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슨 <천국보다 낯선> 느낌 사진 속의 인물들은 

(좌) 로버트 오펜하이머, (우) 어니스트 로렌스.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 버클리 물리학과에서 동료였다.  

위대한 이론 물리학자, 위대한 실험 물리학자. 두 사람은 극히 다르기도 했지만 극히 비슷하기도 했고 

아주 가깝게 지냈다. 두 사람은 같이 버클리 캠퍼스에서 "위대한 미국 물리학"을 시작한다. 


<원자탄 만들기> 참 재미있는 책이다. 

물리학 얘기 많이 나오는데 심지어 그 중에도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이 책에 담긴 물리학은 진짜 물리학 맞다고, 물리학자가 보증한다고 어느 물리학자가 쓴 걸 보기도 했는데 (학부 역사학 전공이 다인 역사 전문 저자가 전문적인 현대 물리학 내용을 얼마나 잘 다룰 수 있을까 다들 의심이 들겠으니 저런 보증 필요하다) 저자가 물리학을 직접 공부하면서 깊이 이해하고 썼겠다 생각이 든다. 얕게 대강 알면서 이것저것 기존 문헌들에서 오려내 짜맞춘 느낌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러니 와중, 저자 자신이 깊이 흥미를 느꼈을 대목들이 있고 그 '흥미로움'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오펜하이머를 괴롭혔던 악령들. 그것들이 무엇이었나. 

그의 고통은 그의 물리학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했고 멈추게 했는가. 

그는 어떻게 파멸하는가. (....) 등등 이런 문제들에 대해, 아주 빠져들게 쓴다. 


좋은 책일 걸로 예상은 했는데 

예상을 훨씬 넘어 재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인간과 인생, 세계가 이 책 이후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지 않은 것이다..... 같은 말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아직 1/5도 읽지 않은 지점이지만) 생각한다. 뭔가 내게 개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거 같은 책이라는 예감(무려..... 예감!)도 든다. 




<천국보다 낯선> 포스터 이미지는 이런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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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닐스 보어. 

보어 부부. 1911년. 

(*"위대함의 문턱에 서서. at the threshold of greatness"라고 

리처드 로즈는 이 사진에 주석을 달고 있다). 


리처드 로즈에 따르면 보어는 20세기 물리학에서 "second only to Einstein." 

<원자탄 만들기>에 보어 애기가 정말 많은데 칭송도 아주 많다. 그는 얼마나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나. 

러더포드는 보어를 향한 강렬한 애정을 숨기지 못했다. 보어는 다른 물리학자들에게 중대한 도움을 주었고 

영감을 주었다. 리처드 로즈는 보어의 아내도 칭송한다. 그녀는 아름답고 지적이고 강인했다. 그들의 결혼은 끝까지 지속된 결혼이었다. 


세미나에서 슈뢰딩거가 파동 역학 이론을 발표한 다음 

(파동 역학엔 고전물리학으로 복귀하는 내용이 있기도 하다고 한다. 보어의 이론과 정면충돌) 

보어가 슈뢰딩거를 코펜하겐으로 초청한다. 




두 사람은 열차 자리에 앉자마자 논쟁을 시작했다. 논쟁은 코펜하겐에 도착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슈뢰딩거는 감기에 걸렸는데 불행히도 보어의 집에서 묵어야 했다. 보어의 집에서 침대에 누운 그에게 

보어의 아내가 차와 케익을 가져다 주며 간호하는 동안 보어는 침대 발치에 앉아 논쟁을 계속했다. 

"하지만 이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신 이론은.........."  


슈뢰딩거는 결국 폭발했다. 

"내가 원자 물리학을 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문제에 대한 인식을 첨예화하는 갈등이라면 언제나 

환영했던 보어는 마침내 만족하고 지친 자기 손님을 위로했다. "잘한 일이에요. 당신 덕분에 원자 물리학은 

한 걸음 더 결정적으로 진보했습니다." 



이런 거 웃기고 좋다. 시도때도 없이 논쟁함. 

