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 서평 팟캐스트, 요즘 다시 꼬박꼬박 듣는다. 

최근 업로드에서 이 책 논의되었다. 나는 처음 듣는 저자. 그런데 지금까지 몇십년 동안 

미국 페미니즘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목소리였다고. 캐서린 맥키넌(이 책에서 영웅시된다는)은 

아는데 (그녀의 책도 읽었는데) 린다 허쉬만은 처음 들어봄. 


책은 극히 의미있는 작업을 하는, 소중한 책임엔 분명하다고 서평자가 평가하고 

자기가 말하는 유보적인 입장은 순수히 개인적인 것임을 알아 달라고 한다. 


그 유보적인 입장이란 

그녀의 너무 선명한 노선에 대한 반감. 

포르노그래피 규제에 대한 이론적 논의 이끌었던 캐서린 맥키넌은 영웅시하면서 

르윈스키 스캔들 이후 빌 클린턴에게 우호적이었다는 (클린턴의 탄핵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천민 취급함. : 이런 면이 마땅치 않다고 한다. 





만약 린다 허쉬만이 

여자 아도르노였다면. 

노선이 선명하더라도 언제나 가동 중인 변증법 때문에 

노선이 선명해 보이지 않았겠지. 


아 당신이 무슨 심정인지 압니다. 


이러저러 여러 잡념이 들던 얘기였다. 

잡념과 함께 들던 하나 선명한 생각은, 청춘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중년 이후라면 


너와 내가 연결되는 건 

너와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통해서라는 것. 

네가 나를 사랑해서,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게 아니고 

네가 사랑하는 그것과 내가 사랑하는 그것이 같은 것일 때. 


린다 허쉬만이 캐서린 맥키넌을 사랑한다면 

린다 허쉬만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캐서린 맥키넌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린다 허쉬만과 연결될 수 있을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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