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슨 시력테스트도 아니고. 책 표지. 아도르노, <권위주의적 성격>. 

나는 이 책 제목도 너무 좋다. 권위주의적 성격. 그래 그런 걸 연구해야지. 오래. 

그걸 연구해주셔서 영원히 감사하겠. 


올해 들었던 강의 중에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하고 그리 유명하지 않은 리버럴 아츠 칼리지에 재직하는 중국 철학 연구자의 <논어> 읽기 강의 있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to study and then find opportunities to make use of it, is this not indeed a pleasure?) 


저런 영어 번역 들으면 

ㅋㅋㅋㅋㅋㅋ 웃게 됐었다. is this not indeed a pleasure? (응? 어쩌라고... ㅋㅋㅋㅋㅋ) 


덕불고 필유린도 나옴. virtue is never alone, it must have neighbors. 

"군자"가 예전엔 "gentleman"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역어는 (젠틀맨... 젠틀맨이 군자라니) 빅토리아 시대를 너무 연상시키는 역어이고 요즘은 "person of supreme conduct"로 번역되기도 하고 몇 선택들이 있다고 한다. 번역하지 말고 한자 그대로 쓰자는 의견도 소수 의견이긴 하지만 존중 받는다고.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 이 책이 규정하는 사회학적 상상력. 

그것과 <논어>의 세계가 얼마나 공명하는가. 이런 얘기 들으면서, 그러니까... 고전은 이렇게 읽어야 하는 거 아닌가. 같은 생각 했었다. 이 시대에 그것이 갖는 적실성, 이런 걸 내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더 잘 보여줄 거울들 찾기.  


피해갈 수 없었던 생각 하나는 

한국에서 <논어> 강독 강좌를 듣는다면 아마 십중팔구 강압적인 분위기겠지. 

이게 (이건) 우리 것이다.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

너무 바로 상상할 수 있는 강압적 분위기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미국 연구자의 이 강의가 좋다. 


그런데 강의가 진행될수록  

이 교수가 권위주의적 성격임을 알아보게 되고 

권위주의적 성격이 아니면서, 혁명가이면서, 공자와 <논어>를 깊이 연구하는 사례가 있는가, 있다면 그는 어떻게 <논어>를 읽는가.... 


*혁명가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권위주의적 성격이었다 그러고 보니. 

반-권위주의적 성격의 혁명가. 라고 써야 ㅎㅎㅎ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영화 좋으니까 찾아봄. 

몇 달 전 이거 봐야겠다고 검색해 보다가 

아마존 video on demand (이게 정식 명칭이던가, 아무튼 아마존에서 개별 단위로 구매하는) 이것밖에 길이 없는 거 같아서 미친 척하고 그걸로 결제해서 봤었다. 무려 15달러 정도 했던 듯. 그런데 이게 pc에서는 재생이 되는데 아이패드에서는 안된다. 아이패드에서는 "이 영상은 미국 내에서만 스트리밍이 된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pc에서는 도저히 볼 수준으로 재생이 되지 않는다. 정지화면으로 5-10초 지속의 무한 지속. 무한 반복. 영화 감상의 지옥이 거기 있었다. 


꾹 참고 

특히 보고 싶었던 장면들 일부를 보는 것에 성공한 다음 나머지는 포기했었다.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으며 또한 이 영화를 소장하고 있다면 당신은 얼마나 행운인가. 




캐롤 사임즈처럼 세상을 보고 역사를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느 정도는 "공인"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 세계의 일부를 구성함. 그걸 알기 때문에 갖는 책임감. 이게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이기도 하겠고 한때 "대학(큰 배움)"의 의미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적지 않게 강의들을 들었는데, 이런 게 예전 미국의 "엘리트" 교육이었겠구나 같은 인상이 강하게 든 건 사임즈의 강의가 처음. 사유하는 인간이라면 책임을 모를 수 없다. 그냥 저절로. 이런 것.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cott 2022-11-04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지화면으로 5-10초 지속의 무한 지속. 무한 반복]
이 상태라면 아무리 세기의 미모 여도 참기 힘든데 ㅎㅎㅎ

