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절 리히터. 

맨 오른쪽, 턱을 손에 고인 인물이 그의 은사인 Heinrich Neuhaus인 걸로 짐작되는데 확실치 않다. 

(저 독일계 이름은 영어로 표기할 때 성 Neuhaus는 아니지만 이름은 Heinrich, Henryk 등 몇 다른 표기들이 있는 듯. 러시아 바깥에 나온 적이 없음에도 국제적 명성의 피아니스트였다는데 이름, 이름 뭐라 불러야 함. 성 Neuhaus도 독일인이면 쉽게 "노이하우스"지만 러시아 식으로 읽으면 뭐라 기억할 수 없게 복잡한 다른 이름이었다.) 





리히터 입덕하면 

바로 알게 되는 사실. 

리히터는 아버지가 오르간과 피아노를 연주했던 음악 교사였고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 기초를 배우는 걸 끝으로 22세까지 피아노를 독학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어가는 나이가 22세. 이 때 시작하여 피아니스트가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나이. 

리히터는 노이하우스에게 들어가 배우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노이하우스는 회의적이었지만 오디션을 허락했다. 

그리고 오디션 장에서 그는 리히터의 연주를 함께 본 다른 학생에게 "저 청년은 천재다"고 속삭였다.  


리히터에게 집도 절도 없을 때 

노이하우스가 자기 집에 와서 살라고 했고 리히터는 그렇게 했다. 

그 시절 그는 노이하우스의 집 피아노 밑에서 잤다. (*노이하우스가 "구박해서" 그랬던 건 아니고 

리히터에게 일신의 편안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리히터: 이니그마> 보면 노이하우스의 대규모 청중 연주회 장면도 나온다. 

내 귀엔 그의 음악도 대단하게 들렸다. 와. 하게 들렸다. 아무튼 그랬는데 

2015년이 리히터 탄생 100주년이고 해서 당시 나온 기사들도 많고 여러 글들 찾아보다가 

읽은, 이거 정말 눈물 없이 생각하기 힘든 그들 인생의 이야기는 


노이하우스가 리히터를 자기 문하에 들이고 나서 

리히터가 했던 모든 연주회에 왔고 모든 연주회에서 가만히 앉아 듣던 그를 보면 

그의 두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는 것. 


.............. 어찌하여?의 한 1/20은 그대로 다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음. 


한 반 쯤 써두고 꽤 오래 (온라인 mp3 강의 제작 ㅎㅎㅎㅎ 무려 제작.... 등으로) 밀어놓았던 

글쓰기 재개했는데, 앞으로가 고난이고 문제지만 써둔 분량은 그래도 괜찮지 않나 했다가 

전혀 그렇지 않음을 발견했다. 이게 성공(좋은 곳에 발표함의 성공)해야 인생이 바뀌는데........ 

인생이 안 바뀌면 어쩌나. 이대로 그냥 쭉, 리히터도 유튜브로나 들으면서 살다 가는 거냐. 

끝없는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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