰이도 그의 생각에 '이 세상을 아는 아이가 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서 저렇게 말하는 거지 '타락한 세상에서 보호된 아이일수록 타락한 세상과 싸울 전사가 된다'여서 저렇게 말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어수선하게 이것저것 인용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인터뷰하고 있는데 

아동문학과 검열 주제에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나라면 어떤 입장일지 바로 알지 못하겠던 게 이상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고전적인 질문, 세상엔 악서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이 다큐 팟캐스트 에피는 "절대적으로 없다!"고 답함. 그런가? 그렇게 보더라도 진실이 있고 그 진실을 강력히 옹호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라면 악서가 있다 쪽에 서겠다. 덜 좋은 책, 정도의 의미에서라도 나쁜 책.. 의 개념을 갖고 있어야지 않나. 나쁜 책이 하는 나쁜 일들에 대해서도. 


어쨌든 테드 휴즈가 했다는 저 말은, 

자명하며 나도 알던 걸 말만 멋있게 한 것일 뿐...... 인것처럼 순간 느껴지더니, 

아니다 심오하다고까지 말할 건 아닌지 몰라도, 생각을 자극하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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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근방. 13년 7월. 0.8개 하던 12년 4월로부터 1년 3개월 지난 다음 장면은 

오오...... 과연 과연 풀럽의 힘 놀랍습니다. 


내일부터 동네 체육공원 철봉에서 나도 해보려고요. ;;;; 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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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바슐라르는, 과학자들의 활동과 시인들의 활동에서 차이가 아니라 유사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듯하다. 특히 <로트레아몽>에서 바슐라르는 이 유사성을 강조하고 싶어하며, 시의 논의에 수학 언어를 도입한다. 투사적 시(projective poetry)를 향한 욕구와 투사적 기하학(projective geometry)을 향한 욕구를 병치할 때, 수학과 시는 명시적으로 같은 위상에 놓인다. 그의 역동적 상상력 개념은 암묵적으로 이 비교를 수행한다. 이런 작업은 초점이 물질적 상상력에 있는 <불의 정신분석>에선 볼 수 없는 것이라서, 독자는 어떻게 바슐라르가 <로트레아몽>에서 그것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해 한다. 바슐라르의 <말도로르의 노래> 읽기는, 텍스트가 말하는 그것에 그가 얼마나 민감하고 지적으로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다. 여러 비평가들이 그랬듯이 이 작품을 시인의 광기의 증거로 보기, 바슐라르는 그러지 않는다. 텍스트를 그것 아닌 무엇의 증거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렇긴 한데, 그렇다면 이 작품의 꼼꼼한 읽기만으로 바슐라르가 역동적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걸까? 왜 하필 로트레아몽에 대해 그는 쓰고자 했을까? 바슐라르가 한 저자에 집중하는 저술은 <로트레아몽>이 유일한데다, 이 책은 그의 사원소의 상상력 연구의 틀 안에 포섭되지도 않는다. 미셸 망수이는 로트레아몽이 선택된 건 당시 출판 시장에서 있은 우연한 사건 때문이라고 말한다. 1938년의 4월에서 8월까지 단 5개월 동안, 로트레아몽 전집이 세 판본으로 출판되었다. 뱅상 테리엥은 이런 주장을 일축하며, 1937년 디종 대학에서 바슐라르가 했던 철학 강의의 주제가 로트레아몽이었다고 지적한다. <로트레아몽>은 바슐라르의 과학 저술의 맥락에 속하는데, 대단히 기이하고 또 당시 독서계의 유행이던 로트레아몽의 작품에서 그가 알아본 수학적 배경이 그의 관심을 자극했던 것같다. <로트레아몽>을 읽으면서 이 인식론적 문맥에 유의한다면, 우리는 이 책 이전의 10년 세월이 그에게 변형/왜곡(deformation)의 개념에, 사유가 갖는 역동적 성격에 친숙해지게 했으며, 그리하여 시 독자로서의 바슐라르가 로트레아몽의 기이한 이미지들을 "역동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로트레아몽의 "행동주의적" 혹은 "운동적" 상상력을 받아들일 수 있게 했음을 알아보게 된다.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으로서의 2차적 현실, 그것에 근거한 사유에 바슐라르는 익숙했고 그래서 그는 이미지를 즉각적 현실의 미친 왜곡이 아니라 현실이 가진 가능성의 실현으로 볼 수 있었다. 날개가 달린 물고기 꼬리. 파동처럼 행동하는 입자, why not? 


- 6장 "역동적 상상력과 물질적 상상력: 1938-1948" (97) 


91년에 위스컨신 출판부에서 나온 이 책도, 바슐라르 입문서로 아주 좋은 책이다. 바슐라르 저술들에서 발췌하고, 발췌된 글들마다 (바슐라르 저술 거의 전부를 세심하게, "민감하고 지적으로" 읽었음을 몰라보기 힘든) 메리 맥알리스터-존스가 해설의 글들을 쓰고 있는 책. 좀 특이한 형식이긴 하다. 같은 형식의 입문서를 이것말고는 본 적이 없다. 영역되지 않은 과학철학 저술들에서도 발췌하고 있어서 좋기도 하고, 해설 에세이들이 다 뛰어나다는 것도 좋음. 올해가 가기 전에 긴 서평을 써보고 싶은 책. 


