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도 귀엽지 않은지? (..................) 이만하면? (실물은 완전 귀염 귀염). 

집 바로 근처는 아니고 한 5분 거리, 요즘 운동하면서 다니는 경로 아닌 다른 경로에 사는 고양이다. 

민화 같은 데서 보던 고양이 같은 고양이. 옆이 더 긴 타원형 얼굴 냥이들이 특히 더 귀엽지 않나. 

이 아이 매력은 그것이었다. 이 아이와 어울리는 다른 냥이들은 접근하면 다 재빨리 도망치는데 

이 아이는 도망이 필요하고 급한 건 아는데 귀찮다.... 자세. 인간이 해코지할 확률보다 지나갈 확률이 높음을 

알면서 운명을 믿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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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관리되고 명확히 규정된 절차들에 반대하여, 

철학이라 불릴 가치가 있는 철학은 여러분에게 이전 교육 과정에서 철학으로 제시되던 것과 정반대입니다. 철학에, 그것이 철학의 연구 대상이라고 보장되는 대상은 없습니다. 철학적 사유는, 사유가 길을 잃을 수 있는 데서만, 그 사유가 틀릴 수 있는 데서만, 가능합니다. 철학적 사유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때, 다시 말해 그 사유가 반복, 재생산의 영역에 갇힌 자신을 볼 때, 그 때 철학은 자기 임무에 실패한 철학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된다면, 나는 철학 -- 이 말이 요즘 불러 모으는 모든 의심도 염두에 두면서 -- 이 철학의 진정한 현실성을 보여줄 수 있는 지점 -- 현실성이 철학에 있다면 말이지만 -- 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안정의 필요에 맞서 철학이 제공하는 저항에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이 저항은, 저 필요에 순응하면서 자기들의 시야를 조정하고 있는 현재의 사유양식들은 모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철학이 현실성을 보여주는 지점, 그것은 -- 니체라면 이렇게 말했을 텐데 -- 위험하지 않은 인식이라면 더 이상 사유로 불릴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위험은 니힐리스트적 폭탄 투하나 고대 석판 법전의 파괴 등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 위험은, 이미 알려진 것 너머로 가지 못하는 인식은 허위이며 낡은 인식으로 선포될 거라는 위험을 가리킵니다. (.....) 철학의 높은 야망을 "본질"의 인식에만 제한하지 말고, 그 야망을 지적 체험의 영역으로 유입하는 일. 이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 8강 "지적 체험의 개념 The Concept of Intellectual Experience" 



이 책 좋다. 

<부정 변증법>에서 아도르노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아도르노 자신의 말로 명확하게 알아갈 수 있는 책. 하버마스의 <모더니티의 철학적 담론>에서 니체가 이러저러하게 인용된다는 노트를 보고 하버마스 책 찾아보다가, 어쩌다 보니 이 책까지 찾아보게 됨. 


철학은 길을 잃으라. 무책임을 철학에게 권한다. 유희가 진실의 계기. 

이런 아도르노에게 나는 전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 내가 공감하니 아마 소수이겠지. 하버마스도 저 책에서 아도르노에게, 그의 이성비판은 수행모순이라는둥. 


이 책 6강에 처음 읽던 때 깊이 감동, 감격했던 문장이 있다. 

"세계가 바뀌지 않은 이유. 세계가 너무 적게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Another reason why the world has not changed is that too little is interpreted. 


해석이 부족하다. 

해석에 반대한다. 보다 더 진리이지 않나? 둘 다 진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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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로르의 노래>를 가리켜 "sustained sick joke"라 말한 비평가가 있다고. 

<차라투스트라>를 가리켜 니체가 했던 말 -- 이 책을 읽을 수 있음은 정신의 고귀함의 증거다 -- 을 변주해 

<말도로르의 노래>를 규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고귀함은 아니겠고, 고귀함과 비슷할 텐데 어쨌든 인간의 면모지만 인간들 사이에서 희귀한 무엇. 아도르노의 "대상을 향한 자유", 이게 강하게 되는 독자여야 집중을 지속하면서 읽을 수 있을 듯한 책. 어제 드문드문 몇 대목 보다가 지쳐서 잤다. 


