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so에서 올해 나온 프랑크푸르트 학파 연구서
Grand Hotel Abyss: The Lives of the Frankfurt School, 구입신청했던 이 책 도서관에 들어와서 받아왔는데
69년 당시 아도르노에게 반발했던 학생들이 대학의 벽이나 강의실 칠판에 남겼던 문장들 여럿을 "인트로덕션"에서
말하고 있다.
그 중 이것.
"아도르노를 그냥 두면, 자본주의가 영속한다
If Adorno is left in peace, capitalism will never cease."
책에 따르면 학생들의 그를 향한 어떤 비방에도 굽힘없이, 아도르노는 학생들의 편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동류의 정신으로 보았다. 다만 그들의 실천이 잘못됐을 뿐. 책은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우호적이고 ('적대적'이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를 개관하는 두껍고 유명한 책이 하나 있을 것이다. 여하튼 그런 책 아니고) 그들의 질문과 탐구가 지금 우리에게 대단히 적실하다 쪽. 이런 입장에서 아도르노와 학생들의 관계가 아주 조금, 실제보다 조금 더 우호적 방향으로 보인 듯. 그렇긴 한데, 저 반대 방향에서, 심술궂고 악의적이고 복수심에 불타고... : 아도르노가 전혀 이런 사람 아니었을 것임을, 그냥 상상할 수 있다. 학생들이 아무리 격하게 반발하고 그를 비방하더라도, 사적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임.
<미니마 모랄리아> 불어판에서 부제에 쓰인 동사.
한국어판에선 "상처받은".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
영어판은 "damaged." "Reflections from Damaged Life."
불어판은 "mutilée." "Reflexions sur la vie mutilée."
불어의 mutiler와 거의 똑같은 동사가 영어에도 있다. mutilate. 훼손하다. 불구로 만들다.
영어판의 부제가 Reflections from Mutilated Life, 였다면 너무 (너무너무너무) 쎄게 들릴 것인데
사전을 찾아보면 그 영어단어와 거의 똑같은 뜻인 불어의 mutiler는 저렇게 써도 되는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드는 한편, 어쨌든 저 셋 중에선 불어의 제목이 아마 더 정확하고 실감나는 제목일 거라 생각해 보게 됨. 영어의
damaged는, 먼저 떠오르는 건 예를 들면 홍수피해. 테라스가 주저앉고 천장이 비에 젖고.
어쨌든 이 "망가진, 훼손된, 불구화된 삶이 준 성찰"에
사적 복수심은 전혀 .......... 가장 희미하게 암시되지조차 않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