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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수석 며칠까지 하셨죠, 증인?

(10월 30날. 일욜날까지..) 

10월 30일날. 그 때 당시에 증인이 민정수석이었던 것은 맞네요 (잉)? 


최순실은 검찰에서 압수수색 나온다는 것 어떻게 아라쓰까? 

대통령이 알려줘쓰까?



"민정수석 며칠까지 하셨죠, 증인?"

이 말 멋있. 존멋. 으아. Be a man, 혹은 Would you be a man? 

저 말 꼭 하고 싶다면 김경진을 생각하면서 해도 좋겠다. Be a man like 김경진. ;;;;; 


청문회 여러 모로 재미있긴 하다. 

김경진 같은 분 (청문회 전엔 이름도 몰랐던 분. 정알못에서 정치중독으로 직행) 보면서는 

꼭 알고 실천해야 했지만 어디서 한 번 본 적도 없어 못했던 태도, 자세... 이런 걸 마침내 본 것같아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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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ma Moralia 이탈리아어판에서 부제는 어떤 건가 찾아보다가 

아도르노의 이 말 발견. 아무렴 이것도 진리고 말고. 해서 옮겨 온다. 

이걸로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해도 되겠다. 모호함(중의성, 다의성...)에 분개하는 사람과

그것에 기뻐하고 매혹되는 사람. 후자가 한, 2%? 


아래 포스트를 쓰고 보니 

"고귀한 noble" 인간들의 특징으로 니체도 

분명히 잘라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복수심 없음, 이것을 생각하지 않았나 하게 된다. 

니체의 경우엔, 여기서 모순처럼 보일 수 있는 게, 고귀한(강한) 인간은 공격하는(공격적인) 인간이기도 해서. 


우리가 한국어를 쓰는 방식. 

이것만 보아도, 우리의 삶이 우리의 존재가 '훼손되었음 mutilated' 이것 명백히 알 수 있지 않냐고 

자주 생각한다. 문장이 온전한 문장이 되길 어려워할 때마다, 잘려진 사지들이 버둥거리는 것 같은. 

<미니마 모랄리아>와 <계몽의 변증법>에서 자주 환기되는 이미지가 이것(불구화)이기도 하고 그래서 어쨌든 

정말, 아도르노가 얼마나 옳았나 알고 싶다면 고개 들어 반도를........... 이러고 싶을 때도 있음. 


훼손된 우리들 사이에 

복수심으로 들끓는 사람들 많지 않나. 

어떻게든 무엇이든, 자신을 향한 비방이나 공격이 되게 볼 수 있는 이들. 

다들 개인적 경험에서, 이 점에서 놀라고 두려웠던 경험 있지 않을까. 그러는 사람을 

보아서, 아니면 나도 그럴 수 있음을 알면서. 


다음 주 화요일에 성적 마감이고 주말 내내 아마 미친듯이 채점과 성적 처리를 해야할 텐데 

서재에서, 여러........ 나도 한다 "훼손된 삶으로부터의 성찰", 그러며 이런 거 쓰고 있게 될 것같다. 

채점 한 세트 끝내고, 성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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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o에서 올해 나온 프랑크푸르트 학파 연구서 

Grand Hotel Abyss: The Lives of the Frankfurt School, 구입신청했던 이 책 도서관에 들어와서 받아왔는데

69년 당시 아도르노에게 반발했던 학생들이 대학의 벽이나 강의실 칠판에 남겼던 문장들 여럿을 "인트로덕션"에서 

말하고 있다. 


그 중 이것. 

"아도르노를 그냥 두면, 자본주의가 영속한다 

If Adorno is left in peace, capitalism will never cease." 


책에 따르면 학생들의 그를 향한 어떤 비방에도 굽힘없이, 아도르노는 학생들의 편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동류의 정신으로 보았다. 다만 그들의 실천이 잘못됐을 뿐. 책은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우호적이고 ('적대적'이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를 개관하는 두껍고 유명한 책이 하나 있을 것이다. 여하튼 그런 책 아니고) 그들의 질문과 탐구가 지금 우리에게 대단히 적실하다 쪽. 이런 입장에서 아도르노와 학생들의 관계가 아주 조금, 실제보다 조금 더 우호적 방향으로 보인 듯. 그렇긴 한데, 저 반대 방향에서, 심술궂고 악의적이고 복수심에 불타고... : 아도르노가 전혀 이런 사람 아니었을 것임을, 그냥 상상할 수 있다. 학생들이 아무리 격하게 반발하고 그를 비방하더라도, 사적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임. 


