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철학 팟캐스트 Philosopher's Zone에 출연했던 한 철학자.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원용하면서 행복을 사회적 범주로 재정립하는 작업을 했으며 

작업 결과가 Deconstructing Happiness, 이 제목 책으로 올해 출간되었다고. 


사람들의 실제 인식이나 체험을 보면 행복은 언제나 사회적인데, 이상하게도 철학이나 

심리학에서 행복은 순수히 개인 차원인 무엇으로 여겨졌다는 얘기로 대화를 시작하던데, 공감. 

행복은 사회적이다. 그렇고말고. 그리고 행복, 이 주제로도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아주 잘 활용할 수 있을 거겠다는 생각도 듬. 잘 선택하셨어요. 저도 선택하고 싶네요... 심정. 


그런가 하면 '행복의 철학자' 바슐라르. 그가 행복에 대해 했던 많은 말들 중 

"쾌락은 쉽지만 행복은 배워야 한다" 이 말에 담긴 진실은 어떻게 확대해야할까. 이 말을 해설하는 

다섯 페이지 페이퍼를 쓰라면, 무슨 얘기 쓸 수 있을까. 



*jtbc 뉴스룸 보려고 기다리다 쓰는 포스트.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결론 없고...... 느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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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독립선언을 하고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국이 유럽 문화의 무거운 영향 밑에서 자기 목소리 없을 때 

랠프 월도 에머슨이 케임브리지에서 "The American Scholar" 제목으로 연설하다. 

유럽의 영향에서 벗어나 미국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모색하자고 청하다. 미국이 그럴 수 있게 할 비전을 제시하다. 

올리버 웬델 홈즈 1세는 이 연설이 미국의 "지성의 독립선언"이었다고 평하다. 



에머슨 조금 뒤적이다가 위와 같은 내용을 어디선가 읽고 

"지성의 독립선언 Intellectual Declaration of Independence" 이 대목에 감명 받고 

잊고 있다가 지금 위키피디아에서 찾은 다음 적어둔다. 


한국에도 한국의 에머슨이 있었어야 (가장 가까울 사람을 굳이 꼽는다면 누구일까)

있었다면 역사가 달랐겠고 지금도 작지 않은 도움 그에게서 받을 텐데, 그게 그럴 수는 없었던 거라면 

지금이라도, 각자 개인 차원이라도 지성의 독립선언... 하면 좋겠고 해야 하지 않을까. 



*위의 인용, "네 행동이 너무 크게 말해서 네 말이 안 들려" 이것도 진리지 않나.  

정말 그래.. 생각하자마자 떠오른 몇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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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담배 사러 (흐으 ㅜㅜ) 갔다 오면서 

"-- 하는 사람 드뭅니다" 같은 말을 수업에서 너무 많이 하는 건 아닌가 잠시 생각. 

공정하게 판단하는 사람 드뭅니다. 다른 사람 말을 공정하게 끝까지 듣는 일, 그거 되는 사람 드뭅니다. 

자기 분야/전공에서 유능함, 이것만이 기준이어도 탈락할 사람 많습니다. 이게 다 사실이라 해도 (사실이겠지)

그런 말 할 때 어떤 학생들은, 부정적인 (조금이라도) 영향 받는 것 같다. 위축되는. 같은 얘길 다르게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나. 다른 사람 말을 잘 듣기, 그게 일류다. 뭐 그럴 수 있나? (그럼 이류, 삼류는?) 


그런데 어쨌든 나쁜 사람(=병신) 알아보기, 알아보고 피하기는 

나라면 그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일 때 많다 보니 

그런 내용으로만 끝없이 얘기할 순 없겠지만, 가끔 그러나 진정 생각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얘기해보고 싶긴 하다. 그 사람이 날 사랑하는 줄 어떻게 아느냐고? 그 사람이 나에 대해, 나의 삶에 대해 무엇을 바랄 수 있는 사람인가 보면 됨 : 수업 리딩과 토론 질문도 '사랑' 쪽이던 어느 날 이런 얘기 한 적이 있고, 어떤 학생들은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 그 질문으로 돌아보면 이 세상에 사랑은 없다는 결론이 납니다. 같은 말은 덧붙이면 안되겠지. 


내가 알았던 병신들 중엔 

자신의 악행을 정확히 (내용과 시기 모두) 기억하고 

그 동기까지 해설할 수 있는 인물도 있었다. 아 쓰고 나서 웃게 되는데, 웃으면서 가슴이 아픔. 인간. 인간에게 무엇이 불가능하냐. 어쨌든, 자기 동기도 객관화할 줄 알던 인물. 그리고 그것이 악행임에 순수히, 온전히 기뻐하던 인물. 


<계몽의 변증법>에 나오는 뜻밖의 (이런 책에 이런 문장이. 이 책은 무슨 책이냐..) 

문장 하나가 "영혼, 그것은 죄의식이다"다. 내 경우엔 인생의 어느 시점 이후부터, 죄의식... 이것도 정말 드문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 전에는, 인간이면 누구나 자기 잘못이 부끄럽고 가책을 느끼며 자책한다 였으나. 



*(병신) 생존자의 회고록. 이 제목으로 연재하려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목은 바꾸고, 아마 연재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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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82년에 초판 나오고 

올해 7월 뉴욕주립대에서 Revised and Updated 판이 재간된 <바슐라르: 과학과 상상력의 철학자>) 

어제 도서관에서 받아왔다. 


책이 재간되면서 저자의 감회가 남달랐음을 "감사의 말"과 새로 쓴 "인트로덕션"에서 알아볼 수 있는데

영어권에서 새로이 일고 있는 바슐라르에 관한 관심, 영어권 바슐라르 연구자들에 대해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다. 심지어 바슐라르 "르네상스"란 말을 쓰고 있기까지. 


"일부에서는 바슐라르 "르네상스"라고도 부른 현재의 (바슐라르 연구) 맥락에서 

내 책은 바슐라르 저술 전체에 대하여 하나의 초점을 가진 해설이자 입문이며, 바슐라르의 과학 인식론을 이해함이 그의 시학의 온전한 이해를 돕는다는 논제를 제시한다." 


지금 일군의 학자들이 공저로 Adventures in Phenomenology: Gaston Bachelard, 제목의 책을 쓰고 있다고. 

모든 작가들의 최애 단어라는 "근간예정 (forthcoming)". 


지금의 니체 페이퍼가 끝나면 

울프 페이퍼를 쓰고, 그 다음 페이퍼는 

울프 페이퍼를 쓰는 동안 생각하기로 했다가 

어제 저 책에서 이런저런 대목들 보던 동안 바슐라르와 아도르노 페이퍼를 쓰는 게 좋겠다고 작정했다. 

"형이상학의 세속화: 아도르노와 바슐라르." 제목(제목은) 좋음. 바슐라르 연구에서 "현재의 맥락"이 풍요해지게 

하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야심 ㅋㅋㅋㅋ 도 듬. 


그래서 니체 페이퍼는? 

어디로 가고(가고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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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사이트에도 탄핵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다음 카페 ‘박근혜탄핵추진위’와 네이버 카페 ‘박근혜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에는 이날 하루 박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글이 수십~수백건씩 올라오고 회원 수가 급증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252312001&code=940100#csidxbcb44a7e08af566835639053d3cf2a4 




이 기사 보다가 

아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이. 뭐 이런. 

회원 수가 급증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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