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전기 갖고 있다. 

오래 전 일부 읽었을 뿐이었는데 조만간 다 읽으려고 곁에 둠. 

비트겐슈타인이 하도 특이한 인간이라 그의 언행을 단지 무심히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전기가 나올 것이다. 

예전에 읽을 때 레이 몽크가 뛰어난 전기작가라 생각했던 듯한데 지금 다시 보면서는 

몽크가 뛰어난 전기작가가 아닌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비트겐슈타인이 직접 나서 흥행사. 


오래 전 읽을 때 붙여둔 노트들이 있다. 

................. 이제 존재하지 않는 그 세계. 


요즘 읽는 책들에 포스트잇 노트를 열심히 붙인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10년 뒤에" ("20년 뒤에"는 더욱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말을 마음 편히 하지 못한다. 

예전과는 달리 이젠 아는 것이다. 그게 언제나 의식의 일부인 것이다. 10년, 20년, 장담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긴 한데 

요즘 붙이는 노트들을 10년 뒤에 다시 본다면 

각별한 감회 있을 거 같다는 생각 든다. 지금 내가 10년 전의 노트를 보는 것보다 

10년 뒤의 내가 지금 노트를 보는 쪽에 더, 각별하게 감회 있을 거 같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무엇보다 10년 전 남긴 노트보다 지금 남기는 노트들이 더, 뭘 더 알고 있다. 더 이유와 목적이 선명하다. 

10년 전보다 지금이 더 분명히 "형성 중인" 정신이다. 




인간의 자기 형성이 일어나지 않음. 지적 운명, 이것을 살지 못함. 이것이 한국적 삶의 곤경 아님? 

그러니까 이 나이에 간신히 "형성 중"이라는 건 부당한 거 아닙니까. 


지적 운명. 이건 바슐라르가 <과학 정신의 형성>에서 꽤 중요하게 여러 번 쓰는 말이다. 

지적 운명. 그걸 알고 그와 함께 인간의 자기 형성 같은 것이 일어나려면, 비트겐슈타인이 러셀에게 철학을 배우겠다고 와서 첫 해에 (그러니까 22세 정도 나이이던 해에) 윌리엄 제임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들> 읽으면서 


"이 책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 근심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내게 알게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고 러셀에게 말하던 일. 그런 일이 흔해야 한다. 


어디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누가 그런 일을 아는가.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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