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들인 과학 책들 중 이런 것들도 있다.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이 책은 부제가 The Meaning of Genius. 

부제를 저렇게까지 달았으면 "천재" "천재의 의미"가 중요한 내용이 되는 책이긴 할 텐데 

책을 열어보면 바로 첫 페이지에 "나는 천재라는 말을 추방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하고 

그리고 이어서, 그와 비슷한 입장인 이들이 흔히 하는 얘기를 한다. 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었다 해도 그를 만든 건 시대이고 상황이고 문화다. 그와 직접, 간접적으로 협업한 무수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아인슈타인은 불가능하다. 


위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천재"라는 말을 내버려두는 쪽이 될 수는 없는 것인가. 




"천재" 이 말을 추방해서는 안된다, 이 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말들도 있다고 

프랑스 혁명기 정치 연설 읽다가 생각했었다. "우리를 일어서게 한 것은 자유라는 이념의 천재성입니다." 

............!!!! "génie de la liberté" 이런 구절이라 "자유라는 이념의 천재성"이라고 하면 이념은 불필요하게 집어넣은 말이 되겠. 영어라면 genius of freedom. 


저 말 읽으면서 순간 환호, 감동했었. 

그렇지. 이념의 천재성이 있지. 종교의 천재성도 있고. 

무얼 알고 나면, 막을 수 없는 운명 (......) 있지. 


사실 영어의 genius와 불어의 génie는 많이 다른 단어같다. 

영어 단어는 의미가 축소되는 역사를 거친 거 같고 불어는 반대이지 않나 짐작한다. 

어쨌든 영어 단어로는 말할 수 없게 된 뜻들이 불어 단어엔 저 깊은 어딘가에 다 남았고 어른거리는. 

정신, 영혼, 혼령. 등등. 

그러니 불어 단어 génie의 천재성도 있는 것. 




그리고 원칙적으로, 언어의 삶에서 뭘 "추방"하고 그런 것에 반대해야 하지 않나. 

바슐라르의 표현을 빌면 더 이상 쓸 수 없는, 혹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는 말이 있다면 추방할 게 아니라 "의미론의 영구 혁명" 이런 걸 하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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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12-24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몰리님의 서재에 처음 왔을 때 느낌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아주 정리가 잘 된 깔끔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을 보니 참 좋네요.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좋은 포스팅 많이 올려주세요.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내년도 벌써 기대가 됩니다.
복된 크리스마스 되시길 바라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몰리 2021-12-24 15:56   좋아요 0 | URL
아이궁 민망민망쓰, 낮뜨거워집니다. 라로님 서재야말로 ㅎㅎㅎㅎ 그래요.
라로님도 올해 남은 며칠도 내년 한해도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