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깊이 와 닿았던 한 구절. 

(와닿음의 1-10 척도에서 한 9.1 정도? 심장이 찔리는 듯한, 그런 건 아니었지만 꽤 강력했다). 


인간관계 역시 시간을 잡아먹고 그 썩은 것으로 자양분을 삼는 듯하다. 생각이 좀스러운 자들을 상대하며 우리 자신을 낭비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교양은 없으면서 선입견과 진부한 생각에 찌든 그네들의 말이 우리를 늙게 한다. 수다쟁이들에게서 권태를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대화에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가 약해서라기보다는 예의 때문에 -- 게다가 그들이 친구 혹은 지인이라서 -- 그런 수다쟁이들의 존재를 참아줄 때가 많아도 너무 많다.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점심식사 혹은 저녁식사 한 번이면 그들의 영향력이 우리에게 옮아오기에 충분하다. (35) 




어쩌다 전화를 하게 되면 짧게 하고 끊더라도 몇 시간은 머리가 아프고, 

식사 혹은 식사와 술을 같이 한다면 그 후유증이 며칠은 가던 사람. 이런 일이 20대에도 있었나? 

그런 (한때 친구 혹은 지인이던 사람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지는) 일이 중년;은 되어야만 일어나는 일인지, 아니면 일어나려면 십대에도 이십대에도 일어나는 일인지. 이게 진짜 알고 싶으니 20대로 돌아가 반년쯤 살 수 있다면 이 문제도 잊지 않겠다. ㅋㅋ 그러기도 했다. 


어쨌든 타인이 내게 행사하는 "영향력" 이것이 막강할 땐 얼마나 막강한가를 

젊을 땐 몰랐고 이제야 알기 시작해서, 그게 때로 아주 그냥 대단히 놀라울 때가 있다. 이 영향력은 좋은 방향으로는 드물고, 거의 언제나 나쁜 방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그런 사람도 만나야 할 때가, 자주는 아니지만 있긴 있어서) 한 번 만나면 적어도 두 달은 그 기억에 시달림.. ㅋㅋㅋㅋ; 같은. 그 일로 인해 내가 훨씬 더 지치고 나쁜 사람이 됨.. 같은. 


이젠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rarely에서 never로 이행 중. 완전히 이행하진 못하겠지만). 


서른 다섯이 넘었으면서 우리에게 가르칠 것이 없는 사람이면 만날 가치가 없다는 시릴 코널리 말을 보면, 

서른 다섯이 넘은 사람 중에 타인에게 "좋은 영향"일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같은 의문도 든다. 특히 한국처럼 노골적으로 나쁜 가치가 지배하는 곳에서, 그것에 언제나 저항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나? 개인이 사회 아닌가, 특히 여기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