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자려고 이불 펴다가 

말 그대로 "눈을 의심"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인가. 


의심의 찰나 다음 두 생각이 공존했다. 1) 무생물이다, 2) 생물이다.

굵은 털실 아니면 태그 같은 것이다와

이것이 말로만 듣던 지네다.    


털실은 입김만 불어도 흔들린다와 

지네는 스스로 움직인다, 유연하게. 


이럴 땐 그런 것이다. 의심할 때가 좋은 시절이었지. 

............. 지네가 아니라면 지네"류" 생물임을 알고 나서 

부랴부랴 청소기로 흡입시켜 먼지통으로 보내놓기는 했다. 일반 청소기라 

먼지통이 그냥도 보인다. 먼지 속에서 회전하다가 죽어버려라. 캭 죽어버려라. 아니면 천천히라도 죽어버려라. 

그러나 그것은 먼지통 바닥에 착, 밀착해 움직이지 않았다. 


청소기 헤드 먼지 흡입구를 테이프로 잘 막아놓고 나서 

그래서 이 한 마리는(이게 다인가?)  일단 제대로 감금시켜 놓고 나서 

잘 수가 없었다. 자려는 시도도 (자리에 눕기) 할 수 없었다. 

pc는 꺼둔 다음이었고 아이패드 열고 

"지네" 검색했다. 의자나 바닥에 앉아서 아이패드를 꼭 붙잡고 

마치 그 자리에서 그 자세로 얼어붙듯이 그렇게 자야 할 거 같았다. 


지네는 음 

심지어는 쥐도 누구는 쥐 공포증 있는가 하면 누구는 쥐를 가지고 놀기도 함을 기억하면 지네도 

그것이 자극하는 혐오와 공포가 케바케일수도. 당신이 지네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면 그것이 

자극할 수도 있는 극한의 혐오와 공포를 알기 (추정하기) 위하여 당신은 그것을 가까이서 보아야 한다. 

잡아도 보아야 한다. 청소기 먼지통에 가두고 이틀 동안 죽지 않는 그것이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해보아야 한다. 


약재로 쓰인다는 마른 지네는 김발 같은 것에 죽 줄줄이붙여둔 걸로 흔히 보았던 거 같은데 

(내 세대의 유년기= 전근대) 살아 움직이는 매우 살찐, 검고 붉은 불길한 색의 지네는 처음 본 거 같다. 

곤충같지가 않음. 포유류. 포유류 같음. 


그 날만이 아니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잠을 설쳤다. 

어제야 비로소, 이 집에 사는 동안엔 영원히 생생할 거 같던 그 충격이 많이 약해졌다고 느낄 수 있었다. 

누워도 눕는 게 아니게 (누워 있지만 실은 앉아 있는), 불편하고 우울하게 자다가 어제 비로소 밤의 어둠 속으로 마음 놓고 편안히 내려간다는 느낌과 함께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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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4-15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네 실물 큰거 진짜 트라우마 생길 수 있죠.. 카더라에 의하면 지네는 쌍으로 다닌다는 소문이 ㅎㅎㅎㅎ 한마리 더 잡으셔야 합니다... 🙃(사악한 웃음)

몰리 2021-04-16 05:12   좋아요 1 | URL
아 정말 그 때문에 지속되었던 공포.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공포. 하나 더 있다는 공포.
제발 아니라고 해줘.... 바라면서 검색 계속했더니
쌍으로 다닌다는 낭설이고 흔히 혼자; 다닌다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그런가 하면, 바퀴와 마찬가지로 한 마리 보였다면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군집이 (???? 지네도 군집 생활합니까 리얼리) 있다는 뜻이라는 얘기도 누군가 쓰고 있었는데, 집을 부수고 싶어졌.

공쟝쟝 2021-04-16 07:53   좋아요 1 | URL
제 어릴때의 미신에 의하면 그리하여 그 지네의 시체를 불태워 냄새를 피워 집단 지네들에게 너희는 불태지리라 경고를 보여주셔야 한다는 데!!!!!!

다락방 2021-04-16 07:54   좋아요 2 | URL
오 좀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불태워 죽이는 게 확실한 방법인것 같네요! 그런데 어떻게 불태우지 무서운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scott 2021-04-15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네 보셨다면!
만약 이사간 집에 !
로또! 로또를!

몰리 2021-04-16 05:14   좋아요 1 | URL
로또! 영국에서 금연이 괴로운 ex-흡연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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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얘기 유튜브에서 보고 나서 나도 따라해야 한다! 다짐했던 참이긴 합니다.

다락방 2021-04-16 0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무서워요 몰리님 ㅠㅠ
청소기 먼지통...에 아직도 있나요? ㅠㅠ 저같아도 잠을 설칠 것 같아요. ㅠㅠ
저도 사무실에서 지네 본적 있는데 그 뒤로 다시는 나타난 적 없어요. 앞으로 안나타날 거예요 몰리님. 앞으로 평안한 밤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ㅜㅜ

몰리 2021-04-16 08:19   좋아요 1 | URL
우리집 청소기는 먼지통만이 아니라 먼지통 직전 단계도 투명하게 보이는 청소기인데
먼지통 안에 잡아넣은 지네가 기어나갑니다 저 직전 단계로.

그리고 이제 보이지는 않지만, 그 긴 청소봉? 막대? 를 통과하여 청소기 헤드까지 이행을 하는데
헤드에 투명 테이프를 붙여 놨으니 거기까지 와서 그걸 뚫고 나와보려 꿈틀거리는 지네를 보게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거 정말 핍진한 묘사가 필요한데.

하튼. 쉽게 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죽어야만 그걸 비울 수 있을 거 같았고
그래서 그 안으로 여러 물질들을 흡입해 넣었습니다. 죽은 다음 먼지통을 비우기도 쉽지 않았어요. 먼지통을 잡는 손이 감전되는 느낌이었어요. 잠을 쫓는 가장 확실한 방법: 지네 보기, 지네 잡기.

유부만두 2021-04-20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미 처리하신거죠? ;;;;

몰리 2021-04-20 09:53   좋아요 0 | URL
처리하긴 했는데
아직 고통이 끝나진 않은 상태에요. ㅜㅜ 지네의 환영이 ;;; 어른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