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종로 한신문화사에서 팔던 

불법 제본 도서처럼 생긴 이 책. 이것도 강의록이다. 

"내가 나의 글에 요구하는 수준의 엄정성을 강의에서 하는 나의 말에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런다면 나의 말은 순전히 불가해해질 것이다" : 아도르노는 이런 취지 말을 어느 강의록에선가 

맨 앞에 두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말이라고요? 

이것도 글 아닌가요. 말과 글이 일치하시는...(.....) 

아무튼 그렇다. 어떻게 이런 말로 강의를 하나. 아도르노가 개요를 간단히 노트하고 그에 기대어 "썰 푸는" 식, 강의를 했던 건 아니라고 한다. 적지 않은 경우 먼저 강의록이 작성되고 거기서 읽는 식이었다 (이게 독일 대학의 강의 방식이라고). 그러니까 아도르노는 그가 입말로 (불가해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가장 고밀도 문장들을 미리 준비했던 것이고 그에게 그 문장들은 그가 글로 쓰는 것이었다면 쓰지 않았을 문장이었을......... 


그러면

경의 표하지 않을 수 없. 




이 책 1강에서 

"음악적 인간"의 유형학이 논의된다. 

제1유형이 문화 소비자형. 오페라하우스 등 유력음악단체들의 회원들인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고급문화를 자신이 담당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20세기 초였다면 이들은 바그너주의자였을 것인데 

지금(60년대) 그들은 바그너를 공적으로 여기는 이들이다. 제2유형은 감정적 청취자형. 이들은 무엇보다 

문명의 규범에 의해 억압되거나 길들여진 본능의 다시 깨어남을 체험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제2유형과 

제1유형은 연속적 관계로 존재한다. 문화 소비자형에게, 진정한 음악이 갖는 감정적 가치는 그들이 자주 

꺼내 휘두를 수 있는 무기다. 


이런 얘기 하시다가 

"현재 소련에서 제2유형을 위한 맞춤 음악이 대량 생산되는 중이다. 어쨌든 

열변을 토함과 우울감에 빠짐 사이를 격하게 왕복하는 슬라브 사람이라는 클리셰. 이것이 이 음악이 제시하는 자아 이상이다"고 말하심. 


강의록이 나온 건 62년. 강의는 아마 61년? 

당시 소련에서, 감정적 청취자를 위한 음악이 대량 생산되기도 했겠지만 

"선진" 음악도 나오지 않았을까? 쇼스타코비치가 살아 있던 시절이고. (*"선진"은 아도르노가 자주 쓰는 단어다. 선진 예술, 선진 의식.... 등으로. advanced consciousness, advanced art). 아도르노에게 소련에 대한 (소련의 전부에 대한) 거의 방어적 편견 있었던 거 아닐까. 저 "어쨌든 (in any event)"에 그의 망설임이 있는 거 같다. 


그런 편견이 심지어 강하게 있었다 해도 아도르노를 다시 보게 되거나 ㅎㅎㅎㅎㅎ 뭐 그럴 건 아니긴 하다. 

(왜 그래. 그러지 않는다, 그러지 못한다...) 그렇긴 한데 왜 라흐마니노프, 스크리아빈, 프로코피에프 같은 이름은 아도르노와 관련하여 등장하지 않는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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