역쉬 맷 데이먼 보다 알랑 드롱이 ^^

몰리 2022-11-05 10:49   좋아요 1 | URL
알랑 드롱. 프랑스의 국보 정도 아니고 인류 유산.
오직 이 한 사람만 외모 찬미 하겠습... ㅎㅎㅎㅎ

라로 2022-11-05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타입은 아닌데요,, 어쨌든 돈 주고 고생하셨어요!! 진짜 저 같으면 열뻗쳐서 이메일 보냈을 거에요,, 환불하라고....

몰리 2022-11-05 16:54   좋아요 0 | URL
검색하고 구입하고 하는 과정에서, 이건 환불 절대 안된다는 메시지가 아주 곳곳에서 나오더라고요. ㅎㅎㅎㅎㅎ 그거 웃겼어요. 엉망진창인 서비스구나, 그래도 유지하는구나. 환불 요청 엄청나게 들어오는구나.

너무 보고 싶었던 거라 그렇게 봤어도 만족. 정말이지 고생하면서 본 거라, 다시 이 영화 보면 영화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라거나 이 영화는 계속 정지하는 영화인데, 같은 착각이 한참 유지될 거 같아요.
 



강의 중독자로서 아침에 걸을 때도 그렇지만 집안일 할 때도 강의 자주 듣는다. 

"장기 19세기, 유럽 1789-1917" 이런 강의도 있는데 내 관심사와 일치하는 주제고 요즘 틀어놓는다.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하고, 혁명은 (30년, 48년 혁명까지 이어지면서) 내내 아주 많이 논의된다. 


기억에 남는 한 대목. 

"혁명가들은 교육도 개혁하고자 했다. 

교육은 인간의 정신 형성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혁명가들 자신이 대부분 가톨릭 학교에서 교육받은 것을 생각하면, 이 관점이 그렇게 맞는 관점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나 자신 학교에 있는 입장에서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인간 정신이 바로 연결되는 게 아님을 안다" 



조금은 농담으로 의도된 것 같기도 했지만 

재미있다, 웃기다 보다는 "아이고 그렇기도 하지만 그래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쪽이었던 말. 


캐롤 사임즈였다면 

어떻게 가톨릭 학교에서 혁명가가 나왔는가. 이게 질문이면 그 질문을 꽉 물고 좋은 답이 나올 때까지 놓지 않았을 것이다. 답이 나오게 하려고 도서관에 매일 갔을 것이다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는 핵심 자료가 있을 거같은 주제). 설득되지 않을 수 없는 관점과 사료를 우리에게 주었을 것이다. 가톨릭 신학의 무엇이 반역과 적대적이지 않은가. 뭐 기타 등등. 등등. 그녀가 주는 답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가 있었을 것이다. 


몽테뉴가 동양인들을 "아직 문명을 모르는 어린이"로 본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면서 그것과 연결해서 그럼에도 몽테뉴의 정신이 얼마나 섬세하고 오류의 수정에 무한히 열려있는 정신이었나 이런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사실 몽테뉴에 대해 정답 같은 논의일 것이지만 그럼에도 몰라볼 수 없었다. 관심과 이해의 깊이. 


학교와 인간의 정신. 

타인과 있으면 그의 정신을, 그의 존재를, 내가 흡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내게 고독이 필요하다. 릴케가 했던, 대강 이런 취지의 말. 그게 릴케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정신의 외부 지향이 아예 없는 특별한 사례 제외하고, 모든 인간이 그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 함께 할 때, 달라지려 하지 않아도 달라지고, 배우려고 하지 않아도 배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며들다" 이 말이 유행어 된 이유가 일부 여기 있는 거 아닌가? 내가 만나는 사람의 인간관, 세계관, --관들이 어김없이 내게 스며들고 말지 않나? 


