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나 연초에 (그러니까, 돈이 생기면) 사려고 담아 둔 책 중 이것도 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서한집. 


아벨라르는 신부였던가. 아무튼 성직자. 그리고 학자. 지식인. 엘로이즈는 그의 페이트런의 조카였다던가. 

아벨라르가 엘로이즈의 가정교사를 하다가 사랑에 빠지는데 그리하여 그는 거세를 당하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더 잘 알게 된 건 아니고, 요즘 듣는 강의에서 

이 두 사람의 사랑, 그들이 남긴 편지에 대해 들었다. 

강의에서 잠깐 듣는 걸로 갑자기 더 잘 알게 되지는 않는 것이다. 책을 구하고 내가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들으면서 밑줄 긋게 되던 한 대목: "이들의 편지를 읽다 보면, 엘로이즈 없이 아벨라르는 

아벨라르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강하게 느끼게 된다. 엘로이즈가 그의 지적 호기심과 열정을 자극하고 

이끌었다. 엘로이즈와 아벨라르는 서로의 정신을 형성했다."


내용으로 거의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하면 깊이 있게 들리고 어떤 사람이 하면 얕게 들리는 일. 

얼마 전 들은 다른 강의에서 니체가 주제였을 때, "니체는 독일 문화 전체가 stupid and sentimental하다 생각했고 격하게 비판했다" 교수가 이런 말을 한다. 아! 이 분은 니체를 깊이 있게 읽으셨구나! 니체가 독일 문화에서 견디지 못한 것을 "stupid and sentimental" 이 단어들로 요약하다니, 이 분은 사적으로 니체를 읽으셨다! 


..... 감탄했고 여러 번 더 생각했다. 혹 저명한 니체 연구자가 "니체에게 독일 문화는 그 거의 전부가 stupid and sentimental이었다"고 썼다 해도 (나는 아직, 누가 그렇게 정리하는 걸 본 적은 없다), stupid와 sentimental이라는 두 단어의 특성상 니체를 실제로 (그리고 사적으로) 읽은 사람이 아니면 그 말을 반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반복한다면, 별 내용이 없을 것이다. 사실 니체 자신이 여기저기서 "stupid" "sentimental"에 근접하는 말들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는 그를 그 단어들로 요약하려면, 소문을 거치지 않고 직접 읽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엘로이즈와 아벨라르는 서로의 정신을 형성했다. : 이 대목에서 느껴지던 것도 그것이었다. 

이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여기서 말하고 있다. 정신의 화학 작용. 다른 정신의 영향 하에서 자기 정신의 형성. 

이걸 알았던 사람이다. 



아도르노-벤야민 서한집에 

바로 그게 가득하다. 정신의 화학 작용. 정신의 상호 형성. 

그 점도 그 편지들을 "다이너마이트" 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