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terpoint 그러니까 이 책이 그리 좋았던 건 

무엇보다 "훼손된 삶"의 구제, 복구가 어떻게 가능한가 

보여주기 때문. "newly tempered" : 이게 내내 진행되는 책. 훼손된 삶을 재료로 

새로운 삶이 나오는 현장. 


아직 종이책 사지 않았는데 종이책으로 읽는다면 

이렇게 적은 말들이 과장스럽게 보일 수 있을 거 같다. audible의 오디오북은 

성우가 굉장히 잘 읽는다. 웃겨야 할 대목은 웃기게, 고통스러운 감정이 담긴 대목은 생각에 잠겨. 

그 덕분에 일어났던 밀착일 수도. 아예 들을 수 없는 책이었을 수도 있다. 누가 어떻게 읽었나에 따라. 

아마존 리뷰를 보면 "phenomenal" 이런 말 호평도 있으니 텍스트로도 강력한 책일 것으로 예상하게 

되긴 한다. 


나도 훼손된 삶을 재료로 어떤 요리가 가능한가 

몇 문장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의 작법, 화법을 따라 하면 

못 할 말이, 못 쓸 일이,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함.  


(저 띄어쓰기는 저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벤야민을 인용하는 한 대목이 있는데 

아주 대단히 난해한 구절 가져다가 기가 막히게 해석해 내는 그런 건 아니지만 

그가 번민하던 (번민하는) 사람임을 알게 한다. 그냥 그는 말을 할 뿐인데 

독자가 그의 삶을 다시 산다. 


촥촥. 페이퍼 쓰고 책도 쓰고. 

회고록도 쓰고. (.......) 생은 다른 곳에. 다른 곳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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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ible 팬이어서 여기서 보내는 이메일은 

마치 개인 이메일처럼 (오! 하면서) 열어볼 때 많다. 이것도 그랬다. 

밭일 (꽃밭일) 할 때 완벽한 듣기. (....) 잠시 설렜던 소개. 


이것도 실현해야 할 꿈이다. 받아야할 명령. 

Candide에서 볼테르의 명령. You must cultivate your garden. 


Counterpoint에서 극히 인상적이던 게 많았는데 그 중 하나는 이런 거였다. 

보통은 사전 작업이 (충격적이라거나, 불편함 유발한다 여겨지는 내용이라서) 필요할 

무엇을 그것 없이 바로, 사실적으로 말함. 그게 무엇이든 그가 말하는 순간 보편적이 된다는 느낌 들게 

하는 화법이었다. 사실 화법보다는, 자기 경험과 그 경험을 옮기는 문장에 그가 막대하게 생각을 투입했기 

때문일 것이긴 하다. 오래 이리 짓이기고 저리 누르고 저쪽에서 펴고 모아 다시 궁그리고 .... 그랬던 단단한 

반죽 같은 문장. 돌처럼 견고해진 문장. 그런 문장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 


이게 모두에게 따라해 볼 가치가 있는 화법, 작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바로 사실적으로 말하기 위해 압축하기. 그걸 수단으로 무엇을 말하든 보편이 되게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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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erpoint 다음에 

비슷한 책 없나 찾았다. 찾아진 것 중 이런 책도 있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딸이 쓴 회고록. 

초등학교 2학년 때 "famous father girl"이라고 놀림 당했었다고. 그걸 제목으로.


아마존 리뷰는 거의 호평이고 

특히 그녀의 "honesty"를 칭송한다. 제이미 번스타인은 극소수만 알 특권 속에서 자랐다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나? 레너드 번스타인이 천재였고 미국 클래식음악계 "기관" 같은 사람이긴 했다는 건 

나도 들어 알고 있긴 한데, 극소수만 아는 특권.... 그런 건 대통령의 딸 정도여야 쓸만한 

말이지 않나 잠시 하찮게 드는 이의) 특권의 그림자가 무엇인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나 알게 한다고 한다.  


Counterpoint 같은 책이 아닐까 두려워서 

선뜻 사게 되지는 않는다. Counterpoint는 나야말로 그 책을 통과하면서 

"newly tempered" 되었다 느껴지는 책이었다. disk defragmenting. 


그게 일어나지 않는 책들. 재미있다 해도 밀착, 흡착, 흡수가 되지는 않는 책들. 

잠시 (오래) 멀리서 보고 멀어지는 책들. 이 쪽에 속할 거 같다 쪽이 되는데 

그래도 거의 압도적 호평을 믿어야 한다.  





윌리엄 스타이론의 딸이 

(아마 아버지의 사후?) 아버지의 책들을 읽으며 아버지를 기억함. 아버지를 되찾음. 

이것도 딸이 아버지를 회고하는 회고록. 


