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와 여가적 인간의 차이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다. 노예는 여가적 인간과 달리 스스로 '소외'될 수 없으며 그러기를 원치도 않는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앙리 르페브르, 기 드보르 같은 프랑스의 반체제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소외 개념, 다시 말해 부정적 의미의 소외 개념은 루소주의적인 가정에 기대고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여가적 존재이지만 도착적인 사회체제와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성을 변질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정은 사태를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부정하는 것이다. 인간들을 주의깊게 관찰해보기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들은 자기들의 '인간다움'을 왜곡할 노동을 견뎌야 할 때, 혹은 여가를 자기 뜻대로 보내지 못할 때, 괴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긴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다른 사람들처럼 일하고 노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37) *번역 일부 수정. 


오늘 대출해 집에 오는 길에 읽기 시작했다. 

노예와 여가적 인간은 사실 두 다른 종이다.... 라는 이 대목에서, 

20% 쯤은 동의하는 기분이기도 했다. 노예 아닌 존재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간들을 알고 나면, 

저자가 적은 것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때가 누구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 동의하지 않게 되는 건, 

환경이 인간을 형성하는 힘, 이게 점점 더 커보이고 요즘은 거의 결정적이란 생각도 들기 때문. 

이건, (이거 좀 이상한 이유긴 하다) 아마 한국에서만 볼 수 있을 유형의 찌질함. 이것을 한국에 다시 와서 어느 순간부터, 영원히 어디서나 보고 있기 때문에. 특히 남자들. 거의 남자들. ㅋㅋㅋㅋㅋㅋ 


저 사람은 한국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사람이었을 수도 있어. 

아니 그래 본질은 같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저런 발현은 하지 않았을 거야 다른 데서 태어났다면. : 이런 생각 하다 보니, 인간이 타고나는 무엇과 그가 되어가는 무엇 사이엔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같음. 점점 더. 


어디선가 아도르노가 (그 누구도 아닌 아도르노가) 

청소년기 그가 받은 교육이 다르고 더 좋은 교육이었다면 

지금의 그와는 다른 사람일 거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같은 얘길 쓰기도 했다. 그가 받은 교육보다 더 좋은 교육이 가능해??? 어떻게?? : 이런 의문이 진지하게 들기도 했고 그런데 무엇보다, 무려 아도르노가 이런 심정일 때가 있었다면, 이 문젠 종료. 교육은 사람을 바꾼다. 아주 많이 바꿀 수도 있다. 이 쪽으로 종료. 


*니체, 페소아 챕터 지하철에서 끝내고 프루스트 챕터 읽기 시작했는데, 

남은 부분도 주로 지하철에서 읽기로 함. 책이 작고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 좋다. 내용도 지하철에서 읽기 좋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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