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와 이다 오버벡. 


"오버벡의 급진주의"라 쓰면서 니체가 생각했던 건 뭘까. 

사고의 힘으로 현실을 관통하지만 그게 (현실이) 다가 아니라 믿음. 이해와 초월의 결합. 비판과 구제의 결합. 그것들을 보여주는 정신적 태도. : 이런 거 아니었을까. <오늘 신학의 기독교적 특징에 대하여 On the Christian Quality of Theology Today>라는 논문으로 이다 오버벡과 함께 교회에서 추방당했다는 얘기가 <좋은 유럽인 니체>에 나오는 걸 봐서, 신학자로서 순응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거라 짐작되기도 하지만, 사상의 "내용"에서 (정치적인 것이든 니체처럼 자기 학문과 관련된 것이든) 급진적임을 말했던 건 아닐 것같다. 생각하는 방법(기질)에서 급진적이라는 뜻 아니었을까. 





이 책도 영역될 가치가 충분하고 넘칠 것같은데, 안되었다. 

오버벡 자신의 문장들을 볼 수 있다면, 그의 어떤 점을 니체가 좋아했고 급진주의라 이해했을지 알 수 있을 것이나. 


영어판 서한 선집의 "에필로그"에, 

그러니까 저 책의 마지막 편지로, 오버벡이 가스트에게 쓴 편지가 실려 있다. 

니체가 야콥 부르크하르트에게 쓰러지기 직전에 썼던 편지 ("나는 신이 되느니 바젤 대학의 교수가 되길 택할 겁니다" 이 문장이 유명해진), 그 편지를 읽고 니체의 상태가 심상찮음을 감지한 부르크하르트가 그 편지를 오버벡에게 쥐어주면서 오버벡을 토리노로 보낸다. (*편지를 쥐어준 건, 의료 결정이 필요한 경우 니체의 가족이 아니지만 오버벡에게도 결정 권한이 있다고 설득할 수 있기 위하여). 


토리노로 바로 가서 니체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나서, 오버벡이 가스트에게 쓴 편지. 5페이지 분량. 신중하고 합리적이고 체계적이고, 극도로 더 이상 그럴 수 없을만큼 그러면서 동시에 심연을 들여다보는 (들여다보고 아는) 정신. 그 어둠도, 그 어둠의 검음을 아는. ;;; 그 편지에 그런 느낌이 있다. 니체가 그에게서 무엇을 믿을 수 있었을까 알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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