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 - 삶의 진실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눈을 여는 법 데이비드 호킨스 시리즈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문진희 옮김 / 판미동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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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오럴 테스트가 유행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음식과 맞는 음식을 판별하는 방법으로.

<의식 혁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난 몹시 흥분했다. 그 테스트가 <의식 혁명>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걸 알았으니까. 테스트는 간단하고 믿을만하고 확실하지만 그 테스트가 나오기까지의 역사 뒤에는 위대한 선지자들의 연구와 노력과 영성이 엄청나게 깔려있다는 것도 비로소 알았다

.

이런 위대한 선지자 데이비드 호킨스박사는 영적으로 진화한 상태와 의식연구 및 참나로서의 신의 현존에 대한 각성을 주제로 오래 연구를 해왔다. 앞서의<의식 혁명>의식 연구의 결과물이라면 <나의 눈>참나를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

 

삶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흔든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일어난다. 조용히 지나가는 법이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은 오히려 적막이 불안하다.

나는 마치 어떤 일에 휘말리기 위해, 그리고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처럼, 밥 먹을 때도,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심지어 몰입해서 봐야할 영화, 드라마, 책을 보면서도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을 거듭한다. 심지어 잠들기 전에는 미래를 가져와 불안해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꿈을 분석한다.

도대체 난 왜 이러는 것일까?

왜 온전히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모든 것이 나의 에고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마음은 나쁘다, 좋다,로 구별 짓는 이원적 의식의 산물이라고.

좋다’,‘나쁘다는 인간의 욕망에서 나왔을 뿐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것, 관찰행위에서 판단이 제거된다면 끊임없는 진화 과정 속에서 변화하는형상들만 보일 것이며, 이때 변화는 본원적으로 바람직한 것도 아닌 것도 아니다.

그리고,

현존하는 순간만이 우리가 경험하는 유일한 현실이며 다른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추상적 개념이다. 따라서 이원적 의식의 판단을 버린, 비이원적 실상에서는 모든 것이 완전하고, 욕망은 감사한 마음으로 대치된다. 고 알려준다.

 

나는,

즉시 생각을 멈추고 생각의 배후를 알아보았다.

저자가 지적하는 대로, 나는 ,<나 자신>을 나의 <활동, 행위, 역할, 명칭> 따위와 동일시하는 혼동을 하고 있었다. 이 혼동은 나의 <행위와 느낌과 생각>이 바로 <>라고 하는 이미지 속으로 자아를 계속 녹아들게 하여 자신을 선하거나, 악하거나, 혹은 직업이 바로 라는 신념에 빠지게 하였다. 그리고 나는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자기규정의 늪 속으로 빠져들어 좋은규정으로 행복해 하고 나쁜규정으로 우울해 하고, 죄의식으로 우울해 하였다.

 

책을 읽는데,

마음이 지옥이란 말이 떠올랐다. 끊임없이 나를 몰아 부친 이원적 의식에서의 규정들.....

 

인생의 힘든 시기를 지날 때마다 내가 했던 생각들은 어떠했는가.

멜로영화의 주인공으로, 피해자라 착각하면서, 그래도 더 착하지 못하다는 죄의식에 시달리며, 심지어 내가 죽으면 나를 생각하며 슬퍼하겠지 하는 대단한 착각으로, 지나왔다.

그 과정이 괴로웠고, 빠져나오기 위해 온갖 책을 보았다. 그때 만난 불교 경전을 통해 영성을 접하고 나를 알아차릴수 있어 나를 비극의 주인공에서 빼내었다.

 

저자는 <나의 눈>에서,

인간의식은 단계가 있지만 충분한 관찰과 명상으로 의식을 높일 수 있다.

높은 의식 수준의 한사람이 수 천명의 의식을 바꿀 수 있다.

보통의 인간의식 수준이 200에 머문다면 사랑의 의식은 500에 해당한다.