Counterpoint는 

어머니를 가장 온전히 이해한 아들.... 이해되기 위해 아들을 낳았던 어머니.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그녀에게 온 사람 바로 그녀의 아들.... 이런 '아무말' 감동을 끝내 안기는 책이다.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생각. 내게 자식이 있었다면 내 삶도 내 자식 덕분에 끝내 이해되었? 끝내 구제되었을까? 낭비로 끝나지 않고? (....) 이런 생각도 골똘히 하게 됐었다. 


스타이론의 딸이 쓴 저 책도 

아버지를 이해하는, 아버지의 이해에 도달하는 딸을 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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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x feet under claire fisher nate fisher GIF - Find on GIFER




Six Feet Under에서는 

네이트의 아버지도 네이트도 

죽은 다음에도 계속 가족과 삶을 함께 한다. 이것 정말 잘 보여주는 게 

마지막 시즌 마지막 에피, 마지막 7분. 클레어가 뉴욕으로 떠나면서 운전할 때. 차가 LA 피셔 가족 집에서 멀어질 때

백미러로 보이던 죽은 오빠도 멀어진다. 달리며 따라오던 오빠가 더 보이지 않게 됨. 그녀의 LA 시절의 종결. 


생전의 네이트가 타계한 아버지와 삶을 나누는 그 많은 장면. 

그게 어떤 건지 세월 지나면서 더 알게 된다. 이제 세상에 없는 이들이 

내게도 점점 더 있게 되면서. 


실제로 이럴 수는 없다는 게, 육신의 부활 같은 건 없다는 게 

..... 그게 죽음의 부조리. 자기 죽음에 대해 자기가 말할 수 없다는 게. 

다시 돌아와 말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다시 돌아와 말하기. 

이것에 가장 근접하는 게 글쓰기, 책쓰기라 생각한다. 

나의 삶? 나의 죽음? 거기 다 있어............. 이렇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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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으로 토론 주제 만들기도 했다. 

보스턴 필하모닉 음악 감독 벤자민 잰더가 십여년 전 했던 Ted 강연. 

(그러게 Ted 초창기엔 일단 길이가 길고 또 약간 비주류스러움, 있지 않았나? 

했는데 그랬던 거 맞다고 말하는 시청자들 있다. 예전 Ted는 이런 거였다고....) 


물론 교과서적이다. 모두 정답이다. 

그런데 잰더의 전달 솜씨가 좀 감탄이 인다. 

당신이 클래식을 사랑하게 만들겠다. 우리 모두에게 잠재하는 클래식 애호력 있다는 얘기를 

쇼팽 전주곡 하나를 실제로 그가 연주하면서 이끌고 가고 그에 덧붙여 리더쉽의 의미, 인생의 의미 

이런 얘기 한다. 어린이들 피아노 연주실력을 나이별로 시전하기도 하고. 몇 군데서 현실웃음 터지던데, 지금 

내 상황이 매일 머리가 지끈거리고 웃김이 잘 알아보이지 않고 알아보이면 웃을 힘이 남아 있지 않고 

그런 상황에서 실제 웃게 되고 그가 하는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에 잠길 수도 있었다는 건. 

조회수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긴 하다. 


17:20 이 즈음부터 지휘자로서 그가 리더쉽에 대해 배운 것, 성공의 의미에 대해 말하는데 

"지휘자가 만드는 소리는 없다는 것. 리더의 역할은 다른 사람들을 힘있게 하는 데 있다는 것." 

"성공은 돈도 명예도 아니다. 성공은 얼마나 많은 반짝이는 눈들이 내 가까이에 있는가다." 




특히 첫 항목에 어려움 느끼는 학생들 있었다. 다른 사람을 힘있게 한다는 게 무슨 뜻이냐. 

어떻게 해야 그걸 하는 게 되는 거냐. 영어로는 더 분명한 의미처럼 들리긴 한다. to make other people powerful. 

역량의 실현이기도 할테고 권력의 공유이기도 할텐데. 그렇다 말로는 쉬운데 어떻게 해야 이걸 하는 게 되는 건지는. 


두번째 항목에 대해서는 다수가 공감, 동의하는 거 같았다. 

얼마나 많은 반짝이는 눈들이 내 곁에 있는가. 나는 내가 그 눈들에 속하면 좋겠지만 

그 눈들이 내 곁에 있는 걸 원하지는 않는다는 걸 (그 반짝임이 언제 꺼질지, 꺼진다면 얼마나 나 때문일지. 번민이다. 처음부터 없는 쪽이 마음 편하다....) 분명히 알고 있는 입장이어서 역시, 청년들과 중년 사이에, 아니 이건 인싸력 아싸력의 대립인 건가, 하여튼 차이가 있음을 실감함.  


지금 30도도 아닌데 왜 이리 더움. 

더워서 정신 혼미하다. 에어컨 막 돌리면서 살아야 하는 게 맞는지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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