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학에 대하여" 


우린 우리의 기억을 채우기 위해서만 공부하고 우리의 이해와 양심은 비어 있게 내버려둔다. 

낟알들을 찾아다니는 새들이 때론 낟알을 맛도 보지 않은 채 부리 안에 간직했다가 새끼들에게 모두 먹이로 주듯이, 우리의 현학자들은 책들 속을 누비며 오직 그들 입안에만 머물 지식들을 약탈한다. 그럴 때가 오면 뱉아내서 바람 속으로 날려보내기 위함이다. 


이 어리석음이 온전히 내것이기도 함은 경이로운 일이다. 내가 이 글들을 쓰면서 거의 언제나 하는 일이, 위에 적은 것과 같은 일이지 않나? 여기 이 책에서 하나 저기 저 책에서 하나 날 즐겁게 하는 말들을 구걸해 얻어와서는, 그걸 보관하는 것도 아니고 (내게 창고가 있지도 않으니) 이 글들 속으로 옮겨 놓는다. 진실을 말한다면, 이 말들은 그들의 원래 자리에 있었을 때 내것이 아니었듯이 이 글들 속으로 옮겨져도 내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현재의 지식에서만 배운다고, 미래의 지식에서 배울 수 없듯이 과거의 지식에서도 배울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이 어리석음보다 더 나쁜 건, 새끼새들이 그렇듯이 현학자들의 학생들도 자양과 지식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식은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전해지는데, 오직 그같은 전수를 전시한다는, 남들에게 그에 대해 말하고 그에 관한 이야기들을 지어 보겠다는, 목적에서다. 지식은 이들에게, 오직 셈의 수단일 뿐이며 셈이 끝나고 나면 쓸어 내버리는 전표의 가치와 용도를 가질 뿐이다. "그들은 남들 사이에서 대화하는 법은 배웠지만, 자신과 대화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키케로). "말재주가 아니라 조타력이 필요하다네. Not talking, but steering, is needed." (세네카). 







오래오래 보관만 한 이 책, 오늘 꺼내 보았다. "Of Pedantry" 이 제목이 끌려서 보는데 

재미, 음 이상한 재미 있다. 몽테뉴의 에세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왜 그리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음. 


위에 옮겨 온 대목.  

그 어리석음은 자기 것이기도 하다더니 바로 또 두 개의 인용을 하는 몽테뉴. ;;; ㅋㅋㅋ ;;; 좋다. 

애독자들은 예외없이 자신을 이 글들 속에서 본다더니, 나는 오늘 처음 읽은 거나 마찬가지임에도, 저 대목 내 얘기라고 바로 알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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