그들의 삶으로 어둡고 탁한 나의 창에 비내리는, 아무튼 그들의 삶으로 

뜬금없이 웃음과 힘을 주기도 하는 20세기 과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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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모습이라 거의 알아볼 수 없지만 

로버트 오펜하이머. 


<원자탄 만들기>에서 오펜하이머 나오는 부분에 와 있다. 

"하버드에 온 그는 로마에 입성한 고트족 같았다" "지적 약탈이 그의 삶이었다" 이런 친구의 회고. 

그가 얼마나 여러 주제를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고 3년만에 최우등 졸업을 하게 되는가 말하고 나서 

리처드 로즈는 이렇게 쓴다. "여기 무엇에 쫓기는 절박함 같은 것이 있다. 하버드와 전통적으로 결부되는 권태의 분위기를 아무리 드리워도 그 절박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오펜하이머 세대(그보다는 좀더 나이가 많긴 하지만) 유럽 물리학자들과 그를 비교한다. 

"(대학에서) 오펜하이머는 자기를 찾아야 했다. 이게 유럽인들에 비해 미국인들에게 더 어려운 일인가? 

레오 질라드나 에드워드 텔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견고하게 그들 자신이었던 걸로 보이는 사람들이다." 



저런 문장들을 읽고 보니 정말 그렇게 보인다. 

흔히 유럽인들은 일찌감치 자기 자신인데,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해야 할 자기인식이 미국보다 유럽에서 더, 이미 주어져 있다는? (문장이 이게 뭐 이런 문장이...) 

미국에서는 자기를 "만들어야" 하고 유럽에서는 자기를 "끼워넣기"만 해도 되는? 


한국에서는 어떠한가. 


<원자탄 만들기> 저자 리처드 로즈는 아주 어려서 (4살?)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는 자살했다. 

아버지가 재혼을 하는데 새어머니는 리처드 형제들을 굶기고 학대했다. 리처드 부모는 형제들을 

소년원에 맡겼고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 이 형제들은 소년원에서 성장했다. (....) 대략 이런 내용이 

리처드 로즈 위키피디아 항목에 나온다. 소년원에서 성장하고 리처드 로즈는 전액 장학생으로 예일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34년생이라 지금 꽤 고령이신데 최근까지도 쉽지 않은 주제 집필을 하고 있다. (18년에 <에너지의 역사>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도 널리 호평). 


이 정도면 유년기, 청년기까지 "damaged life". 

그런데 그의 책에서 그 훼손된 삶이 남겼음직한 그 무엇도 감지되지 않는다. 

오펜하이머와 다른 종류였겠지만, 로즈도 공부에 망명했던 사람일 것 같다. 

그러니까, 그의 공부는 지속되는 정신분석이고 자기이해고 치유였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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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오디오북도 있지만 종이책도 사두었었다. 

읽고 싶지만 언제 읽냐. 이사하면 읽냐. 하다가 길고 덥고 습한 여름에 이런 책이 제격이겠지 

인류의 위대함, 무엄함, 역사의 잔인함, 냉엄함, 등을 알게 할 책 아니냐 (.....) 꺼내 와 봤다. 

원자탄 발전에 자기 몫을 한 다수 물리학자들의 집단 전기 같은 책이기도 해서 전기 애독자라면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가게 될 책이기도 하다. 


어니스트 러더포드. 뉴질랜드 오지에서 감자 캐던 촌놈이었던 러더포드. 

케임브리지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는 전보가 왔을 때 그는 감자를 캐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캔 마지막 감자다!" 그는 삽을 던지며 외쳤다. 


영국으로 온 그는 어떻게 뛰어난 물리학자가 되었는가. 그라는 물리학자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이 주제에 대해 여러 재미있는 일화들을 차근차근 들려준다. (하나씩 다 올리고 논평하고 공유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는 그 자신도 노벨상을 (물리학상이 아니라 화학상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그의 평생 농담 대상이 되었다는) 받았지만 그의 문하에서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기록은 아직 능가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닐스 보어가 그의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고 말할 때 그건 조금도 공허한 말이 아니게 된다. 


