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8월 불어판 배송 받고 나서
남긴 노트들을 찾아보니 이런 것들이 있다.
Comment le héros devint écrivain: tel est le fil secret, l’axe du roman jusqu’au Temps retrouvé, où le héros, à la faveur d’une série d’extases qui lui rendent le temps perdu, comprend que la vraie vie, le seul salut, est dans l’art.
7월말 주문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오늘 도착. Year(s) of Reading Proust 게시판이라도 만들까 하다가 그러지 말고 그냥 꾸준히 매일 조금씩 읽은 부분의 기록을 남기기로. 40쪽쯤 되는 긴 "서문"이 <스완네 쪽으로>에 있다. 저자, 앙트완 콩파뇽. 금시초문.
1908년 가을, "나는 소설가인가?" 프루스트는 자문함. 작업에 착수했던 해의 끝으로 향해 가면서. 언제나 그는 소설가이길 원하겠지만, 그러나 그 욕망은 실현 불가. 바로 이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제. 게으름이 병이 슬픔이, 쓰기를 꿈꾸는 책 앞에 장벽을 세운다. 그리고 죽음의 문제. "죽음이 내게 경고한다. 곧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갑자기 글쓰기에 속도가 붙는다. 작품이 피어난다. 형식과 구조가 생겨난다. 09년 가을 전에, <콩브레>의 1,2부가 완성됨. 어떻게 1년전 그토록 자신없었던 작가가 (단 1년만에) 진정한 소설가일 뿐 아니라 한 세기의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Recherche의 주인공은 베르고뜨를 '데모데'하게 만드는 "새로운 작가"다. 베르고뜨와 달리, 프루스트는 classique, 이지만 동시에 언제나 déconcertant할 것이다. *2페이지 읽음. 이 해설은 거의 '정통' 해설일 것같다.
La Recherche du temps perdu est avant tout une recherche de la vérité, un roman philosophique qui répond à une doctrine esthétique: l’art est sans commune mesure avec la vie, il la transcende, car il est la vraie vie: le moi créateur n’est pas le moi social, l’artiste crée en descendant en lui-même.
이건 거의 이만큼 긴 문장에 이어지는, 문장의 일부다. 불어가 분명 영어보다 문장쓰기에서 제약이 덜하다고, 이 "서문" 읽으면서도 생각하게 된다. 예술가는 사회인이 아니다. 이런 얘긴 아무도 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 만일 예술가는 반드시 사회 속에 있다.. 이 말에 2/3의 진리가 있다면, 예술가는 사회인이 아니다에도 적어도 1/2의 진리 있다고 적어두고 싶다. 자기 안에 내려감으로써 예술가가 창조된다.. 이 말에도 보기보다 깊은 뜻이 있게 할 수 있다. 바슐라르의 여러 문장들을 이 밑에 동원해도 될 것이고.
"나는 위대한 법칙을 찾고 있는 지점에서, 사람들은 내가 세부의 탐구자라 여긴다. Là où je cherchais les grandes lois, on m’appelait fouilleur de détails."
2권 표지는 이렇다.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몽크리프는 Within a Budding Grove.라고 옮긴 제목.
바슐라르 <부정의 철학> 영어판 역자 서문이 이 제목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축어적 번역은 그로테스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누구나 안다. 프루스트의 A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가 "In the shade of the blooming girls"로 번역된다면, 그건 재난이다. 하지만 몽크리프의 독창적 해결, "Within a budding grove"는 프루스트 제목의 번역이 전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원제의 정확한 시적 해석이라고 누가 판정할 수 있는가?"
하루 10분, 단 한두 문장이라도 좋겠으니
매일 프루스트, 아니면 바슐라르 불어 문장들을 공부하는 일. 이것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