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렇게 표지 아니고 책 안을 찍은 이미지가 찾아진다. 작품처럼. 느낌있게. 

2004년에 나온 책, Why does literature matter? 


<짜라투스트라>의 해석을 위한 교수직이 마련될 것이다. : 니체는 이런 장담(....)도 했다. 

조이스도 그런 말 했다. <율리시스> 해석을 위해 앞으로 몇 세기 동안 교수들이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바슐라르 책들이 <짜라투스트라>나 <율리시스>같은 책들이라면. 

그래서 어떤 해석이든 (최소 노동은 투입되었다는 한에서) 어렵지 않게 우호적인 독자를 찾을 수 있다면. 


그러면 좋을 것이긴 하다. 

..... 그렇긴 한데 바슐라르 책들이 <율리시스>처럼 이건 무슨 뜻? 저건 출전이? 하게 만드는 

복잡한 인유들, 대담한 실험들로 짜인 정교한 천 같은 책들이 일단 아니고 


사실 여기 무슨 굳이 해석을 할 무엇이 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이는 쪽일 것이다. 

<몽상의 시학>엔 이런 문장도 있다. "혼자가 아니라면 잘 볼 수 없는 이 세계의 위대한 현상들이 있다. 지고 있는 해. 지붕에서 하늘로 흘러가는 연기." 


혼자가 아니라면 잘 볼 수 없는 이 세계의 위대한 현상들이 있다. 

응. 그렇기도 하네. 정도 반응이면 족할 문장이기도 할텐데, 그런데 이게 대단히 심오하고 

이 문장 하나에 바쳐지는 페이퍼도 충분히 나올 만하고 나와야 한다.... 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독 예찬, 사회 배척. 역사 부정. 

낭만주의적 인본주의. : 그의 이런 면들도 옹호보다는 해석이 요구되는 면들일 것이다. 


그렇다. 하여 바슐라르를 해석하려고 

위의 책 (왜 바슐라르가 중요한가. 이 주제에 간접적으로지만 극히 중요한 답들을 주는 책이다) 보고 있는데 

............... 시간은 거침없이 흐르고. 



*그런데 이 책 좋은 책입니다. 저자의 노고가 (성실한 노고가) 온전히 느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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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 

마을과 하늘을 연결하는 하이픈!



<몽상의 시학>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이걸 인용하는 짧은 한 문단을 놓고 (왜 이 짧은 한 문단이 이렇게 어려운가) 고난 겪는 중이다. 

바슐라르에게는, (사실 저보다 더 웅장, 더 거창한 때가 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저런 것이 삶의 "우주성"이었다. 

내 주변의 물질 세계, 내 주변의 자연이 단순 기억이 아니라 "전설"의 영역이 될 때.


삶의 우주성이 복원될 때, 삶이 품는 전설의 영역에서 우리가 "영웅"(.....)이 될 때 

그 때 복원되는 위대한 도덕이 있다. 


이런 내용을 바슐라르의 말로 직접 읽으면 

설득, 납득이 될 뿐 아니라 사실 바슐라르를 경배하게 된다. 

마을과 하늘을 연결하는 하이픈이라니.................. (웁니다. 무릎을 꿇습니다....) 


내가 해설, 논평, 하기 시작하면 

바슐라르 언어에 있던 그 매혹이 사라진다. 그 매혹이 없이는 (사실 그 매혹이 있어도지만) 

우주성. 전설. 영웅. 위대한 도덕. (......) 이것들을 이해할 사람이........ 


"시도하라.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이것 정말 금언, 금처럼 귀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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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K. 밀러는 이런 책들을 썼다. 

오래 전 읽고 깊은 인상 받지 못했던 책이 오른쪽, But Enough About Me: Why We Read Other People's Lives. 

다른 두 권은 아직 본 적 없는데 그녀의 파리 시절 회고록이라는 왼쪽 책, Breathless: An American Girl in Paris, 이 책 궁금해진다. 사실 But Enough About Me, 이 책은 내게 아래의 책과 비슷했던 책. 