그가 제자들에게 행사했던 독특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권위적이지 않은 부성의 카리스마. 

실험실에서 그는 "파파"로 불렸다. 학생에게 탐색이 필요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는 집중해서 세심히 끝까지 들었다. 

그는 호쾌하게 웃었고 농담했고 노래했다. 그런데 그의 이런 면모를 억압하는 막강한 제자가 그에게 있게 되는데 




 


헨리 모셀리. 

Henry Gwyn Jeffreys Moseley. 1887-1915. 

그는 혼자 있기를 좋아했고 신중했다. 러더포드를 "파파"라 부르는 등의 친밀한 행동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실험실에서 러더포드가 조심하며 행동하게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 그였다.  

그는 러더포드가 실험실을 자기 식민지처럼 운영한다고 생각했다. 


연도를 보면 바로 짐작되지만 

그는 1차 대전에서 사망했다. 27세. 전쟁이 나고 그는 바로 참전했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1916년의 노벨 물리학상은 그의 것이었다고, 후대의 물리학자와 논평가들은 말한다고 한다. 


모셀리의 업적이 (27세에 죽었지만 그의 이름을 딴 "모셀리 법칙"도 있고 위키피디아 항목이 짧지 않다) 

어떤 업적인가는 몇 년 지나야 어렴풋이 이해할 거 같다. 러더포드의 업적도 그냥 막연히 대강 모호하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렇긴 한데 


스승을 조심하게 만들던 제자. 

이거.......... 이런 게 폭풍 간지 아닙니까. 저세상 텐션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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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에 러셀은 그가 참여했던 교육 개혁 프로젝트가 '돈먹는하마'여서 

거기 들어갈 돈을 벌기 위해 대중 저술을 다수, 빨리 집필했다. <행복의 정복> <나는 왜 기독교도가 아닌가> 

<결혼과 도덕>이 다 그렇게 쓰인 책들이다. 


<결혼과 도덕>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평가했다. 


"최악인 곳들에 다녀왔다고 누가 내게 말한다면, 내게 그를 판단할 권리는 없다. 

그런데 거기 다녀올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우월한 지혜 덕분이라고 그가 내게 말한다면, 나는 그를 가짜로 판정할 것이다." 


무슨 말인지 다 이해되지는 않지만 

("최악인 곳들" = 결혼? 러셀이 했던 두 번의 결혼? 세상의 모든 결혼? 

"우월한 지혜" = 결혼의 실체를 알아도 결혼을 택하는 지혜? ......) 

내가 러셀이고 내 책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이 저런 생각임을 내가 알게 된다면 

나라면 비트겐슈타인과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이 안될 것이다. 안되고 말고다. 

그래 나는 가짜다. 인정한다. 혹은, 동의하지 않지만 너의 판단을 존중한다. 진심이다. : 이러게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짜든 아니든, 너의 독창적인 연구가 철학을 위해 극히 중요하므로 케임브리지에 네가 연구비를 받을 자격이 됨을 내가 말하겠다..... : 이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러셀은 저것들이 다 아무 문제 없이 되던 사람이었다는 것.


20년대 초에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은 후 

두 사람은 더 이상 "친구"는 아니게 된다. 비트겐슈타인 전기를 보면 

러셀이 한 스무 배쯤은 더 참았던 사이. 그 어떤 일이 어떤 일인지는 분명치 않아서 레이 몽크는 

자신의 추정하는 바에 대해 쓰는데, 충분히 절연할 만하고 절연하고 난 다음에 다시 볼 일은 (그러니까, 러셀 편에서) 

만들고 싶지 않아졌을 사정이다. 그런데 러셀은 (개인적 접촉을 피하긴 했지만. 그와의 대화를 극히 피곤하게 여기면서) 언제나 변함없이 비트겐슈타인의 편이었다. 그의 지성, 성격, 업적 모두를 옹호했다. 


러셀. 

다시 보게 됨. 

................ 러셀을 다시 보게 만드는 비트겐슈타인 전기. 

이제 러셀 글들 보면, 극히 우호적인 색안경 끼고 보게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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