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ka, du hast es besser."

1827년 괴테가 "미국에게"라는 시를 썼다는데 그 시에서. 

America, you have it better. 


레이 몽크가 쓴 오펜하이머 전기 찾아내서 읽기 시작했다. 

이 전기에서 1장이 오펜하이머의 가족 배경. 19세기 독일 유태인들의 미국 러시. 이런 걸 다루는데 19세기 독일의 

유태인들에게 미국은 지상에 실재하는, 평민을 위한 유토피아였다는 내용으로 좀 길게 말한다. 귀족들의 쇠락한 성이 없는 풍경. 긴 역사가 품는 오랜 분열과 갈등이 없는 나라. 이제 역사를 쓰기 시작하는 백지 같은 나라. 


이미 미국에 이민해 정착한 유태인들이 유럽에 와서 미국과 미국의 유태인 공동체를 홍보하기도 했다. 

"시민적 평등이 실현되는 아름다운 땅." "여기서는 아무도 유태인이나 크리스천이 아니다. 해묵은 원한은 잊혀진다. 오직 인간으로서만 존중하고 사랑받는다." "유태인으로 산다는 수백년 묵은 먼지를 떨치고 미국으로 오라. 와서 같이 인간이 되자!" 


냇 터너의 노예 반란(1830년. 그 해에만, 냇 터너만 그 시기에, 반란을 조직했던 게 아니라고도 한다. 그러니 정확하려면 더 알아봐야 하지만 1820년대면 이미 미국 남부에서 작은 규모 노예 반란은 심심치 않게 있었다고 짐작)에 대해 알고 있었어도, 오펜하이머 전기에서 저 대목 읽으면서 아 이건 그들의 관점이지, 그들이 (유태인은 미래의 백인이다) 쓴 역사지, 같은 생각 안했을 것이다. 미국의 이런 이미지에 진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정도만 생각했을 것이다. 


Between the World and Me 읽고 나서 저 대목을 읽으니 

타네하시 코츠가 닥치듯 독서하던 시절 (대학 시절) 이 책을 펴고 저 대목을 읽었다면. 

흑인, 흑인 노예는 정말 말 그대로 "natural resource"에 속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민자들의 망상의 고백을 읽으면서 

그가 느꼈을 분노, 같은 걸 나도 알겠다는 

그런 느낌 든다.  


"남부 면화 밭에 스며든 흑인들의 피. 

그 덕분에 미국이라는 정원은 최초의 과실을 얻었다." : 이런 대목이 책 끝으로 향해 가면서 있는데 

딱 저 정도로 말하는 것임에도 (화려하게, 정교하거나 복잡하게가 아니라), 그리고 이미 다 알던 것임에도 

..... 쿵 하는 충격 준다. 


이 책으로 강의하는 과목에서 

강의록을 상세하게 쓰고 있다. 그러면서 하게 되는 몇 가지 생각들이 있다. 

나는 어쩌다 이 긴 세월 낭비하게 되었나. 이게 그 중 하나다. 계속 하던 생각이고 이에 대해 하고 싶은 말 참 많았는데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그걸 이 책이 점점 더 분명히 보게 한다. 아 "대학이라는 땅에 스며드는 비정규직의 피...." 같은 생각인 건 아니다. (웃음. 이게 웃음인지 울음인지... 하여튼). 


어쩌면 그러니까, 정말이지 이것이 내 인생을 구원하러 온 책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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