수취심이나 죄책감, 희망 없음, 슬픔, 두려움 등은 100이하의 의식 수준이라 우리가 어떤 의식 상태에 있는 가에 따라 의식 수준이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는 것이다.

 

***

 

어린 시절 교회에 다니는 사촌언니가 교회에 가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 때문에 가졌던 두려움, 그리고 직장 생활에서 1년 내내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 시작되는 찬송을 부르던, 믿지 않는 자 죄인이라는 이원적 의식을 가졌던 직장동료 등을 떠올리며, 세상에서 가장 가볍게 지녀야 하는 것이 의식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나의 눈>은 자신의 마음에 갇혀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빛과 같은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초등학교부터 명상의 시간을 두고 참나를 찾는 명상수련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의 고통을 줄여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읽는 동안 마치 영적인 축복을 받는 느낌에 전율했지만 내용을 제대로 요약하기엔 힘이 부족하다. 그러니 늘 옆에 두고 나를 들여다보는 눈으로 <나의 눈>을 두고두고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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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오늘
조정희 지음 / BG북갤러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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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많다.
과학이 발달하고 달나라도 다녀왔지만
우리는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보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의식)을 동원해 그럴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건 또 무슨 요지경일까.
 
 마음과 행동의 바탕은 뇌의 작용이라 한다. 그러니 사실 사람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뇌로 세상을 본다고 할 수 있다. 카메라 렌즈가 인간의 눈의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렌즈에 찍힌
것은 물체의 겉모습 그대로이지만 인간의 눈으로 본 기억은 다르다.
뇌의 인식으로 세상을 본다는 뜻이다.
 
요리사의 칼은 음식을 만들고 강도의 칼은 사람을 다치게 한다.
인간의 마음의 칼은 어떤 작용을 할까.
<아득한 오늘>은 인간 마음(의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 ‘조정희’는 통찰된 눈으로 등장인물, 누구편도 들지 않고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그들의 마음을 그렸다.
 
**
 
속리산 산골 속의 집.
그곳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곳이다.
그 곳에 ‘여계영과 ’민선혜‘가 살았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다.
그들은 늘 상대를 바라본다.

 “선혜는 계영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으면 계영을 바라본다. 눈을 맞추고 웃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본다. 거의 반드시라고 해야 할 정도로. 기침이 자지러져도, 계영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얼굴을 들어 바라보는 시늉이라도 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많고도 많다. 어쩌면 사람 수만큼 많은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배려하는 마음’이다.  내 사랑을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
아닌, 상대가 필요한 것을 주고, 상대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
계영과 선혜의 사랑이 그렇다.
그들에게는 배경과 가진 조건이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
그들의 사랑은 상대를 먼저 본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아름답고 따스하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여훈”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PD다.
계영과 선혜와의 인연은 그들의 삶을 다큐로 만들면서 시작된다.
그들을 촬영하면서 그들의 사랑방식에 점점 이끌리고
그들의 아름답고 안타까운 사랑 때문에 그들을 기억하고
선혜가 죽고 난 뒤에는 홀로 남은 계영이 여훈의 몸 속에 각인된다.
그래서 틈틈이 계영의 종적을 찾았으나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20년이 흐른 후 여훈이 노인들의 삶의 다큐를 찍기 위해 찾아간 곳.
뜻밖에도 그곳은 계영이 살던 집이 있던 곳이었다.  계영의 작은 집은 사라지고 새롭게 건축된 집
에 구순의 노부부가 살고 있다.
“낙원”과 “달래”
여훈은 그들을 보는 순간 계영과 선혜가 떠오른다.
낙원과 달래는 계영의 큰아버지, 큰어머니다. 그들은 사랑해서 결혼을 했지만, 결혼생활이 길어
지는 만큼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는 그들은 ‘배려’없는 ‘이기적 욕망’만 상대
에게 투사했고 충족되지 못한 욕망은 들끓는 질투와 분노로 남아 있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은 일찍 부모를 잃은 계영을 키웠다.
 
