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s are my reality. 

The only kind of real fantasy. 


음 nature of reality에서 reality로. 

지금 위키피디아 찾아보니 라붐이 80년, 라붐2가 82년. 

그런데 내가 중학생;이며 고등학생이던 시절 몇 년 동안, 이 노래가 중고딩 세계를 정복했었다. 

신이 버린 동네이긴 했. ;;; 하여튼 80년대 중반, 자라는 일의 어둠 bgm. 소피 마르소의 저 충격적 미모는 낭비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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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핏언더에서 브렌다는 저런 표정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명예의 전당에 모셔야할 인물 아닐까. (개인적으로, 영원히 모심.............) 


여러 모로, 아무리 말해도 여전히 말해야할 것들이 남아 있는 인물. 

그런 그녀의 무수한 명대사 중 이런 것도 있다. 


네이트와 헤어지고 만나게 된 조 (Joe). 그와 결혼 직전까지 가는데 

같이 살 집을 보러 다니다가 조의 마음에 드는 집을 보게 된다. 조는 진심으로 

두 사람이 그 집에서 공유할 삶을 상상하지만, 그녀에겐 그 모두가 비현실. 어때 좋지? 그러는 

조에게 브렌다: 음 좋네. 이 집에서 모여 놀다가, 모두가 둘러 앉아 현실의 본질에 대해 토론하면 좋겠네.


"(....) where everyone sits around and discusses the nature of reality."


앞부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 기억하려니 나지 않는다 ) 

하여튼 저런 대사. 영혼이 담겼던 대사. 특히 "nature of reality" 이 구절이, 아주 절묘하게 미묘하게 이탤릭체 되던 대사.


nature of reality. 

한국어로 이 구절, 대응 구절이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철학하지 않았다, 철학하지 않는다, 혹은 어쨌든 서양 철학을 제대로 번역(수입)하지 않았다... 

고 말할 수 있지 않나.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자 인물이 같은 (비슷한) 말을 강력하게 하는 거, 보고 싶지 않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 ;;;  (음주 포스팅임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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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집안에서 5천보를 걸었다. 

오전(새벽)에도 이미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이었을 텐데

5천보 나가서 걷고, 시시각각 악화되는 미세먼지 상황에서 

나가지 못하니 집에서라도 한 번에 5백보 10번 걸어보자며 걸어 봄. 5백보가 5분 정도 걸린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아홉 걸음인 미니 집안에서, 여러 번 나누어 걸으니 5천보 가능했다. 


오늘 저녁 되면서 마침내 공기 "보통". 

기념으로 맥주!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맥주! 

맥주 벌컥벌컥 마시면서 음주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오늘치 남은 걸음은 1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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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가 독일 낭만주의자들 (특히 노발리스) 애독자였음은 

바슐라르 애독자라면 모를 수 없는 것이긴 하다. 그런데 영어권 연구자들 중 이 점에 주목하고 논평한 

사람은 아마 없을 듯 (한 번 이름 언급하는 정도도 드물 판이지 않을까). 불어 해독이 전보다 조금 되기 시작해서 있던 불어 책들 넘겨 보면서 조금 놀란 건, 여기선 논의를 한다는 것. 


오늘 읽은 책의 한 주석에, 플레이아드 총서에서 Romantiques Allemands ("독일 낭만주의자들")을 참고하라고 

하고 있었고 아마존에서도 찾아보고 구글 이미지로도 찾아본 다음, 2권으로 나온 <독일 낭만주의자들> 책이 매우 갖고 싶어졌다. 책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면 오래, 오래 오래 허영심 만족시켜줄 듯. 가격이 ("가죽장정"이며 1700 페이지, 그 정도인데) 50유로 정도면 완전 '핫딜' 아닌가. 하지만 배송비! ㅜㅜ 





어쨌든, 이런 책들이 만들어졌고 있다는 것에 놀란다. 

영어로는 구할 수 없는 책. 뉴욕주립대 출판부에서 대륙철학의 잊혀진 고전들을 재발견하자는 취지로 

내는 무슨 시리즈가 있고 거기서 나온 횔덜린, 노발리스 책들이 아마 있을 것이다. 아마 그들 외에도. 그런데

(무슨 시리즈인지, 누구 책들을 냈는지 정확하려면 아마존 검색을 해봐야 하지만 검색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끌리지 않는다. 원칙도 비전도 목적도 없이 하고 있는 작업으로 보여서. 아니 있기야 있겠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만, 좋은 책을 잘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예산 인력 등이 모두 절대 부족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미국의 Library of America가 플레이아드 총서를 모델로 했다고 하지만 

Library of America는 미국 문학의 정전이 출간 대상. 그것만으로도 둘이, 비슷할 수 없지 않나. 

