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의 

<사회학 강의> 8강에 나오는 내용. 



*짐멜의 영향 하에 독일과 미국의 일부 사회학자들이 

"사회 갈등이 없다면 사회 진보도 없다. 사회 갈등이 없다면 사회는 정체할 것이다. 

그러니 사회적 삶의 본질 구성 요소로서 갈등을 긍정해야 한다" 방향으로 "갈등 사회학"을 했다는 

얘기를 하고 나서: 


"갈등의 이런 미화에, 갈등이 갖는 이성적(타당한) 목표에 대한 전적인 무지가 있다. 

그 목표는 칸트가 그의 역사철학에서 아주 극명히 인식했던, 인류의 평화라는 목표다. 

현실에서, 갈등을 그들처럼 형식적으로 규정할 때 갈등은 현재의 나쁜 사회에 대한 변론이 될 따름이다. 

그리고 이 나쁜 사회는 지금 자멸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기서 내가 갈등 사회학자들을 예로 드는 건, 실은 이게 예 이상이기도 한데, 여러분들에게 

학문적 중립성이라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현재 학문의 중립성이라는 

관념이 사회학의 형식주의적 개편, 형식주의적 사회학에 의해 부단히 힘을 얻으며 확산되고 있다. 

중립을 내세우는 입장을 취할 때, 사회 갈등의 구체적 내용을 무시할 때, 사회의 구체적 적대 상황에서 

자기 편이 어디인지를 밝히지 않을 때, 그러면서 사회 갈등은 그 자체로 좋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할 때, 이들의 

사회 갈등 이론이 하게 되는 사회적 선택이 있다. 중립성에도 불구하고 하는 선택이 아니라 중립성을 수단으로 

하는 선택이다. 그 선택과 함께 이들의 이론은 갈등을 야기하는 사회의 적대적 상태를 옹호한다. 그 이론은 

사회적 주체의 수립, 단지 법적인 구속이 아니라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내용을 갖는 평화와 함께, 갈등이 

실제로 소멸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제기하지 못한다. (......)" 



여기서 아도르노의 주장 자체는 

이미 상투적으로 들린지 오래일 것이다. 

중립도 선택이다. 나쁜 선택.


강의가 진행되는 상황 맥락에서 

이 말들이 갖게 되는 유별난 힘이 있다.  


어제 읽은 어떤 대목들에서, 정말 이런 건 아도르노만 주는 구원이다... 

아도르노가 구원의 가이드인 것이다......... 이런 잡념 피할 수 없었는데 

그게 그러니까, 사회학적 상상력? C. 라이트 밀즈의?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이 

뭔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이게 더, 아니 이것이야말로 사회학적 상상력일 거 같은데? 

의 느낌이기도 했다. 


아도르노에게 깊이 영향 받은 사회학자가, 아도르노가 했다면 했을 바로 그 방식으로 

한국 사회의 감정 사회학을 한다면 


무수한 우리들에게 

구원의 가이드를 주겠지. 제발 누가 좀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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