"navel gazing" 이 영어 단어. "배꼽 보기." 내 배꼽을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기.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 해도 자기 세계, 자기 만족에 갇혀 빠져 나오지 못함. 필리스 로즈의 다른 책들은 보지 못했지만 다른 책들은 그렇지 않을 거 같은데, 정말 이 책은 "navel gazing"이 어떤 것인가 알고 싶다면 가장 먼저 보아야 할 책이 아닌가.... 생각함. 사실 프루스트가 어느 정도 그런 걸 자극하는 저자인 거 같기도 하다. 여하튼 낸시 K. 밀러의 위의 책은, 제목은 "내 얘기는 됐고!"임에도 실은 심오하게 자기만족하는 책이었다는 기억이 있다. 


그런데 My brilliant friends 이 책 들으면서 아마 잘못 보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보였던 건 표면이었을 뿐일 수도 있을 거 같다. 저 책 사서 읽은 책인데, 책이 지금 집에 있나 없나가 불확실하다. 

이사하고 나면 그러고 책 정리하고 난 다음에나 알 수 있을 듯. 


밀러의 책은, 십여년 만에 이메일로 연락하게 된 옛시절 선생님이 추천한 책이다.

그 샘 자신이 이 책에 중요하게 자주 등장한다. 낸시 K. 밀러의 아주 가까운 제자였다.  

나와 겹치는 시절의 얘기들이 있다. 그 대목들이 안기던 여러 생각들이 있다. 다시 갈 수 없는 그 시절, 그 세계. 


나는 Counterpoint, 이 책이 인생의 실패를 실패가 아니게 하는 법에 대해 아주 많이 알게 했다고 

이제 우리 모두가 회고록을 써야 하고 회고록 클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 드렸다. 


Counterpoint, 이 책 아직 종이책 받지 못했다 (오고 있는 중이다). 종이책으로 보면서 생각이 바뀌게 될까 

조금 두렵기도 한데, 어쨌든 이 책이 알게 한 그 많은 것들 중 "지성은 모두를 구제한다" 이런 것도 있다. 

정직하게 보았다면 무엇이든 이 삶의 옹호가 된다. 이 삶에 기여한다. (....)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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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K. 밀러의 My Brilliant Friends의 세 사람. 

캐롤린 헤일브런. 나오미 쇼어. 다이앤 미들브룩. 

이들 중 헤일브런은 영문학 전공자로 대학원 다닌 사람이면 (세부 전공 상관없이) 모르기가 힘든 분이다.

아닌데? 쉽게 모를 수 있는데? (...) 이견 예상되기도 하는데 아무튼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모르면서 현재 40대 이상이기 힘든 정도. 낸시 K. 밀러가 헤일브런을 회고하면서 헤일브런이 쓴 다수 책들도 

논의하는데 그 중 여럿을 내가 읽었다는 걸 알면서 한편 놀랍기도 했다. 오 지난 세기의 열정이여! : 바슐라르 풍으로 

이렇게 적어도 된다. 그녀의 책들을 열심히 읽던, 이제 갈 수 없는 다른 세계, 다른 시간. 


쇼어와 미들브룩은 내겐 '이름은 들어보았으나..' 저자들. 밀러의 책에서 헤일브런 장 다음이 쇼어 장.  

쇼어는 불문학자였다. 쇼어와 밀러는 둘 다 이십대 후반, 같은 시기에 파리에서 몇 년을 살았다. 이 시절 두 사람이 만난 적이 있는데 쇼어는 그걸 기억했지만 밀러는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 밀러는 남편과 같이 살았고 남편은 파리의 기업 고위 간부들 대상으로 한 영어 강습을 거의 사업 차원에서 하고 있었다. 쇼어에게 남자친구가 있었고 남자친구가 밀러의 남편의 부하 직원이었다. 밀러 남편은 자기 아래 사람들을 부부, 연인 동반으로 불러 파티를 열곤 했는데 그 파티에 쇼어가 온 적이 있고 거기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왜 그녀는 기억하는데 나는 기억하지 못했을까? 그녀는, 남자친구의 보스의 아내이기 때문에 내게 

주목할 수 밖에 없었던 건가? 당시 나는 남편의 부하직원에게도 부하직원과 동반한 이들에게도 아무 관심 없었을 것이다. : 밀러는 이런 회고를 한다. 


삼십대 초반이 되어 이들은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번엔 교수와 학생의 관계였다. 쇼어는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컬럼비아 대학 불문과에 조교수 임용되었고 밀러는 그 불문과의 대학원생이었다. 몇 년 전 보스의 아내 - 부하직원의 여자친구 관계였을 때는 자연스러웠던 나이 차이(밀러가 두 살 연상)가 어색해질 관계였다. 





