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those who shall sit here rejoicing, 

To those who shall sit here in mourning, 

Sympathy and Greeting; 

So have we done in our time.


코넬 대학 도서관 근처

학업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벤치에 새겨진 문장들이라고. 


"기뻐하며 여기 앉을 이들에게, 

애도하며 여기 앉을 이들에게, 

공감하며 인사를 보낸다. 

살아 생전 우리도 그랬으니." 


(........... 번역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겨우 세 단어, 네 단어가 

결코 번역되지 않는 것이다......) 




유럽사 강좌의 마지막 강의에서, 교수가 그의 모교 코넬 대학의 풍경과 

그 대학에서 가르쳤던 위대한 인문학자 M. H. 에이브럼스 등에 대해서도 잠시 말하고 

대학 시절 그가 좋아한 장소기도 하다는 저 벤치, 거기 적힌 저 말들 전하면서 끝낸다. 

역사를 공부함의 의미가 여기 있다고. 


이 강좌 끝나니까 청취자 리뷰 쓰러 가서, 교수에게도 감사하고 audible에게도 감사하며 

더 많은 아주 많은 강좌를 교수는 더 제작하셔야 한다고 느낌표 열다섯개씩 붙여가면서 

말하고 싶었다. 실체 있는 도움을 여러 번 받았다. 죽다 살아나는.......... 그런 심정 되기도 했다. 


서구. 서구 문명. 서구 역사. 서구가 인류에 한 기여와 인류에 지은 죄. 그 모두의 의미를 무어라 말하겠는가. 

마지막 강의에서 이 주제로도 오래, 깊이있게 얘기한다. 


밑줄 긋고 오래 생각하게 되는 건 

"서구는 자기 잘못을 볼 줄 알았다. 

나라면 서구의 강점으로, 자기 반성 능력을 들겠다.

물론 천천히 보았고, 충분치 않게 보았으며, 보기를 미룬 적도 있다. 

그러나 결국 보았고 진짜로 뉘우칠 줄 알았다." 


자기 반성 능력.

이게 비서구에 비해 서구가 갖는 강점이라면  

무엇보다, 운명을 자기개척한 역사 덕분일 거 같다. 그들의 운명개척사. 그게 다 식민주의의 역사는 아닐 것이다. 


비서구는 

내 손으로 내 운명을 개척한다... 이게 

널리 공유되는 실감인 곳이 없지 않나는 생각도 듬. 

적어도 한국사회는. 여전히 그렇지 않으며, 그러니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거 아니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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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10-24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근래 읽은 서구인이 쓴 책과는 사뭇 다른 주장인 것 같습니다.
비서구인이 보기에 서구인이 자기 반성을 잘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구인 특히 독일인은 자기 반성에 미흡했다는 사실이요.
상대적일수도 있지만 다양한 예시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반성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공통사 인 것 같습니다.

몰리 2019-10-25 00:55   좋아요 1 | URL
이 교수는 명확히 변증법적인 접근을 하고
서구 역사에는, 자기 수정의 충동이 언제나 아주 멀리 있지는 않았다는 점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자기 수정의 동인으로 교수가 언급하는 것들 중에
˝지성의 정직성과 독립성˝이 있는데, 저는 그의 말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지성의 정직성과 독립성. 이게 서구에는 오래 전통으로 (그렇다고, 그 전통이 언제나 보호, 장려받았다는 게 아니겠구요) 이어져왔다고 인정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도 상대적이고 정도의 차이인 걸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고 적극 인정하면서 탐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반성 능력이 상대적일지언정 서구에서 더 뚜렷한 경향인 게 실제로 맞다면 (저는 맞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미흡함을 반성하는 것까지도)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