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중독자로 몇 년 살아오면서 생각해보게 된 몇 가지가 있는데 

물리학 강의를 들어보면 뭐랄까 '공대'형 교수가 있고 인문학자형 교수가 있다. 

후자의 교수들은 문장이 복잡한 편이기도 하고 수준 높은 어휘들을 좀 일부러 쓰는 경향이 있다. 자의식이 발휘되면서 쓰는. 나는 이 단어를 단지 아는 걸 넘어 자주 쓴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섬세하고 좋은 설명이다. (...) 이런 판단을 스스로 하고 있는 거 같은. 이런 교수의 경우엔 가끔, 혹시 인문학 선망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헐. 느낌 들기도 한다. 과학을 했지만 과학만 하지 않았어 나는! 나도 그들처럼 (누구 누구 셰익스피어 전공자) 살고 있어! (....) 공대형 교수는 전혀 그런 면모가 없다. 삶에서 오직 과학(물리학)만 추출하는 능력이 다섯살부터 있었을 거 같은 분들. 참으로 혼란 없는 삶을 살아오신 거 같은 분들. 


같은 주제 강의인데 강의 내용의 수준 차이가 엄청난 경우도 있다. 

미국 대학은 (이건 내 생각일 뿐입니다.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주를 대표하는 주립대라면 아이비리그 학교들과 그렇게 강의 내용의 수준 차이가 있는 거 같지는 않다. 물론 어느 쪽에든 게으르게 강의하고 아무렇게나 강의하는 이들이 있고 그 정반대인 분들이 있을 것인데, 어느 정도 좋은 강의라면 수업 목표, 내용과 진행 방향이 거의 같지 않나 생각한다. 강의의 수준 차이가 엄청나게 느껴진다, 이런 일은 그러니까 수업 목표를 높게 잡을 수가 도저히 없는 학교..... 수업 목표를 반드시 겸허하게 잡아야 하는 학교에 재직하는 교수, 그런 학교에서 뼈가 굵은 교수의 강의. 그리고 수준이 참 높다, 이런 건 스탠포드나 등등 그런 학교에 재직하는 교수가 그 자신 매우 똑똑한 사람인 경우. 


얼마 전 그런 강의 두 개를 번갈아가면서 들었는데 

헐. 헐. 헐의 연속이었. 그런데 어쨌든 둘 중 어느 쪽이든 미국의 경우엔 "인간은 망설인다. 학교는 망설이지 않는다. 학교는 가르친다" 이 말이 성립함을 알게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성립합니까? (....) 사실 이 주제로 할 말이 하도 많아서 <모두가 나쁜 곳에서는 최악을 아는 것이 좋다>를 써야만 하는 것이긴 하다. 나도 쓰고 너도 쓰고. 이것이 내가 미래 세대에 주는 유산이다! (Black Books에 저 대사와 함께 하는 명장면이 있지 말입니다). 22년은 <최악을 아는 것이 좋다>의 해가 되어야 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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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2-21 2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두가 나쁜 곳에서는 최악을 아는 것이 좋다>

아! 이 문장 요 며칠 사이, 알라딘 서재 플친님의 글에서 보고 너무 인상 깊었는데 어떤 책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몰리 2021-12-22 16:27   좋아요 1 | URL
북사랑님, 그게 여기인 거 같아요 ㅎㅎㅎㅎㅎ 제가 쓴. 아도르노의 <미니마 모랄리아>. 저 아래 있습니다. 근데 이거 이 제목으로 정말 우리 씁시다. 같이 쓰는 겁니다! 단수 천인칭! (단수 천인칭, 이건 바슐라르의 ㅎㅎㅎㅎㅎ ˝진리 속에서 하나 되는 학문 노동자˝들을 가리키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