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절대적이며 초월적인 진리의 계시를 담당했던 상상력이, 이제 그 진리가 오류임을 증명하고 그 진리에 반대하기 위한 논거로 동원된다. 이 점을 달리 표현한다면: 상상력이 20세기로의 여정을 중단해야 했던 건, 절대의 해체가 언어철학자들의 주요 임무가 되면서였다. 이때부터 "상상력"은 중상과 축소의 대상이 되었다." 


제임스 엥걸의 위의 책에 아서 크리스탈이 썼던 서평 에세이, Just Imagine: Three Hundred Years of the Creative Imagination, 결론 즈음에 나오는 얘기. 


절대의 해체는 20세기 언어철학자들만의 임무였던 게 아니고 

정작 칸트도, 칸트의 임무이기도 하지 않았나? (<부정변증법>의 아도르노에 따르면 그렇다. 그러나 사정은 복잡하겠지 심지어 아도르노도 짧은 문단들로는 온전히 전하지 못할만큼. 아 칸트를 읽긴 읽어야할텐데, Kant summer가 유혹적이진 않지만.) 


바슐라르의 상상력 논의에서 상상력은 인간에게 형이상학을 하게 하는 능력. 

상상하는 존재인 한 인간은 형이상학적이지 않을 수가 없음. 내재와 초월이 결합하고.. 등등. 


*아 뭔가 써보려고 창을 열면, 

그래서 몇줄을 쓰고 나면, 갑자기 그 주제가 막대해진다.  

지금도 일어난 일. 바슐라르에게 상상력과 형이상학에 대해, 크리스탈의 서평 에세이에서 (그가 바슐라르를 읽은 건 아니지만) 들려오는 공명을 따라 조금 가보자, 그런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바로 벅차짐. 그래서 이 글은 오늘로의 여정을 중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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