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학교 대자보 게시판에서 

<존재와 시간> 영어판을 영어와 한국어로 읽는 모임 공고를 보았다. 

매주 두 시간, 한 시간은 영어로, 한 시간은 한국어로 토론한다고. 구성원은 이러하다고 적혀 있지 않았지만, 학부생들이 하는 걸로 짐작했다. 나야말로 이런 거 해야하는데... 하고 싶다고 연락하면 (나이 많다고) 싫어하겠지. 


스탠포드엔 (나와 아무 인연도 없는 학교를 자꾸, 거의 언제나 칭송의 맥락에서 언급하자니 비굴을 자청하는 것같다만) 구글 검색어 자동완성도 되는 "철학 읽기 그룹"이 있다. 교수, 대학원생, 학부생이 참여하는 모임. 로버트 해리슨은 이 모임에서도 적극적이어서 Entitled Opinions에서 이 모임 얘기도 가끔 한다. 스탠포드 철학과의 래니어 앤더슨이 게스트, 사르트르가 주제였던 에피에서, "언젠가 당신은 철학 읽기 모임에서, 데이트의 유일한 목적은 섹스라고 말해 즉각 비난을 유발했었죠..." 이런다거나. (이 말에 앤더슨은, 차근차근 자기 뜻을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이 모임도 아마, 지상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드림" 토론 모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스탠포드의 이 모임 웹사이트에 올라오던 행사 비디오나 오디오 클립, 텍스트 내용을 보면, 이런 모임이 존재하고 제대로 운영되는 학교가 있다는 것에만도 놀라고 부러움의 한숨, 그런 거 날 수 있다. 


한국에서 이거 되는 학교 있을까. 특정 학교를 떠나서, 가능할까. 생각해 본 적 있는데, 

큰 문제 하나가 토론 대상이 될 판본의 결정이 아닐까 했다. 어떤 책을 택하든, 영어로만 읽은 사람이 있고 한국어로만 읽은 사람이 있지 않겠어. 원어가 영어가 아니라면 원어로만 읽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토론을 시작할 언어부터, 공통의 지점을 갖기 어려워. 한국어 번역이 있는 경우, 그 번역을 읽지 않았다 해도 토론을 앞두고 읽도록 강력 요구할 수 있을만큼 그 번역이 뛰어난 사례는 많지 않을 것이고. "철학" 리딩 그룹이 아니라 "철학의 번역에 관한" 리딩 그룹, 이래야 공통의 지점이 있고 할 얘기도 많겠다. 


(*물론 판본보다 더 근본, 결정적인 난점이 있겠지만, 그건 나중에.............) 


그런데 어쨌든 그런 모임이 있고, 

학부생으로 그런 모임에 참관하면서,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보는 낭만주의의 유산, 영국의 문학 전통은 울프에게 어떤 영향을 남겼나.. 이런 얘기 멋있게(음 이거 중요함) 해주신 선생님이 있었다면, 대학 시절의 추억이 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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