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킨트. 한국에서 대인기 작가였던 시절에도 이름만 알았던 쥐스킨트.
"깊이에의 강요" 이 소설은 언젠가 페이퍼에 인용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소설을 읽지 않아도
인용할 수 있을까 아닐까 막 아는 것이다) 그게 실린 단편집을 영어판으로 구해두긴 했다. 그게 다인 쥐스킨트.
better than food에 <비둘기> 리뷰가 있는데
"이 소설을 여러 방향에서 규정할 수 있을 테지만
내게 이 소설은 낭비한 인생이라는 공포, 그것에 대한 탐구다.
나 자신의 눈에, 나 자신이 판단하기에 내가 비겁한 인간이었고 그 사실에 대한 후회를 막을 수 없을 때.
그 후회에 대한 탐구다" 이런 말을 한다.
"너에게 네가 진정 원했던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너는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 누가 너를 막은 것도 아니다.
너의 선택이었다. 너의 잘못이었다." 이런 말도 하는데
저런 게 왜 보편적인가? 왜 내가 저 말들에
................ 지금의 내 얘기네. 잠깐. 잠깐만. 천천히 말하세요. 다시 말하세요. 적어두어야 합니다. 내가
이 문장들을 써야 했습니다. (......) 이런 심정 되는가.
저 후회, 저 공포 이미 오래 그리고 매일 살고 있다.
그래도 (다른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페이퍼 쓰기를 이젠 어느 정도 했고
하고 있는 중이고 페이퍼 쓰기 방향에 대해서는 만족하기도 하고 심지어 기대도 있어서
후회, 공포가 있어도 수시로 즐겁기도 하다. 이거 얼른 쓰고 또 써야지. 이런 즐거움. ㅜㅜ
이걸 쓰고 나면 그게 열어주는 길이 있겠지.... 그 길에 가고 싶다의 즐거움.
그래도 후회, 공포가 압도한다. 그 둘이 대세다.
저 말들을 놀라면서 들은 다른 이유는
........ 심지어 이 정도 말도, 어디서도 하기 힘든 말 아닌가?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이웃에게도?
인생을 낭비했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당신도 인생의 낭비자라면) 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에게는 있습니까.
음. 내겐 없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