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인물. 비트겐슈타인의 제자이고 연인이었던 프랜시스 스키너. 

이 관계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놀라운 기록이 있다. 두 사람이 언제부터 

연인이기도 했나는 분명치 않은데, 30년대 후반에 비트겐슈타인이 노르웨이 섬에서 

(그는 이십대이던 13년에 노르웨이 섬에 갔었고 이제 중년의 나이로 또 노르웨이 섬에) 

지내던 동안 스키너가 방문하고 이 때 둘이 연인이었다(섹스했다)는 기록은 비트겐슈타인의 일기와 

스키너의 편지로 전해진다. 


스키너는 극히 명석했지만 그리고 진지했지만 ("진지하다 serious" 이게 또 비트겐슈타인적 미덕이라고 한다) 

동시에 아이같이 순진하고 소박하고 어쩌면 단순한 사람이었다. 그도 서른이 되기 전에 요절하는데 

그가 죽고 나서 비트겐슈타인은 자기가 그에게 썼던 편지들을 전부 찾아내 없앴다. (사실 나는 이것도 

좀 놀랍다. 스키너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그 편지들에 그들이 나누었던 삶에 대한 무슨 얘기가 있든 

고인이 된 사람의 공간에서 자기가 고인에게 쓴 편지들을 다 찾아내고 파괴한다... 이거 좀 잠시 멈춰 생각할 부분). 


이들 관계는 비트겐슈타인이 압도적으로 우위인 관계였다. 

레이 몽크가 그렇게 보일 것을 경계하면서 말을 가리면서 쓴 것 같음에도 

이건 비트겐슈타인이 수시로 "가스라이팅"하던 관계라고 외치는 페이지들이 이어진다.  

스키너는 솜사탕같이 달콤하게 느껴졌을 수많은 편지들을 비트겐슈타인에게 썼다. 

오늘도 당신을 생각했어요. 당신이 내 삶의 일부에요. 당신과 보냈던 시간들이 날 행복하게 해요. 

(......) 저렇게 옮길 때 전혀 담기지 않는 심쿵하는 해맑음... 있다. 아니 여기 Call Me by Your Name 이 있네. 이탈리아 그 하늘의 해맑음.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의.... 육체들. 



하여튼 앞에 적은 놀라움이 뭐냐면 

노르웨이 섬에서 두 사람이 같이 열흘의 "밀월" 같았던 시간을 보내고 나서 

스키너가 영국으로 돌아간 다음. 비트겐슈타인은 일기에 


"그(스키너)가 지금 죽는다면 좋을 것이다. 그런다면 내 "folly"도 사라지게 된다"고 쓰는데 

이 극히 자기중심적 사고가 가혹하다 느껴졌는지 옆에 덧붙인다. "물론 이건 반만 진심이다." 



이것도 멈춰서 오래 생각해 볼 부분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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