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받은 책 중엔 이것이 있다. <원자론적 직관>. 바슐라르의 초기 과학철학 저술. 

책이 표지도 (표지 디자인 최소화의...) 매력적이지 않고 제목도 사실, 확 끌 제목은 아니겠지만 

바슐라르 독자라면 


오 이게 영어 번역이 마침내 되었다! 할 책. 


역자는 80년대에 바슐라르 입문서를 썼지만 그 책이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어서 

그런 책이 있는 줄, 그런 책을 그라는 사람이 썼는 줄도 아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세월은 빠르게 흘렀고 은퇴한 지도 오래인 Roch C. Smith. 16년에 그의 그 책이 증보, 재간되면서 

재간된 책의 서문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Roch C. Smith.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서문 마지막 문단은 이런 내용이다. 




"메리 타일즈의 조언과 제안에 감사를 표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바슐라르의 과학철학을 주제로 한 그녀의 독창적인 연구를 나는 오래 존경해 왔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그린스보로 캠퍼스의 수석 연구 사서인 마크 슈마허에게 깊이 감사한다. 인용되는 문헌들과 인유들이 제기한 많은 문제들을 그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아일린 리조-패트런에게도 큰 빚을 졌다. 그녀는 내 번역 원고를 읽고 예리한 통찰이 담긴 논평을 주었다.  


내 세 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먼저 로쉬 주니어. 로쉬 주니어는 자기 원고를 써야 할 때에도 시간을 내어 내 원고를 읽었다. 폴. 수 이론과 원자론이 어떻게 음악 이론과도 연계하나에 대해 폴과 토론할 수 있었다. 마크. 번역하면서 제기되던 지적인 이슈들에 대해 마크는 자주 그의 사려깊은 생각들을 들려주었다. 이 번역에 미덕이 있다면, 그 미덕은 전부 여기 적은 이들과 내가 대화할 수 있었다는 행운 덕분이다. 결함이 있다면, 그건 단호히 오직 나의 것이다. (.....)"  




별로 어렵지 않은 문장인데도 번역은 잘 되지 않아서 번역은 개판이다. ㅎㅎㅎ 

내가 주목했던 건 그의 세 아들에게 하는 말. 


한국에서, 주말에 오페라를 같이 듣는 가족도 아마 희귀하겠지만 

이런 주제로 토론을 하는 가족(부자)는 하도 희귀하여 실은 부재한다 해야하지 않을까. 


"과학" "문학" 이 말을 발음하면서 

거기 깊은 의미 담기게 하던 유럽지성사 교수. 

왜 그런 일이 (단어 하나에 자기 삶을 담는 일이) 한국에서 극히 드물게만 일어나나. 


삶을 (정신의 삶을) 거부당했고 거부하기 때문 아닌가. 


만인을 얄팍하게 만들어야 지배가 쉽다는 사정이 작동하는 거 아닌가. 

지능이 미덕인 사회는 만인을 얄팍하게 만드는 사회고, 이 사회에서 지배의 관철이 쉬운 건 

지능은 위조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인을 얄팍하게 만드는 한, 지배는 계속된다. 아닌가. 

지성은 위조할 수 없다. 지성. intellect. 이런 말이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실체적 의미가 없다고 느끼지 않나. 

서울대에 지성이 있음? 어디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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