<미니마 모랄리아> 불어판에서 부제에 쓰인 동사. 

한국어판에선 "상처받은".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 

영어판은 "damaged." "Reflections from Damaged Life." 

불어판은 "mutilée." "Reflexions sur la vie mutilée." 


불어의 mutiler와 거의 똑같은 동사가 영어에도 있다. mutilate. 훼손하다. 불구로 만들다. 

영어판의 부제가 Reflections from Mutilated Life, 였다면 너무 (너무너무너무) 쎄게 들릴 것인데

사전을 찾아보면 그 영어단어와 거의 똑같은 뜻인 불어의 mutiler는 저렇게 써도 되는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드는 한편, 어쨌든 저 셋 중에선 불어의 제목이 아마 더 정확하고 실감나는 제목일 거라 생각해 보게 됨. 영어의 

damaged는, 먼저 떠오르는 건 예를 들면 홍수피해. 테라스가 주저앉고 천장이 비에 젖고. 


어쨌든 이 "망가진, 훼손된, 불구화된 삶이 준 성찰"에 

사적 복수심은 전혀 .......... 가장 희미하게 암시되지조차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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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16-12-2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천에 대한 관점을 제외하고 아도르노는 무조건 학생들의 편이었다..
처럼 말하는 건 아니다. 이론보다 실천 쪽에 섰던 학생들에게서 ˝권위주의적 성격˝을
알아보았고 염려했다, 같은 내용도 있고. 좀 어수선하게 말하고 있다.
 



조여옥 대위. 


아이히만 법정 진술 본 적 없고 

어떨까 상상해본 적도 없다가 조대위 진술 보면서 

바로 저것, 저랬겠구나! 했다. 


사태를 사소화하는 기이한 침착함. 이거, 이거 똑같을 것 같다. 

하여튼, 나중 아이히만 보게 되면 비교 대상으로 기억해야 할 조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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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16-12-22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사놓고 아직 안봤는데 얼른 봐야겠습니다.~

몰리 2016-12-23 04:13   좋아요 0 | URL
아이히만 법정 장면 조금 찾아봤더니
자세와 분위기까지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동류, 동색. ;;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했던 구글 토크. 

그의 책 God Is Not Great가 주제. 강연 시작하기 전에 그를 소개하는 젊은 여성이 

목소리가 조금 떨리기도 하고, 말을 약간 더듬기도 한다. 긴장했음이 역력한데 (왜였을까) 

어쨌든 그런 모습이,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임. 그녀 옆에서 여유있게 듣고 

있던 히친스가 강연 시작하면서, 비판도 받았고 조롱도 당했던 마초로 말하기 시전. 


Thank you, darling. Sweet. (달링. 으아; 달링. 오마이 달링 하여튼...) 


이어서 하는 말이: Well, thank you so much for that suspiciously grudging introduction.


그리고 이 말에 일동 웃음.  

이거 보던 때, 이 짧은 문장의 저 한 구절 "suspiciously grudging"에, 여기에도 영어의 힘, 매력 있다며 

감탄했었다. 히친스, 어떤 면에서 한국의 히친스를 꼽으라면 김어준 생각할 수 있지 않나. 김어준에게 기질적 

친화력 갖는 농담일텐데, 김어준이라면 저렇게 두 단어로 압축해 말할 수 없고 가령 


"다 좋은데 근데 지금 불만이 있으신 거 같아, 제게..." 

"저만의 의혹에 불과합니까? 네..." 


이렇게 늘려 말하지 않았을까. 

히친스도 그렇지만 영어가 모어인 지식인들 중 

강연이나 대담을 할 때, 거의 정확한 문장들로 말하고 

그 문장들에 고급 어휘들이 드물지 않은 경우 (즐비할 때도 있고), 적지 않다. 

우리의 경우엔, 그런 지식인들이 예외에 속하지 않나. 이 점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비교한다면 

언어의 "압축력"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압축력은 유연성과 연관되고, 유연성은 가속 및 감속과 (읽기의 속도에서. 

어휘당 요구될 체류시간;에 따라 달라질) 연관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에서 영어는 (영어만 잘 아는 거라서, 비교 대상이 우리말밖에 없지만) 탁월한 언어. 사실 이 점을 칭송한 사람들은 적지 않다. 줄리언 반즈도, 영어의 유연성(그가 쓴 단어는 "suppleness")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식. 


정치 중독, 청문회 금단 증상을 

이거 쓰면서 조금 견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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