Library of America가 정말 자신의 모델처럼, 외국 문학의 좋은 번역도 묵직하고 좋은 책으로 

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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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진보가 갖는 비-직관적 성격을 생각한다면,  

마치 환상이 깨질 때의 반응처럼 그 시작부터 명백히 자신을 드러내는 기초 과학의 도덕적 가치에, 

우리는 한층 더 자부를, 한층 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우리는 객관적 지적 형성이 없는 

도덕적 형성은 없다는 것도 이해하게 된다. 낡은 과학 혹은 고급 과학은 에고이즘에 봉사한다고 혹은 배덕에 

봉사한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있을 텐데, 이는 헛된 이의다. 과학의 응용에서 과학을 판단해선 안된다. 

도덕적 견지에서 보든 심리적 견지에서 보든, 과학의 가치는 과학적 인식이 성취되는 순간에 포착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식이 한 영혼을 밝히는 그 순간, 그것이 인간 정신의 형성에 갖는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자기 본질을 

구성하는 이성의 활동이, 본질 구성된 이성을 풍요하게 하는 그 순간을 우리는 고집해야 한다. 진리를 사유하는 

존재는 바로 그를 통해 에고이즘과도 결별한다. 그 존재는 자신 안에서, 모호하며 불순한 주관적 무의식에 보편 의식으로 맞선다. (................) 


사실 나는 프랑스 학교들이 보여주는 도덕적 탁월함에 늘 놀란다. 

학교의 정신적 환경, 바로 이것을 어른들은 모방해야 한다. "삶 (la Vie)"의 이미지를 본딴다면 

그것은 학교가 아니다. 그렇지 않고, 삶이 "학교(l'Ecole)"의 이미지를 본따야 한다. 우리 사회가, 사춘기에 

얻게 되는 도덕적 정점에 인간이 늘 머무르게 할 길을 찾아낸다면, 도덕의 문제 그리고 사회의 문제의 작지 않은 

부분이 해결될 것이다. 학교의 정신적 환경이 갖는 이 높은 도덕적 가치를, 한 학제의 학문적 조직에서 찾고 거기 

제한하려 해선 안된다. 우리의 판단은 언제나 인간 영혼의 정점을, 인간 정신의 정점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견고하고

정연한 수업은, 인식이 발견으로서의 자신의 새로움, 자신의 신선함 안에서 자신을 제시하는 수업이다. 이런 수업에서 

정신이 자신을 교정하고 자신을 구성하고 자신을 보편화함을 우리는 안다. 삶의 권태 -- 분열된 정신이 갖는 모호한 의식 -- 는 사유의 즐거움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영혼의 전체에서 낙관주의가 빛난다. 진리를 에워싸면서 건강한 활동이 수정처럼 응결한다. 진리는 하나의 목표다. 진리는 인간적 목표다. (바슐라르, "과학 문화의 도덕적 가치").  



특히 밑줄 친 부분들에서 

바슐라르가 쓴 문장들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대단해 보인다기보다 

어쨌든, 어디서 수없이 들었던 말 같으면서 동시에 심오하게 새롭게도 들리는 

이상한 매혹이 있고, 옮겨보고 싶어졌다. 옮겨 오고 그보다 두 배쯤 길게 잡담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긴 것도 아님에도 하고 나니 지치고 맘.  


이 문장들도, 바슐라르 과학 철학이 영어번역되지 않은 이유를 알 거 같게 하기도 한다. 

어떤 가치가 (중요하고 비범한 가치가) 있긴 한데, 그 가치의 맥락이 대단히 프랑스적인 맥락일 듯. 

그 맥락까지 번역을 통해 수입하기엔, 에너지 부족일 수도. 그리고 구문 상으론 복잡할 게 없는 문장임에도 

번역이 어려운 문장들 많을 것 같다. il faut insister sur l’instant où une activité de la raison constituante enrichit la raison constituée. (자기 본질을 구성하는 이성의 활동이, 본질 구성된 이성을 풍요하게 하는 그 순간을 우리는 고집해야 한다... 로 해봄). 이런 문장, 쉽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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