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게이가 쓴 책들 중 

19세기 문화사 5부작 "부르주아의 경험"은 

특별한 감흥 없이 몇 군데 보다 말았던 책들이다. 

굉장히 박식한데 어디에도 임팩트 없음. 이런 느낌이었던 거 같다. 

그래도 그 다섯 권이 다 지금 집에 있어서, 시간 낸다면 확인해볼 수 있다. 


<계몽시대>엔 끝없이 찬탄하게 되고 

게이 책들 나온 건 다 구해야겠다 쪽이 되어서 

수시로 찾아봄. 어떤 책들이 있나는 파악 끝났다고 생각해도 

또 새로운 책이 나온다. 이 책도 그렇다. 지금 알았다, 이런 책도 있는 줄. 

Freud for Historians. 


유명한 문학 책들이 갖게 되는 전설들. 

너는 그 책에서 너를, 너의 얼굴을 볼 것이다. 방향의 전설들. 

그 책이 그리는 삶과 네 삶 사이에, 설명할 수 없겠지만 기이한 공명, 기적적인 연결이 생기는 걸 볼 것이다. 

책이 끝날 때 너의 삶이 그와 함께 달라졌음 앞에서 전율할 것이다. 

.... 이런 등등의. 


레슬리 피들러가 <율리시스>를 가리켜 "구원의 가이드"라 말하면서 

하고 싶었을 그 모든 말들. 


이상하게도, 역사서인데도 

<계몽시대>가 그런 책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 역사에 대한 (슬픔을 아는) 이해. 

이런 게 최고 수준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책의 어떤 문단들은 

멍하게, 충격 때문에 혹은 분노나 경멸 때문에, 당시엔 알거나 살지 못했던 순간들을 

다시 선명하게 볼 눈, 다시 정신 차리고 만져볼 손..... 이런 걸 준다. 시각의 교정. 감각의 회복. 

이런 게 일어난다고 진짜로 느껴진다. 물론 느껴짐만 진짜일 뿐, 일어남은 진짜가 아닐 수도 ㅎㅎㅎㅎ. 

놀라 찬탄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다루는 사료들의 범위와 깊이. 

이것도 놀라 쓰러질 지경. 놀라 "구원 받으며" 쓰러질 지경. 

경이롭도록 박식한 저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들 중 어떤 이들은 

그 경이롭도록 박식함 그 자체로, 독자를 교화하지 않느냐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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