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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비트겐슈타인 인용은 두 번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는 "언어 게임"에 관한 것이고 


언어는 전체를 관장하는 하나의 규칙 체계를 갖는 단일체가 아니다. 

언어는 다수의 언어 게임들로 구성된다. 언어 게임은, 우리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특정한 방식으로, 특정한 

활동 안에서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게 하는 비트겐슈타인의 용어다. 


저런 내용 해설이 있다. 






"언어를 말한다는 건 삶의 한 형식에 속한다."

그냥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한 이 정도 말만 놓고도 

위의 해설이 맞기는 한데 극히 협소하게만 맞는, 사실 그래서 맞다고 할 수 없는 

내용인 거 아니냐는 생각 든다. 비트겐슈타인이 위대한 철학자인 게 맞다면, "삶의 한 형식" 같은 말을 

한편 정확하지만 한편 구멍이 숭숭 나게 쓰지 않았을까. 그게 퇴로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불어가 하는 언어 게임이 있고 영어가 하는 언어 게임이 있다는 게 아니다. 똑같은 언어 게임들이 

각기 다른 자연 언어 안에서 수행된다는 것이다. : 이렇게 요약하면 그걸로 끝나는, 그게 다인 얘기를 (비트겐슈타인이 위대한 철학자인 게 맞다면) 했을 거 같지 않다. 





뭐 했던 걸 수도. 

그런데 했을 거 같지 않은 것이, 이제 이 시점에선 완전히 샅샅이 연구되고 다 털린 거 같은 책 <계몽의 변증법>에서

지금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대목 하나가, "언어의 재신비화" 이런 걸 요청하는 대목이고 


그러니까 

마이너의 마이너의 마이너 취향에 속할 무엇이라면 

그게 실은 한 사상가의 전모를 단번에 보게 할 마스터키 같은 것이라 해도 그 누구의 시선도 끌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마이너의 마이너의 마이너 취향일 누군가는 (혹은 그 모두가) 인문학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인문학이 재미있어지려면 

인문학은 만인의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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