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중고 검색 하다가 보게 된 작가인데 

.... 음 나보다 젊으시겠. 이 생각이 먼저. 흰 머리가 있어 보이긴 하는데 이제 막 시작하는 흰머리? 

시작하지 얼마 안된 흰머리. Kiese Laymon. 2018년 Heavy라는 회고록으로 데뷔했는데 이 회고록은 딥 사우스 미시시피에서 흑인으로 (그리고 아마도 성소수자로, 책 소개 문단은 모호하게 말하고 있다) 성장한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숨이 멎을 정도로 내성적인 (introspective) 서사를 제시한다고.  



 


그의 책에 지금 관심 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의 방. 자기 영웅들의 초상으로 채운 이 방의 풍경. 

오른쪽 아래엔 프레드릭 더글라스. 그의 등 뒤엔 제임스 볼드윈. 

왼쪽 아래엔 누군지 모르겠지만 (알고 싶은) 아마도 흑인 여성 작가. 


나도 이런 방 만들고 싶어진다. 


이제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 이것도 뜻밖에도 행복의 감각, 행복의 습격이었다. 아니 코로나 때문에 1년이 넘게 지하철을 꼬박꼬박 타는 일은 없는 시간을 보냈음에도, 그러나 정기적으로 아침에 (주로 새벽에) 나가서 마을버스 타고 (지하철까지 적어도 15분) 지하철 타고 (도착지까지 적어도 50분) 이랬던 삶이 끝난 걸로 느끼던 건 아니었던 것이었. 수업을 안한다는 것도, 이것도 뜻밖에도 마찬가지. 가르치는 일이 좋은 일이 되는 환경은 실은 만들고 실천하기가 극히 어려운 환경이라는 생각도 든다. 가르치는 일이 보람있다든가 재미있다든가 느꼈던 건 방어기제 같은 것, 디나이얼 ㅎㅎㅎㅎㅎ 망상, 자기기만, 허위의식, 그런 것.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곳에 내가 있었다는 것. 저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곳이 어딘가 아마 있을 것이다. 있어야 한다. 


지지난 학기던가 한 유학생이 성적을 놓고 생난리를 쳤다. 

보통은 속으로 생각이야 어떻든 학생들이 겉으로는 그러지 않는데 이 학생은 대놓고 "나는 고객, 너는 판매자. 너는 내 불만을 해결해...." 였다. 이 학생은 학기 내내 과제 제출이 아예 없었던 것이었고, 그렇다는 점을 그에게 말하고 나서 그러므로 네가 과제 제출을 이제라도 다 하면 그거 보고 성적을 주겠다고 했는데 (..............) 그걸 보고 나서도 아아 무슨 저주의 이메일을 연달아 보냄. 과제를 보내면서 저주함.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했느냐. 그냥 A+ 주어 버림. 이거 받고 입다물어라. 


저런 얘기 이런 공개된 공간에 해서는 안될 것이다. A+은 코로나 시국이라 가능한 점수였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절대평가였던 덕분에. 하튼. 아 이거, 이런 거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어진다....... 했었던 때다. 저 때  말고도 많았지만 저 때가 좀 특별하다. 


일하기 좋은 환경을 집에 만들고 집에서 일하면서 적어도 먹고 살 수는 있을 거 같은데? 

.... 이런 게 희망이 되게 하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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