 의무로만 생각했기에 낙원과 달래는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고, 성인이 되어 독립한 계영을
찾지 않는다.
은퇴 후 인생을 반추하던 낙원은 그가 버렸던 고향과 계영을 떠올리고 고향집을 찾는다. 그런데 그 방문에서, 그들은 너무나 엉뚱한 결심을 한다. 철저히 도시인이었던 부부가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그들은 다시 찾은 고향에서 어떤 기운을 받은 것일까?
반대편을 바라보며 감정의 골을 키웠던 그들이 20여년 특별한 공간, 그곳에 살면서, 서로를 보기 시작하고 아름다운 노부부로 재탄생을 한다.
그리고,
여훈은 그들의 다큐를 찍는 내내 계영과 선혜가 겹친다.
<낙원과 달래는 계영과 선혜일까?>
여훈의 의심은 커진다.
**
작가는.
 자기 자신만이 너무 소중해 상대를 보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고 있는 부부들에게 알려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불행하게 소비하는 시간이,
사랑하는 시간을 짧게 부여 받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부러운 시간인지.
 
불법에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완전하다고 한다.
생명 안에 일체 모든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병에 대한 치료방법도 자신이 가지고 있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 해결의 방법도 알고 있고
모든 인간관계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을 갖추어 있다는 것이다.
 
<아득한 오늘>은
이렇게 완전한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우주관을 알려준다.
자신을 갉아먹는 이기심과 질투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말라.
의식을 넓히고 높여라.
세상의 수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모습. 그 사랑의 의식이 우주에 떠다니고
있으니, 언제든지 끌어와서 사랑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이기심 너머에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도 노크를 해주었다.
 
작가의 간결한 문장은 마치 정제된 시를 읽는 듯 했고,
자연에 대한 묘사는 자연 다큐를 보는 듯 생생하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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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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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로이스 로리는 1937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이 책은 미국에서 1993년에 출판된 책으로 35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라 한다. 우리나라에선 번역이 늦은 셈이다.

 

난 영문번역 소설에 대한 불만이 많다. 분명 번역 잘못이라 여겨지는 게 출판사에서 그렇게 읽지도 못할 정도의 외국 소설을 찾아내어 번역출간을 시도하진 않을 거라 보기 때문이다. 난 꽤 여러 권의 영문 번역 소설을 읽다 포기했다. 영문번역이 까다로운 건지, 영어와 한국어 차이가 너무 심한 건지. 대부분의 일본 문학 번역소설은 너무나 상쾌한 데 말이다.

 

<기억 전달자>의 첫 문장을 읽으며 놀랐다. 간결한 문장. 무엇보다 완전한 우리글.

 

작가의 문장도 훌륭했겠지만 번역가의 우리말 능력과 해석력이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영문 번역 소설을 읽으면서 번역이란 느낌이 없이 읽은 소설은 이게 처음이었다.

 

 이 작품은 미래 소설이다.

미래의 마을.

사랑이나 우정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완전히 없애고 인간을 똑같은 규칙 아래 통제하는 사회. 태어날 때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보육사의 손에서 자라고, 1년이 지나면 이름을 받고 기초 가정이라 불리는 남녀의 집에 입양이 되고, 12살이 되면 원로회의에서 정해주는 직업을 부여받고 그 직업을 수행할 수 있는 훈련을 받게 되고....그리고 철저히 보호받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임무해제라는 이름 아래 영원히 마을에서 사라진다. 물론 정상적으로 태어나지 못하거나 쌍둥이로 태어난 아이 중 하나도 임무해제로 제거된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임무해제의 진정한 의미는 모른다.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하나. 바로 기억 보유자. 이 사람만이 과거의 기록이 적힌 책을 볼 수 있고 과거 사람들이 살던 생활, 감정, 고통을 느낄 수 있다. 과거 기억 보유자는 마을에서 존경을 받으며 원로회의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자문역할을 한다. 그는 과거의 경험, 기억을 알기 때문에 유일하게 지혜를 갖고 있다.

