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갈 때 생각은 페미니즘을, 고전부터 책들을 모두 읽고,  

이 세상을 전엔 내게 없었던, 이제 내가 만들어갈 시각에서 면밀히 보기. 같은 거였다. 그리고 대학원 첫 해였나 헌책방에서 구입했던 책들 중에 이것이 있다. <자매애는 강하다>. 


지금 이 책은 집에 없고 어떻게 없어졌는지가 분명치 않다. 염가 페이퍼백이라 아마존에 중고로 팔아봤자인 책. 팔 수 없을만큼 닳고 망가진 상태였기도 하고. 누굴 주기엔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 주변에 없었고. 완전한 호의와 함께 읽기 시작해서 (이게 이래선 안되는데. 과장한다면 심장이 가라앉는 느낌과 함께) 바로 실망하던 기억은 있다. 그리고 책장 한 구석 던져뒀다가 어쩌다 펴보고, 그러다 몇 년이 지나니 책이 사라져 있음. 사실 굉장히 궁금하다. 무엇이 실망스러웠던 걸까. 지금도 대학원 시절 사서 읽던 책들 오랜만에 펴보면, 놀라거나 즐거울 때가 있다. 여백에 적힌 노트들 혹은 열광이나 혐오했던 흔적들 보면서. 이 책도 과거 삶의 중요한 일부인데, 그게 사라져 버린 것임. 함부로 대하다가 잃어버린 것임.  
















대학원 시절 (후반이긴 하다. 페미니즘 훨씬 이후) 굉장히 열광하며 읽었던 저자는 아도르노고, 

아도르노 책들 중엔 <계몽의 변증법>, <미니마 모랄리아>.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유명한 단장엔 이런 것도 있다. 


사교성에 언제나 잠재했던 사악한 원칙이 평등주의 정신에서 완전한 야수성으로 발전한다. 남을 깔보는 것이, 내가 남보다 나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아진다. 피억압자의 약함에 적응하기. 이것은 그를 통해 권력의 전제조건을 승인하기다. 그리고 내 안에서, 지배를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조악함, 무신경함, 폭력성을 계발하기다. 최근의 국면에서, 내려다보는(나를 낮추는) 제스처는 사라지고 그들과 같아지는 경향만이 눈에 띈다면, 여기서 일어나는 권력의 완전한 은폐는 그것이 부정하는 계급 관계가 더욱 완강히 승리하게 한다. 지식인에게, 불가침의 고독만이 모종의 연대를 표현할 유일한 방법이다. 모든 협력이, 사회적 교류와 참여가 갖는 모든 인간적 가치가, 비인간성의 암묵적 승인을 가리는 가면이 된다. 공유되어야 하는 건 인간의 고통이다. 인간의 즐거움을 향한 가장 작은 발걸음마저, 인간의 고통을 가중하는 발걸음이 된다.  


번역은 내가 이것 매일 조금씩 읽던 때 했던 번역이라서, 

순수히 사적 번역.. (그런 말이 성립한다면. 어쨌든, 나를 나만을 위한 번역. 그런 거). *5번 단장이다. 


'이게 진짜 진실이다. 자매애는 강하다고? 그럴 리가. 모두가 야수인 이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야수인가 알아야 해. 연대가 쉽다고 말하는 것이, 그게 인간을 야수로 만들 걸?' : 그 때의 열광엔 이런 면도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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