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나우스가드. Why I write 강연에서 뭉크 얘기도 적지 않게 한다. 

뭉크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뭉크 비평에 대해 들어본 게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가 하는 얘기가, 얘기 자체로 새로운 얘기는 아닐 거 같다. 


"그는 그의 시대 지배적이었던 사실주의 작법을 따라할 수 없었어. 그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그렇게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어. 그가 창조하는 공간은 그 작법으로 창조할 수 있는 공간이 아냐. (.....)" 


대강 저 정도 얘기가 반복되는 느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상이 된다. 

이상하다, 뭔가 다 뻔한 얘기 같은데 결국 새롭게 들리는 이것은 무엇? 왜때문에? 


"뭉크는 그의 작법으로 그의 공간을 창조해야 했어.  

그건 그가 세계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야 (because he has lost trust in the world)" : 이런 말은 

새로운 통찰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말인가? 


<나의 투쟁> 원고를 받아본 편집자가 처음 한 말은 "강렬히 고백적이군...." 이런 거였고 

크나우스가드는 이어질 부정적 판결을 기다린다. 그러나 편집자는 이어서 "그런데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어"라 말했다. 그 편집자는 이후 얼마나 자기 판단에 자부심을 느꼈을까.  




이렇게도 문학을 할 수 있다는, ("강렬히 고백적"으로...)  

안도감 없지 않은 그런데 강력한 자극을 준다. 오 그건 써야 해. 써야 한다고 이미 오래 확신하고 있었지만 

왜 어떻게 써야 하나 분명히 알게 한다, 크나우스가드가.....: 이런 자극 준다. 좀 많이 신기했었다. 새벽에 산책하면서 그의 말에 귀기울이다가. 당장은 페이퍼 때문에 못하지만, 당신 때문에라도 꼭 쓰도록 하지요.......... 이 느낌 뭡니까. 2년 뒤에 또 만나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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