이런 기억전달자는 그 마을에 단 한 사람만이고 그의 수명이 다할 때 즈음 다음 선정자에게 전수 된다.

 12살 주인공 조너스12살 되던 해에 기억 보유자로 선정되고 기억 전달자로부터 과거의 모든 것을 전수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감정을 되찾게 되는데. 그 중 가장 강렬한 느낌의 사랑을 알게 되고, 지금의 생활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 그 과도한 행복의 추구 때문에 불편이나 불만이나 상처를 거부한다. 심지어 사랑의 상처까지도 피한다.

극대한 행복 추구를 위해 국가가 개입하여 개인의 적성을 파악하고 적성대로 키워내고 그 적성만이 자기 것이라고 판단하고 살아가는 국가가 정해준 적성 외는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기억전달자의 사회.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개개인의 소질, 적성 개발이 개인의 행복과 나라 발전에 기여하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기억 전달자 사회처럼..

아무래도 핵가족 사회, 부모 모두가 직업을 가지는 사회에서는, 아이들의 양육 환경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부모는 자녀와의 공유시간이 모자라다 보니 느긋하게 자녀와 정서적 교류를 하지 못하고 짧은 시간에 자녀를 알아내고자 한다. 이런 틈새를 파고들어 심리학, 적성 관련 책들이 많이 만들어 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 전반의 성장에 관한 문제를 적성 개발 쪽으로 초점을 맞출 때 복합지능을 가진 인간의 다양성은 무시될 수 있지 않을까?

 기억전달자는 사회의 안정과 개인 행복 추구라는 것을 목표로 인간의 수많은 감정을 없애버린 사회 이야기이다. 과학을 앞세운 사회는 인간의 감정도 관리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정을 관리하는 사회,

감정을 관리 당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

그들이 만든 세상에서 태어난 아이들,

그 아이들이 하는 사랑,

관리당한 사랑의 감정.

그 사랑은 어떤 것일까?

그 사랑도 다양하고

그 사랑도 사람마다 다양하고,

특별하고,

짜릿하기나 한 것 일까?

정말 궁금하다.

 

이 소설은

그런 사회를 경고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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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6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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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콜렉션' 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만큼, 책을 읽는 내내 지적유희가 어떤 것인가 제대로 보여주었다.

지식 캐기의 즐거움.
감자 한알을 당기면 줄줄이 이어지는 탐스런 감자들. 그 쾌감은 밭에서 감자를 캐 본 사람이라면 박수를 치며 공감을 할 것이다.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새로운 인물, 새로운 이야기가 줄줄이 펼쳐지는 글에서 난 감자밭의 감탄을 연발한다. .
한명의 인물 따라 관련있는 인물들이 그물망 처럼 얽혀 있고, 이야기 거리가 그믈망 한가득이었다.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나도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은 그 곳이 존재하고 인간이 존재하는 동안은 멈출 수 없는 매력임엔 틀림없으리라.
다분히 방랑자 기질인 나는 홍대용, 박제가를 따라 18세기의 문물과 지식인을 만나는 여행에 기꺼이 뛰어든다.
그리고 같은 만남에서, 각자의 느낌을, 각자의 책으로 만들었던, 선조들의 지적 유희에 흠뻑젖어들었다.