그런데 sick joke. 

이것도 한국어 역어가 마땅치 않지 않나? 병든 농담? 아픈 농담? 


식스핏언더에서 네이트가 반려견 시터하는 일 좋다고, 행복하다고 하면서 하던 말. 

"스물 다섯으로 돌아간 것 같다. 끔찍한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시절로." 그리고 덧붙였던 말이 그것이었다. 

"인생이 어떤 sick joke인가 몰랐던 시절로." 


what a sick joke life is. 이것도 번역한다면 영어 문장이 가진 힘이 (그게 대단찮은 거라 해도) 

그대로 전해지지 않을 것 같다. 


"정신의 삶" 이것의 탐사가능한 영역이면 어디라도, 각자 자기 힘으로 굽힘없이 가본, 

그런 일들이 아직 많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정신의 삶" 특히 이와 관련해 한국어의 힘이 아직 약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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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생전에 그럴 수 있다면 

캠퍼스 소설 쓰고 싶단 생각 얼마 전부터 해봄. 

한국 대학과 한국의 교수들에 대해, 데이빗 로지의 Small World가 했던 것같은 얘기를 하려 한다면. 

아니면 <비밀의 계절>의 한국판을 상상하다면. 그 외, 최근 입수한 Stoner도. Brideshead Revisited도. 

그럼 여러 캠퍼스 소설, 캠퍼스 영화들을 지금부터 조금씩 보아두면 좋겠다고 다짐하기도. 그런데 좀 전, 그 소설을 진정 쓰게 된다면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두 개의 에피그래프를 가져와도 좋겠단, 좋은 ㅋㅋ 생각을 함. 





"모두가 나쁜 곳에선 최악을 아는 것이 좋겠다."

이걸로 시작하면 딱이다. ;; <미니마 모랄리아> 2부를 시작하는 에피그래프니까 

2부에서 무엇인가 우리 현실에 그대로 번역되는 걸 찾고 거기서 첫 문단을 시작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 다음은 이것. "삶이 살지 않는다." 

버리고 잊기엔 그래도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착상이라 판단하고 

사진도 찍어 포스트를 쓴다.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음 3부로 구성된다면 

위의 "최악을 아는 것이 좋겠다" 1부에서도 모아볼 수 있는 '자료'는 엄청나겠지. "삶이 살지 않는다" 2부도

(Minima Moralia에서 그러듯이 둘이 내용에서 분명히 분리되진 않겠지만) 그럴 것이다. 

















그리고 3부의 에피그래프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새로운 선언"을 구상하며 했던 대담. 

거기서 나온다는 말, The Pleasure of Thinking Is Not to Be Recommended. 


누가 써준다면 좋겠다. 이 세 에피그래프가 쓰이며 3부로 구성된 캠퍼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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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도서관에 구입신청했다. 


"연구자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날카로운 지성의 힘은 배양되기 어려운 게 당연하고

앞으로 이 나라에서 '노벨상' 같은 건, 꿈조차 꿀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책 "서문"에 이런 문장이 있는데 

순간 가슴이 찔리는 듯한 (아픈...) 공감. 내 생전은 물론이고 지금 대학원생 세대의 생전도 물론이고 (어쩌면 영원히, 이 나라와 함께 언제나) 바뀌지 않을 일.. 비관이 뒤를 이음. 





에어컨을 계속 틀기 때문에 방에선 시원한데도 

담배 피우러 잠깐씩 나가기 때문인가, 나가서 헉 (놀람) 하고 흐으 (체념) 뻘뻘 피우다 들어오기 때문인가 ;;;; 하여튼 오늘도 덥다고 느끼며 그러니 맥주가 필요한 시간이 되고 있다. 시원한 맥주. 세상과 악수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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