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의 이 책. 표지가 매력적이지 않은 이 책. 

이 책이야말로 "20세기의 가장 검은(어두운) 책"이라고 해도 되게 

검정색 표지의 책. 


이 책에 <계몽의 변증법> 비판하는 글이 있다. 

제목은 "신화와 계몽의 엉킴: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모더니티가 성취한 합리성의 긍정적 면들을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전혀 보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여러 대목들이 있다. 


그런데 한편 진정 의아함. 

그들이 계몽의 "공과"를 쓰려고 했던 게 아니잖은가. 

그들은 "과"만 쓰려고 했던 것이고 그걸 분명히 밝힘. 그런데 왜 "공"을 쓰지 않느냐고 그들을 비판하는가. 


이런 일이 어디서나 언제나 일어나지 않나. 

아무튼. 예전 이 책 처음 보던 땐 그러는 하버마스가 

뭔가 좀... 한심해보이기까지 했다. 지금 다시 읽으면서는 

아니다, 계몽의 포기할 수 없는 긍정적 유산이 있다... 는 그의 입장에 전보다 더 

공감하게 된다. <계몽의 변증법>은 어떤 비판이 있든 무너지지 않을 책이지만 이 책과 같은 강도, 같은 열정으로 

계몽의 "공"을 말하는 책이 있다면, 그 책도 어떤 비판이 있든 무너지지 않을. 


<계몽의 변증법>에 

사드의 인물 중 한 악녀가 자기 남자 형제가 악행을 (살인, 비역질, 매춘...) 

수단으로 어떤 부귀영화를 성취했나 과시하는 대사를 인용하는 대목 있다. 그리고 저자들이 붙이는 논평. 

"그녀는 과장한다. 오직 악행에만 보상할만큼 나쁜 지배가 일관적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장만이 진실이다." 


그러나 과장만이 진실이다. 

인생에서 어려운 무엇이든, 그럴 거 같다. 

그걸 말할 때, 과장만이 진실이다. 




집에 오는 버스에서 

내 앞엔 한 할머니, 내 옆엔 여러 중딩이 앉았고 

할머니와 통로 사이 두고 대각선으로 오른쪽엔 다른 할머니가 있었는데 

내 앞의 할머니가 축축한 수건 같은 걸 꺼내서 손으로 탁탁 치기 시작했고 

이 소리 잠시 지속되니까 오른쪽의 할머니가 격하게 짜증을 표했다. 욕들이 쏟아져 나옴. 야이 씨*년아... 


누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런 생각부터 듬. 나를 그렇게 만들 누가 내 삶에 있다면 

얼른 몰아낼 일이다. 그런데, 너무 늦게 알거나, 모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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