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슐라르의 <과학 정신의 형성>에서 며칠 전 보고 

밑줄 쫙이었던 문장. 파란색 형광펜이 "가장 중요함"의 색이다. 그 다음이 분홍색. 

그 다음 주황색. 그 다음 녹색, 마지막이 노란색. 형광펜을 살 때 노란색과 녹색은 타스 단위로 

사기도 하고 (두 타스........) 파란색 분홍색 주황색은 다섯 자루 단위. 노란색으로 바탕색 칠하고 

그 위에 파란색을 칠하면, 녹색 효과도 나면서 가장자리는 파란색으로 남기도 한다. 


false rigour is a block to thought. 


이 사실 (이 진실) 절감한 바 없는 인문학 종사자, 없지 않을까. 

후대를 위해 모범을 남긴 뛰어나신 분들(바슐라르도 그렇고, 부르디외도 그럴 것이고. 부르디외는 인문학자이기도 

한 것 같던데 말입니다. 아도르노, 벤야민 말할 것도 없고....), 그 분들이 했던 것 같은 작업을 할 

에너지와 역량이 없을 때 


가짜 엄밀함이, 그들 자리를 차지하는 거 같다. 

하나마나한 구분을 하고 따를 이유가 없는 논리에 집착하고. 




지금 읽는 어느 책이 

저 가짜 엄밀함만으로 쓰여진 책이라 

......... 참 지겹고 힘들다. 이 책을 겨냥하여 "가짜 엄밀함은 사유를 막을 뿐"의 사례라고 

비판하는 내용으로 쓰고 싶기도 했는데 


그게 또, 그런 비판이 하겠다고 해서 바로 성립하는 게 아닌 것이기도 하다. 

이런 미세한 일에까지, 자격이 필요하다. 앞 뒤 맥락, 전체 분위기가 그런 말을 해도 되는 사람이 있고 

해봤자인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후자인......... ㅜㅜ 것이다. 내가 저런 비판을 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해도 되는 사람이 꼭 되어야겠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게 한 삼십 년 걸리는 일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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