여행하는 것 보다는 적은 돈으로 이런 엄청난 즐거움을 선사해 준 인물은 '정민 교수'.
저자는 2012년 7월 18일 1년간 하버드 대학 옌칭연구소의 방문학자로 초청을 받아 그 곳에 머무는 동안 옌칭도서관에서 사료를 살펴 연구했고,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홍대용, 박제가 등이 연행길에서 만난 중국학자와의 교류에 관한 책을 만들었다.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연구서는 아니다.
연구서를 만들기 위해 주제에 관련된 인물의자료를 수집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 인물과 자료에 관련된, 40화나 되는 방대한 이야기이며 연구서의 밑그림이다.
그렇지만 그의 탁월한 해석력이 그것만으로도 무척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이 책에서 인용되는 자료의 일등공신은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다. 그래서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콜렉션'이란 부제가 붙은 모양이다.
후지쓰카는 경성제국 대학 교수로 있었으며 한국 중국의 문화 교류 자료를 수집, 연구하다 조선의 대학자, 김정희를 만난다.
김정희의 학문에 매료된 그는 추사에 관련된 많은 자료를 수집하였고, 1940년 정년퇴직하여 일본으로 돌아갈 때 우리나라에서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돌아갔다. 그러나 그 많은 자료는 1945년 3월 10일에 이루어진 미국의 도쿄 폭격으로 잿더미로 변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방공호에 있었던 일부의 자료가 미국 옌칭도서관으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후치스카의 아들에 의해 추사가 마지막 살았던 과천 시청에 기증되어 추사 박물관이 만들어졌다.
정민교수의 옌칭 박물관의 감자캐기는 그러니까 후지쓰카의 자료 였다.
일본인들이 자료 수집과 정리의 귀재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민교수도 그의 자료를 보면서 매우 부러워했고 나는 우리 것이라는 것에 집착해 속이 상했다.
그러나 한일 병합시절의 한국에서 그 자료가 안전했으리란 보장이 없고 그런 의미에서 순수한 학자적 관심과 열정에서 후지쓰카란 학자가홍대용, 박제가 등의 지식인들의 자료를 정리해 둔 것이 다행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도 우리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를 못했던 것이 아니라, 많은 전란으로 소실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옌칭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내즐거워 하는 저자를 상상하면서 같이 즐거웠고,
'열하일기' 속에서만 알고 있었던 18세기의 중국과의 교류의 대략적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특히 홍대용이란 인물이 대학자로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아직 저자는 갈길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독자는 저자 덕분에 앉아서 책장 넘기는 것으로 지식을 즐기는 기쁨을 누렸다. 쉽게 누리긴 했지만, 도서관에서 원하는 자료를 찾아내는 저자의 즐거움과 그런 자료를 알아볼 수 있는 저자의 지식이 한없이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후대에 남길 유산으로서의, 연구물의 성과가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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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
사쿠라기 시노 지음, 전새롬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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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순수의 영역>은 질투에서 비롯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 사쿠라기 시노는 비현실적인 사랑의 감정이나 흥미진진한 사건 없이 잔잔한 일상속의 질투, 욕망을 그렸고 작가적 필력으로 나를 그 잔잔한 일상의 세계에 몰입하게 했다

 

얼마 전 읽은, <긍정의 뇌>의 저자질 테일러

인간이 사고에 몰두할 때 좌반구의 뇌와 우반구의 뇌는 뇌량을 통해 쉬지 않고 대화를 하며, 이 내적 대화는 인간 의식의 중요 기준이 된다.”고 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를 인식하고 나의 이익을 계산하는 것은 좌반구의 뇌가, 전체를 보고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것은 우반구의 뇌가 하는 일일 것이다. 결국 인간은 두뇌로 인해 두 개의 마음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두 개의 마음은 평상시에는 잘 분리되지 않고 드러나지도 않지만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큰 자극이 가해지는 순간, 어느 뇌의 작용이 큰가에 따라 상반된 모습으로 드러난다.

 

<순수의 영역> 주인공들도 들끓는 내면 속 두마음의 불협화음을 꽁꽁 숨겨둔다. 아주 가까운 남편 혹은 아내, 애인 앞일지라도 드러내지 않는다.

 

소설 속의 순수의 영역은 천부의 서예 능력을 타고났지만, 또래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는 지적 미숙 상태의 25살의준카’.그녀는 소녀 같지만 소녀도 아닌, 그 나이 또래의 여성적 매력과는 동떨어진, 성별마저 느껴지지 않는 순수함과 투명성을 지닌 여자다.

