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173번 단장. 


심오함과 심오해 보임. -- 자신이 심오함을 스스로 아는 이는 명료함을 성취하고자 한다. 무리에게 심오해 보이고자 하는 이는 모호함을 성취하고자 한다. 무엇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심오할(깊을) 거라고 무리는 믿기 때문이다. 무리는 소심하고 물 속에 들어가기를 싫어한다. 




카우프만이 여러 곳에서 인용하는 단장. 

카우프만에게, 그의 글쓰기, 철학하기 스타일을 강력히 옹호하는 니체의 말이기도 했을 것이다. 


당연 거의 언제나 맞는 말이겠지만 아도르노 같은, 바슐라르 같은 (읽은 건 없지만 여기저기서 듣기에, 스피노자도. 그밖에도 여러) 저자들이 명료함, 투명함의 50 shades, 이런 걸 자기들의 예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겠지. 바슐라르의 어떤 문장들은 (사실 많은 문장들이) 이것이 이 점에 대해 가장 투명하게 말할 수 있는 길이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투명함이라 그렇지... 같은 생각 하게 한다. 프루스트의 경우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을 거라서, <스완네 집 쪽으로>에는 (혼자 읽던 내가 내게. 사소한 1인의 사소한 반응) 그게 쓰여졌다는 자체가 기적같고 재연은 물론이고 모방도 영원히 불가하리라.. 감탄을 자극하는 문장들이 있다. 역시, 투명함인데 프루스트가 성취하는 그 방식의 투명함. 


뭔가 뒤적이다가 작년 이맘때 신경숙 표절과 관련해 나왔던 얘기에서,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 비포괄적 문헌적 유사성. 이 구절 적어두었던 걸 발견. 


뭐라 할 말이 (쩜쩜쩜). 하여간 그걸 보고 니체의 이 단장을 인용, 기록해두고 싶어짐. 


*저 구절들에, "심오해 보임"이라는 위엄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님! 심오해 보임에도 못 미치는. 한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