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받은 책 중 이것이 있다. 

같은 판은 아니고 New York Review of Books에서 나온 판. 이런 표지다. 





이런 장르 좋아하는 편이다. 

친구를 회고함. 공유했던 삶을 기억함. 


페이퍼 얼른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압박이 있다 한들 그래서 더 빨라지는 것도 아님에도) 

어떤 책도 마음 편히 읽지 못하고 있는데 이 책은 앞의 해제 보다가 관심이 식는 

(관심이 강렬히 인다 해도 마음 편하지 않기 때문에 못 읽을 판인데) 느낌이었다. 


숄렘에 따르면 벤야민은 극히 종교적 인간이었다.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선택한 건 오류였다. 착오였다. 

그러면 그는 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그토록 많이 썼냐고? 

그것의 그의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주축이던 사회연구소에서 

그가 그런 글을 쓰면 돈을 주었기 때문이다. (.... 그렇게 숄렘은 생각했다). 


저런 얘기가 나온다. 

마르크스주의자이긴 한가? 벤야민 잘 모르지만 이런 의문도 들었고 

그의 글과 무관하게 사회연구소에서 돈 주었던 거 아닌가? 어쨌든 아도르노와 주고받은 편지들 근거로 하면 

그러한데? 물론 글을 쓰면 주기도 했지만 그 경우에도 심지어 그게 "고료"이기보다는 영어 단어 stipend, 네가 우리 사람(우리 연구소 사람)이므로 받을 권리가 있는 소액 정기적 수입 느낌. 연구소 상황이 악화되면 감액하거나 중단하지만. 그래도 네가 우리 사람이므로 우리는 너에게.... 


아니 사실 그들의 돈 문제가 이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아도르노-벤야민 편지 보면서 

분명히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가 마르크스주의자로 글을 쓴 건 그게 그의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고 숄렘이 생각한 게 맞다면 


완전한 오해이지 않을까. 


그런데 어쨌든 많은 생각이 투입되는 긴 편지들을 쓰는 문화가 한국에도 20세기 동안에 정착했다면 

그래서 20세기 전반에도 후반에도 (한 80년대까지는) 많은 편지들을 주고받았고 그것들이 책으로 나온 예도 적지 않다면 


바로 그 덕분에 지금 그들이 사는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부터, 아니 고교 시절부터 

친구 가족들과 긴 편지들을 써서 주고 받은 세월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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