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부터 (그 새파란 나이에) "파파" 하이든이라 불리었다는 하이든. 

그건 그가 진정 다정하고 다감하고 공정하고 활수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궁정 악장으로서 그는, 그의 밑에서 일했던 음악가들에게 최상의 보스였다. 그가 "진정" (전략적 위선으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었다는 증거는 그의 생애를 통틀어 무수히 발견된다. 무수한 증언을 포함해서. 


하이든은 베토벤을 어떻게 아주 잠시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게 그런 인연이 어떻게 맺어졌었다. 베토벤이 경의를 표한 음악가는 단 2인, 바흐와 모차르트였고 

그래서 그에게 하이든은 노바디 노인일 뿐이었으며 잠시 (두 달?) 배우던 동안 그는 하이든에게 여러 결례, 비례, 무례를 범했다. 하이든을 속이기도 했다. 그 모두에도 불구하고 하이든은 베토벤을 이해하고자 했고 베토벤 편이었다. 




하이든 강좌에서 기억에 남은 몇 대목 중 저런 얘기 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그의 50대 이후 삶을 말하던 대목. 

그는 헝가리 귀족 궁정 악장으로 일하다가 그를 고용했던 귀족이 죽으면서 영국으로 오게 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전혀 새로운 삶. 하이든은 유년기가 아마 불우했을 것이다. 거의 떠돌이의 삶. 

어디서도 정착이 어려웠던 삶. 청년기에서 중년까지, 살림이 피기는 하지만 (살림이 핀다 정도 아니라 

천천히 그러나 점점 더 갑부 수준이 되어가고 있었을 것이긴 하다. 한 2-30년 세월의 문제기도 

하고 그를 고용했던 귀족은 그의 음악에 깊이 만족해 적지 않은 돈으로 보상했고, 그에게 돈 쓸 곳은 

별로 없었고....) 그가 깊은 행복을 알았을 시기는 아마 없었다. 그러다가 거의 노년에 진입할 때,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하고 그는 청년의 순진한 눈과 뛰는 심장으로, 모두를 깊이 만족하며 체험하는 

시기를 보낸다. 


대강 저런 얘기 끝에 교수가 덧붙이던 말. 

"아아 한 사람의 한 번의 생에, 얼마나 많은 삶들이 있기도 한가!"  


들으면서 깊이 감탄했었다. 

저런 말을 저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도 되어야 한다... 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나도 좀.... 다른 삶 좀.... 새로운 삶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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