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작품 중에서 가장 난해한 작품이며 동시에 가장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전락>을 힘겹게 번역하여 책으로 펴내게 되었다. 물론 번역의 과정에서 이미 나와 있는 박광선, 이휘영, 김현곤 여러 선생님들의 번역본을 참고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고 영어 번역본도 부분적으로 참조했다. 특히 수다스럽고 교양 있고 유식하며 시니컬한 전직 변호사 클라망스의 끝도 없는 달변을 회화체의 생생한 현장감과 아울러 그 수사적 기교에 손상을 가하지 않고 옮긴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는데, 많은 대목들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채로 그냥 옮길 수밖에 없었음을 안타까워한다. (하략) 


1989년 봄 

김화영 


조금 전 받아본 <전락>. 책을 펴보니 위와 같이 시작하는 "옮긴이의 말"이 먼저 나온다. 

밑줄 친 대목을 읽는 순간, 아무리 역자가 김화영이라도, 이 말은 겸양이 아니라 진실이겠다... 같은 생각이 들고 맘. 이 책은 한국어로는 어떻게, 얼마나 잘 번역하든 역부족인 책일수도. 책을 보고 좋아하게 된다면 영어판과 불어판을 구해야 하는 책. 


수다스럽고 교양 있고 유식하며 시니컬한. 끝도 없는 달변에 회화체의 생생한 현장감. 

이런 달변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곧 생각한 건 My Dinner with Andre. 이건 (당연하다, 월러스 숀과 앙드레 그레고리가 소설을 쓴 게 아니고 시나리오를 쓴 거니까) 실제 대화로 옮겨질 것을 알고 쓰여진 거라 소설적 표현을 넘는 실제 회화체. 영화로 보면 그들의 대화는 문어체가 아니다.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라는 건 몰라볼 수가 없지만 (잉마르 베리만, 하이데거, <거장과 마르가리타>, 초현실주의와 초현실주의자들, 등등등등등.. 화제만으로도) 그렇다고 표나게 지식인들 대화가 아니면서 진행되는 하여튼 수다스럽고 교양 있고 유식한 대화. (미국 지식인들 대화의 한 사례가 Entitled Opinions. 여기선 호스트도 게스트도 외국어도 망설임없이 쓰고 최고급 어휘들을 참으로 적절히, 아무렇지 않게 쓰고 그런다. 어떤 땐 사전이 날아다니는 느낌. 이 단어 이렇게 쓰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전이.) 



이 영화 명대사들을 번역한 적이 몇 번 있는데, 

거의 예외가 없이 전혀 다른....... 세계 속에 존재하는 말들이었다. 번역이 꽤 잘 된 경우에도, 

영어로, 그리고 그 영화 속에 있을 때와, 한국어로 (그 영화 속에 억지로 넣으며) 있을 때, 전혀 다른 사람들이 전혀 다른 얘길 하는 것같은 느낌. 한국에서 하이데거 베리만 초현실주의..... 이런 얘기 하는 사람들의 유형이 워낙 제한되어 있어서? 그것이 번역 안됨의 가장 큰 이유? 


*포스트를 여기서 끝낼 맥락이 아니지만 일단 중단. 

"수다스럽고 교양 있고 유식하며 시니컬한..." 달변. 그것이 왜 번역이 어려운 걸까 생각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이건 적어도 3시간은 생각해야하는 주제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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