"인간에게 자기 이득보다 중요한 게 없다" 이게 다수의 신념인 곳과 "인간의 정신은 오류의 수정에 무한히 열려 있고자 한다"가 다수의 신념인 곳. 전자의 학교와 후자의 학교. 전자의 학교에서도 혁명가가 나오고 후자의 학교에서도 버러지의 눈으로 국가의 앞날을 보는 사람들이 나오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건축탐구-집. 인천 구도심에서 69년생 집 리모델링 해 살고 있는 젊은 부부 출연한 에피 있는데 

두 사람은 그 집을 보고 그 집에서 살기 위해 결혼했고, 그 집에서 살아야 했던 건 그 집이 줄 "나무 하늘 햇빛" 때문에. 

나무 하늘 햇빛. (....) 나도 나도. 조금씩만 허락된 세 가지. 누리지 못하는 세 가지.    


산골에서 텃밭 농사 지으면서 사는 어느 부부 (나보다는 젊으신 게 확실한. 혹시 이제 젊다고는 못할 나이라 해도) 채널에서는 어느 날 보다가 뜻밖에 심쿵 한 적이 있는데, 텃밭에서 장면 전환하고 갑자기 저 멀리 보이는 하늘과 산 때문에. 하늘 그리고 산. 한국의 산이 아름답다 느낀 적 별로 없는데 그 순간 알았던 거 같다. 어떤 아름다움인지. 세잔이 그렸다는 그리고 또 그렸다는 그 산보다 이 산이 더 아름다워. 저 선과 저 색. 저 산을 명상하러 가고 싶다. 




일상 완전히 무너진 5일 보내고 

어제부터 어느 정도 복구가 되었다. 

그 하늘과 그 공기. 스탠포드나 예일만이 아니라 

한국의 어디서든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만들 수 있는 그 하늘과 그 공기. 

............. 그렇습니다.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라면, 아니어도, 나무 하늘 햇빛. 그 산의 선과 색. 

그 하늘 그 공기 만들면서,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겁니다. 너도 쓰고 나도 쓰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저자가 스탠포드 대학 방문학자였던가 하여튼 이 학교와 중요한 관련이 있는 어떤 책 주제로 얘기하면서, 뉴욕타임즈 서평 팟캐스트 진행자가 "스탠포드를 가 본 사람들이 흔히 받는 인상이다. 여기는 우월한 인간 양성소라는..." 이런 말을 했다. 우월한 인간 양성소. breeding ground for superior human beings. 놀라운 구절이라 그대로 기억함. 이 때 진행자는 서평 팟캐스트 진행자로 그보다 더 잘하기는 진짜 어려울 거 같은 파멜라 폴. 책에 대해 해야 할 중요한 얘기를 저자, 아니면 기타 게스트에게서 이끌어내는 방식이나 대화 내내 저자와 밀착하면서 함께 하는 태도, 기타 등등이 다 한결같이 모범적인 분. 이 분은 브라운 대학 사학과 출신 (오래 들으면서 알게 됨. 자신의 대학 시절 얘기를 자주는 아닌데 한다...) 안정감, 알게 하는 분. 그녀라면 틀릴 수 없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하지? 이게 무슨 뜻이야? 

그녀 말 들으면서 이랬던 건 저 때가 유일하다. 

아니 무슨 이런 우생학적 (우생학 옹호적) 발언을? 

breeding ground를 비꼬는 의미로 쓴 건가? 스탠포드 출신의 "inferior" human being은? 

그 학교의 그 여러 추문들은? 




저 말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캐롤 사임즈를 중세사 연구의 길로 이끈 그녀의 학부 시절 은사. 

그런 일이 일어나는 곳. 그런 일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곳. 그런 곳의 하늘과 공기는 다를 것이다. 

파멜라 폴이 "우월한 인간..." 이 말로 지목하려 한 것엔 그 하늘과 그 공기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서울대 출신인데 정신이 깊이 훼손된 사람들. 무려 서울대 "법대" 출신인데 그런 사람들. 

이것도 정말이지 최소 책 한 권 분량 연구 대상 아닙니까. 에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