쇼어, 밀러. 


교수와 학생으로 만났지만 

이 때부터 두 사람은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헤일브런은 밀러보다 15세 연상이니 사실 두 사람 관계는 딱 좋게 "스승-제자"일 관계인데 

그게 그렇지 않았다. 20년을 매주 식사를 같이 하는 사이였음에도 싸우기도 했고 미워하기도 했다. 

(밥 먹다가 싸웠던 얘기 나오는데 좀 웃긴다....... 싸움의 기록. 기록한 싸움은 더는 싸움이 아니게 되는 거 같다.) 


중년 이전의 삶과 중년 이후의 삶은 사실 완전히 다른 두 삶 아닌가? : 요즘 이런 생각 들 때 있다. 

이전의 삶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들이 이후의 삶에는 적용되고 이전의 삶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을 것들이 

이후의 삶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말하지 마세요'. 


이전 삶에서는 절대 제대로는 이해하지도 그러니 절감하지도 못했을 것인데

지금 그러는 것 중에, 생에서 일어나는 (하게 되는, 갖게 되는) 모두가 얼마나 다 한 번일 뿐인가.

오직 한 번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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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K. 밀러의 

My Brilliant Friends: Our Lives in Feminism 이 책은 어제 오디오북 구입했고 

자기 전 틀고 45분 정주행. 


자기 전 오디오북 들을 때 주로 30분 타이머 설정한다. 누워서 듣는데 한참 들은 거 같아도 확인하면 

15분이 안되었을 때가 많고 보통은 아무리 재미있는 책이어도 타이머 완료 전 자게 된다. 그러지 않았고 

45분, 아니면 1시간 설정했던 타이머를 끝나고 나서 연장하고 그랬던 책이 Counterpoint. Counterpoint 말고 그랬던 다른 

책이 있었던 거 같지 않다. 


아무튼. 사실 낸시 K. 밀러의 책에 아주 큰 기대가 있었던 건 아니다. 

오래 전 조금 읽었던 그녀의 글들은 지루했다.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글이 아니었다. 바로 멈출 수 있는 글. 

그러게,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글들의 비밀은 뭘까. 


그랬는데 이 책은 시작하자 멈출 수 없었음. 어제 유독 피곤했던 게 아니라면 

이어서 더 들었을 것이다. 


제목에 이름은 나와 있지 않지만 초상이 나와 있는 그녀의 세 친구, 캐롤린 헤일브런, 나오미 쇼어, 다이앤 미들브룩. 

이들 모두 세상을 떠났다. 00년대에 연달아 있은 일. 00년대는 그녀에게, 지속되었던 애도의 연대.   


그리고 지금 그녀는 폐암 말기. 

이제 세상에 없는 친구들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곧 세상에 없게 될 자기를 애도하기도 하는 상태에서 쓴 회고록이다. 


어제 들은 부분은 캐롤린 헤일브런과의 우정. 

헤일브런은 영문학자고 컬럼비아 영문과의 유명한 페미니스트였다. 

헤일브런이 이미 컬럼비아 영문과의 유명한 페미니스트일 때, 그녀보다 15세 어린 낸시 K. 밀러가 

불문학자로 그 대학에 임용되었다. "모두가 그녀를 무서워했다. 나도 그녀를 무서워했다." 이런 회고도 하고 


무엇보다 내 가슴을 녹인 건 

"헤일브런에게, 자신은 영문학 전공자답게 무던하고 수수하지만 

나 낸시 K. 밀러는 불문학 전공자답게 프랑스적 세련됨과 완벽함을 언제나 구현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프랑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직 그녀 뿐이었다."  : 이 대목이었다. 


헤일브런이 낸시 K. 밀러의 프랑스적 세련됨이라 파악하고 이해했던 것이 

실은 얼마나 그게 아닌가..... 에 대해서도 잠깐 말하는데, 가슴이 녹으며 웃게 된다. 


한편 이상한 일이다. 

왜 다른 사람들의 삶의 회고가 재미있고 

뿐 아니라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는가. 


캐롤린 헤일브런은 77세이던 해에 자살했다. 

"Journey is over. Love to all." 이것이 그녀가 남긴 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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