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정신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 극히 시사적인 텍스트로 

서정인의 <강>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자주 인용되었던 아래의 문단. 



"너는 아마도 너희 학교의 천재일 테지. 중학교에 가선 수재가 되고, 고등학교에 가선 우등생이 된다. 대학에 가선 보통이다가 차츰 열등생이 되어서 세상으로 나온다. 결국 이 열등생이 되기 위해서 꾸준히 고생해 온 셈이다. 차라리 천재이었을 때 삼십 리 산골짝으로 들어가서 땔나무꾼이 되었던 것이 훨씬 더 나았다. 천재라고 하는 화려한 단어가 결국 촌놈들의 무식한 소견에서 나온 허사였음이 드러나는 것을 보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못 된다. 그들은 천재가 가난과 끈질긴 싸움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열등생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몰랐다. 누구나가 다 템스 강에 불을 처지를 수야 없는 일이다. 허옇게 색이 바랜 짧은 바지를 입고 읍내까지 몇십 리를 걸어서 통학하는 중학생. 많은 동정과 약간의 찬탄. 이모집이나 고모집이 아니면 삼촌이나 사촌네 집을 전전하면서 고픈 배를 졸라매고 낡고 무거운 구식의 커다란 가죽 가방을 옆구리에다 끼고 다가오는 학기의 등록금을 골똘히 생각하며 밤늦게 도서관으로부터 돌아오는 핏기 없는 대학생. 그러다 보면 천재는 간 곳이 없고, 비굴하고 피곤하고 오만한 낙오자가 남는다." 



80년대에는 자주 인용되었는데 지금은 

서정인이라는 이름도 흔히 듣는 이름이 아닌 듯? 했으나 검색해 보니 최근까지 국어 시험에 자주 선택되는 작품인가 보았다. 80년대초 작품일 걸로 짐작했는데 68년에 발표되었다고. 


저 문단의 화자가 말하는 일은 

정신의 형성 (이건 바슐라르의 "과학 정신의 형성" 이 제목에서 그대로 빌어다 쓰는 구절입...) 이것이 금지된 곳, 차단된 곳에서 일어나는 일. "천재"든 "수재"든 세월 속에 열등해지게, 그럴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곳. 그런 곳에서는 그러니까, 그러므로 "대기만성" 형의 인간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더는 이런 처지가 아님? 

그러려고 하면 누구나 자기가 될 수 있었던 인간이 되어가.... 그럴 수 있게 되었? 

아니면 여전히 너무 많은 불필요한 싸움과 낭비가 인간을 일그러뜨리.;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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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1-09-06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속적으로 한국 대학 교육에 대해 문제 제시해주시네요. 몰리님 최근 페이퍼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변산공동체 윤구병 선생님께서도 비슷한 뉘앙스로 말씀하셨는데, 저도 몰리님 덕분에 서정인 선생님의 <강> 소개받았네요^^ 감사합니다

몰리 2021-09-06 16:48   좋아요 2 | URL
네 대선 경선 시작하고 나서 이재명이 저는 개인적으로 ㅎㅎㅎㅎㅎ (네 개인적으로. 쓰면 안된다는 말, 개인적으로) 참 싫은데 이재명이 될 거 같으니까 불안하고 고달파지는 느낌입니다. 그런 데다가 돈도 벌어야 하고 (한숨). 사실 한국 사회의 변화, 발전은 눈부시다고 해도 과장 아니다 쪽이긴 한데, 그래도 우리에게 더 좋은 일들이 더 빨리 있었더라면... 하게 되어요. 좋은 학자들이 좋은 책을 많이 썼다면!

2021-09-06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