역량이 된다면 바슐라르는 굉장히 흥미롭고 중요한 작업을 같이 할 수 있을 사상가. 

쓰고보니 이상한데 조금 더 맞게 쓰자면: 당신에게 그럴 역량이 있다면 당신은 바슐라르와 함께 (그리고, 바슐라르로부터) 아주 흥미롭고 중요한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의 문학 책들에, 아직 아무도 몰라본 것 같으며 어쨌든 그에 대한 연구는 나온 바 없는 중요한 질문들, 주제들이 있다. 고 쓰면, 너는 알아보았느냐? 고 자문해야겠고 내 답은, 아무도 몰라보았음만 알아봄. 그게 다에요. ㅜㅜ  


어제 아침엔 <공기와 꿈>을 다시 보면서 (여러 번 본 책임에도 볼 때마다 도전이다), 

못하겠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 할 수 있는 건 뭐니?) : 쓰고 보니 하찮아 보이지만 느낄 땐 땅이 꺼질 듯 막중했던 좌절. 오늘 아침 다시 사는 그 좌절. 그런데 어쨌든, 심지어 메리 맥알리스터-존스처럼 민감하고 지적인 독자도 가지 못한 혹은 가지 않은 (가지 못하며 가지 않은) 곳들이, 바슐라르 저술들을 열면 여기저기 있다. 그야말로 미답. 바슐라르 한 사람만 가본 그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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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나 아니면 사조, 혹은 현상 하나를 주제로 20분 정도 대담하는 팟캐스트 Minerva가 있는데 

여기 스티븐 내들러가 한 번 출연했다. 주제는 스피노자. 내들러가 말을 참, 잘 하고 목소리도 들으면 바로 끌리는 목소리. 이 에피에서도 그렇다. 그를 선생으로 스피노자 (뿐이겠어, 누구든. 그가 잘 모르는 사람이라해도 좋으니 모두) 배우고 싶어진다. 끝나기 전에 스피노자에게 자기 인식에 대해 말하면서, 


"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임을 아는 것. 

감정과 의지의 영역에서도 자연의 법칙에 종속됨을 아는 것. 

이것이 스피노자에겐 중요한 moral step이다. 이런 자기 인식이 있을 때,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을 견디며 자신을 이끌 힘을 갖는다." 


이런 얘길 한다. <햄릿>에서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그 명대사 (명대사. 쓰고 보니 이제야 처음으로 말뜻에 합당하게 쓰는), 거기 등장하는 저 유명한 구절을 잠시 망설이다 쓰면서 말하고 나서, You're an English major, you get the reference. 라고 덧붙인다. 그런데 그 때 그 말투가, 아주 뭐랄까 음악적이고 매력적이다. 





내들러의 한 인터뷰 링크. 

http://www.3ammagazine.com/3am/on-descartes-spinoza-for-sure/


나는 저 대목이 듣자마자 사무치더니 오래오래 기억했고 생각했다. 

이 말의 한국어 대응문을 할 수 있는 한 (내들러라는 사람의 말투, 어휘등을 고려하여) 정밀하게 만들어 본다면? 


"영문과 나왔으니 아시잖아요."

"영문학 하셨으니 지금 제 말 출전은 아실 거에요." 

"영문학 전공이셨으니까 레퍼런스는 제가 말할 필요도 없겠고..." 


한국어로는 이 (이런 하찮은) 말도, 내들러가 하듯이 하기는 참 어렵다는 결론을 나는 내리고 맘. ㅋㅋㅋㅋㅋ; 

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자문했는데, 그에 대해 나온 자답은: 한국에서는 정신의 삶이라는 것에 근접하고 그것을 살아야 마땅한 사람들도 (ex. 교수들) 정신들이 대개는 난폭하고 유치하다. 난폭함이 유치함이고, 유치함이 난폭함이다. subtlety, 이런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정신. 무엇으로도 그게 "art"가 되게끔은 못하는 정신. 



*표현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했다는 게 아니라, 

내들러처럼 '발화';;;;(가 맞는 말이겠지)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렇게 발화될만한 맥락이, 한국에서는 그런 맥락조차도 사실 어렵다는 생각도. 

다들 어째 그냥 (말 줄임....) 


**하긴 내가, 나야말로 그렇다보니 알아보고 괴로운 걸 수도. 나나 잘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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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PUF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직영 서점이라는 곳. 

벽에 걸린 저 포스터를 큰 걸로 보고 싶었는데 지금 검색력으론 이 정도가 끝이다. 

바슐라르 알아보고 뭉클... 했던 사진. 바슐라르 (오른쪽 끝 아래에서 두번째), 니체, 쇼펜하우어. 

이 순서로 되어 있는 것도 좋다. 니체는 지금까지 타계한 니체주의자들 중 바슐라르를 제일 좋아할 것 같음. 

쇼펜하우어와 잠시, 짧지만 의미심장하게 인사하고 바슐라르와 오래 얘기하겠지. ;; 


쇼펜하우어 위는 루 살로메. 

살로메 위는, 푸코인가? 대머리처럼 보이는 머리는 푸코같지만, 목을 몸으로 집어넣는 '찐따'같은 자세는? 

살로메의 오른쪽으로 옆은, 마틴 스콜세지?? 와 비슷하게 생긴 철학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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