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library genesis에서 발견했던 책.
(library genesis도 방대하지만 z library가 더 방대한 거 같습니다. 여기도 고고. 여기도 뭔가 암흑의 경로 같긴 한데, 매일 가보아도 늘 그대로 잘 있으니 그냥 뭐 받아 씁.....)
사상가의 입문서나 아니면 본격 연구서나
이 형식으로 쓰는 게 좋지 않나 생각했다. 그와 함께 무엇을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런 강연 포스터도 보았다. 강연 안내는: https://www.adornostudies.org/?p=888
강연 안내를 보면, 아도르노가 우리에게 "저항과 희망의 능력을 배양하게" 도와준다... 는 대목이 있다.
이거. 정말 빈말이 아니잖아. 저항과 희망의 능력.
그게 무엇인가 알 수 있잖아 그의 글들을 읽으면.
아도르노는 맑스와 헤겔 수시로 폭넓게 참조하는데 (책에서도 그러지만 강의록들에서도)
그가 인용하는 맑스와 헤겔도 놀랠놀짜다.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맑스와 헤겔도 하나도 낡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지금 가장 혁신적, 가장 심오한 사상가가 될 수 있는 그런 거겠던 것이었군요. 누가 그렇다고 내게 말했다면 그래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겠지만, 당신의 맑스와 헤겔 사용을 보면서 그들에게 진심 경탄하게 됩니다 심정이었다.
(그런가 하면 인용이 허술한 대목도 적지 않다. 그의 강의록에는 편집자가 붙인 아주 상세한 주석들이 있는데 아도르노가 맑스 혹은 헤겔 인용하는 다수 대목들에 "이 구절은 출전이 찾아지지 않는다" "출전을 찾는 시도를 했으나 허사였다" 주석이 있다. 이게 정상이지요. 즉석에서 말한다면 혼동하거나 정확히 인용 못하는 것이 정상..... 인용 오류가 아무리 많아도 결함이 아닙.)
위의 강연 주제, 형이상학적 체험과 예술의 자율성, 이것 말고도 아도르노와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아주 많은 주제들이 있다. 가히 무궁무진하고 모두가 본격적이다. 진짜로 자기 삶을 던지면서 생각해야 하는.
바로 그런 면모가 "읽기와 쓰기" 주제로도, 그가 "같이 생각하기" 좋은 사상가가 되게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어떻게 읽는가. 왜 쓰는가. 글쓰기는 우리를 어디로 가게 하는가.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