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대에 러셀은 그가 참여했던 교육 개혁 프로젝트가 '돈먹는하마'여서 

거기 들어갈 돈을 벌기 위해 대중 저술을 다수, 빨리 집필했다. <행복의 정복> <나는 왜 기독교도가 아닌가> 

<결혼과 도덕>이 다 그렇게 쓰인 책들이다. 


<결혼과 도덕>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평가했다. 


"최악인 곳들에 다녀왔다고 누가 내게 말한다면, 내게 그를 판단할 권리는 없다. 

그런데 거기 다녀올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우월한 지혜 덕분이라고 그가 내게 말한다면, 나는 그를 가짜로 판정할 것이다." 


무슨 말인지 다 이해되지는 않지만 

("최악인 곳들" = 결혼? 러셀이 했던 두 번의 결혼? 세상의 모든 결혼? 

"우월한 지혜" = 결혼의 실체를 알아도 결혼을 택하는 지혜? ......) 

내가 러셀이고 내 책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이 저런 생각임을 내가 알게 된다면 

나라면 비트겐슈타인과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이 안될 것이다. 안되고 말고다. 

그래 나는 가짜다. 인정한다. 혹은, 동의하지 않지만 너의 판단을 존중한다. 진심이다. : 이러게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짜든 아니든, 너의 독창적인 연구가 철학을 위해 극히 중요하므로 케임브리지에 네가 연구비를 받을 자격이 됨을 내가 말하겠다..... : 이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러셀은 저것들이 다 아무 문제 없이 되던 사람이었다는 것.


20년대 초에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은 후 

두 사람은 더 이상 "친구"는 아니게 된다. 비트겐슈타인 전기를 보면 

러셀이 한 스무 배쯤은 더 참았던 사이. 그 어떤 일이 어떤 일인지는 분명치 않아서 레이 몽크는 

자신의 추정하는 바에 대해 쓰는데, 충분히 절연할 만하고 절연하고 난 다음에 다시 볼 일은 (그러니까, 러셀 편에서) 

만들고 싶지 않아졌을 사정이다. 그런데 러셀은 (개인적 접촉을 피하긴 했지만. 그와의 대화를 극히 피곤하게 여기면서) 언제나 변함없이 비트겐슈타인의 편이었다. 그의 지성, 성격, 업적 모두를 옹호했다. 


러셀. 

다시 보게 됨. 

................ 러셀을 다시 보게 만드는 비트겐슈타인 전기. 

이제 러셀 글들 보면, 극히 우호적인 색안경 끼고 보게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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