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 책에 긴 역사가 있다. 지난 세월, 이 책에 속하는 지적 영토를 나는 

자주 횡단했고 여러 관점에서 지도를 그렸다. 스타일에 대한 내 관심은 역사가가 되겠다는 결정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그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독자들이라는 행운이 내게 있었다. 

1950년대에 처음 내가 역사가로 쓰기 시작했을 때, 예리한 비평가면서 또한 가까운 친구였던 리처드 호프스태터와 헨리 로버츠가 내게 있었다. 내 최초의 편집자 크리스토퍼 헤롤드는, 그를 내가 그들만큼 잘 알았던 건 아니지만, 그들이 내게 가르친만큼 나를 가르쳤다. 이 세 사람 모두가, 솔직하고 감식안이 날카롭고 동시에 나를 격려하는 이들이었다. 애정, 그리고 고통과 함께 그들을 기억하면서 -- 세 사람 모두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 이 책을 완성하던 동안, 나는 로널드 사임 경이 그의 책 <타키투스>를 끝내면서 썼던 문장을 자주 생각했다. "인간과 왕조는 사라진다. 스타일은 남는다." 위안이어서가 아니다. 친구의 죽음은 복원될 수 없는 상실이다. 하지만 내 친구들의 스타일이 이 책의 페이지들에 자취를 남겼다고 나는 생각하고 싶다. 


스타일의 가장 우아한 실천자도 스타일을 위해 해야 할 노고. 이것을 나는 호프스태터 가족과 함께 보냈던 1954년 여름에 

알았다. 호프스태터가 그의 책 The Age of Reform의 서론 원고 전부를 개고하는 걸 곁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나는 에리히 아우얼바흐의 <미메시스>를 읽었다. 그 책은 계시였다. 그 후 긴 세월 나는 이 영감 가득한 걸작, 문헌학이면서 동시에 사회학인 이 책이 내게 준 교훈을 역사 쓰기에 적용할 기회를 탐색했다. 그 기회는 1960년대 초에 내게 왔다. 당시 몇 년 동안 나는 컬럼비아 대학의 대학원에서 신입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역사 서술 주제 과목을 강의했다. 이 책에서 내가 상세하게 탐구하는 아이디어 중 일부는, 여기서와는 아주 다르고 원시적인 형태였지만, 당시 그 수업에서 처음 타진되었다. 그 시절, 역사학에서 스타일이라는 주제는 계급과 국가가 역사가에게 가하는 제약에 관한 탐구에 속했다. 칼 맑스나 칼 만하임에게 직접 빚을 진 이들, 혹은 찰스 비어드를 읽으면서 간접적으로 그들에게 빚을 진 이들이 역사학계를 주도했다. 의심의 시대였다. 그러다 서서히, 역사 서술 분석이 더 세련화되었고 또 어떤 점에서 더 낙관적이 되었다. 내 수업에서, 나는 관점 실재론이라 부를 만한 입장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역사 연구의 대상은 실제로 역사 연구의 대상임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그들은 연구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객관성은, 어렵기는 해도 가능한 미덕이다. 


(.............) 


과거의 책들에도 그렇게 느꼈지만, 이 책에도 나는 내 비평가들이 내게 행운임을 다시 느낀다. 

내 원고를 집중하며 반복해서 읽었던 퀜틴 스키너와 나의 아내 루스에게, 전반적 논의를 섬세하게 하고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논점들도 날카롭게 다듬으라 나를 밀었던 이들에게, 특히 중대한 빚을 졌다. 

................. 작가에게, 그가 가질 가치가 있는 독자가 있다는 생각을 지금 내가 명랑하게 하고 있다면, 그게 

공허한 자기만족이 아니기를 희망한다.  



피터 게이의 Style in History. 

이 책 궁금해져서 얼른 사야겠다 하긴 했지만 

좀 시간 걸릴 줄 알았더니 바로 알라딘에서 중고가 찾아져서 바로 구입했다.  


이 "서문"에 감동함. 

죽은 친구들을 말하는 대목에서 

10년 전만 해도 전혀 몰랐을 감정, 생각... 등이 든다. 


작가에게 그가 가질 가치가 있는 독자가 있다는 생각을 내가 명랑하게 하고 있다면, 그게 다만 자기만족은 

아니길 희망한다. (.....) 이런 말에도 감동한다. 피터 게이 같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그건 

잘 살았던 삶의 고백이 되는 거 아니냐............ 이러면서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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