 

준카는 구시로 시립 도서관에 새로 부임한 관장 노부키의 여동생인데, 노부키는 25살이나 된 여동생, 준카를 돌보는 것이 힙겹다. 그러면서도 준카를 좋아하고 기꺼이 돌보아줄 뜻도 있는 리나라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그녀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결혼할 여자가 같이 져야할 큰 짐을 가진 그는 그런 조건을 달고 결혼해서 행복해 질수 없다고 생각한다.

노부키는 어릴 때 자살한 어머니 때문에 준카와 함께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이런 성장 배경이 그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일까.

그는 인간관계가 주는 삶의 재미보다 일에 더 집착하고 때로는 애써 얻은 소중한 것을 무작정 버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오래 사귄 여자 친구와의 관계도 더 이상 진전이 없다. 그런 그가 레이코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레이코의 요조한 듯 음탕한 묘한 매력에 점점 끌려 들어간다.

 

또 한사람 주요 등장인물은 준카의 천부적 서예 재능을 질투하는 서예작가류세이’.

류세이는 그의 어머니에 의해 만들어진 서예작가이다.

류세이의 어머니 역시 서예작가였지만 현재는 뇌경색으로 누워있다. 아들을 작가로 키웠던 대단한 열정은 그대로 집착으로 변해, 병을 핑계 삼아 아들을 여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다.

류세이는 한때 창작만 꿈꾸던 순수작가였지만, 부인 레이코의 경제력에 기대어 병든 어머니를 돌보며 어머니의 서예교습서를 운영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레이코를 만나 열렬히 구애한 끝에 결혼을 했고, 세상이 자신의 서예실력을 알아주길 기다리지만 기대는 좌절되고 상처를 입는다. 언젠가는 성공하여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부인에게 떳떳한 남편이 되고 싶은 욕망은, 그의 순수함을 점차 변질 시키고 서예 실력도 그 자리에 머물게 한다.

그리고 천부적인 서예실력을 가진 준카를 만나 다시 한 번 절망한다.

 

류세이의 부인인 양호 교사 레이코’.

레이코는 모든 일을 내가 선택하고 책임도 지는 삶,

외로움도 호사롭게 누릴 수 있는 삶,

혼자 시들어가는 삶,

혼자 잠들고 혼자 눈뜨는 삶,

그런 삶의 내면을 지닌 여자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이라는 형태에 그 어떤 기대도 없었고 상대방에게 아내가 있는 것조차 상관없었다. 오로지 상대에 대한 자기의 감정에 따라 움직였다.

류세이의 서예에 대한 재능과 그녀에 대한 류세이의 순수한 열정에 대한 동경으로 결혼한 지 10.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계속된 시어머니 병간호와 늘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류세이. 세월이 그녀의 마음을 변하게 만들었는지, 아님 변함없는 환경이 그녀의 열정과 동경을 좀먹었는지 모르겠지만, 류세이와 결혼할 때 가졌던 동경심과 새롭게 자리잡은 경멸 사이를 오가며 류세이와 시어머니를 냉정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주변에 새롭게 등장한 노부키에게 좋은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들 네 사람은 류세이가 시립도서관을 빌려서 개최한 개인전에서 만난다.

준카는 자신이 가진 천부적인 서예 능력을 모른다. 그러므로 류세이가 뭘 부러워하는지도 모른다. 오빠 노부키가 누구에게도 신세지는 것이 싫어 정착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모른다. 그리고  레이코가 자신에게 숨기고 오빠 노부키를 만나는지도 모른다. 준카는 존재하는 그 자체로, 어떤 것에도 질투 따위의 이기적 감정은 없다, 그녀는 그냥 오빠를 좋아하고 레이코와 류세이 그리고 오빠의 여자 친구 리나를 좋아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과 욕망을 채우는데 준카를 이용하거나 관계 속에 끼워 넣을 뿐 준카를 한 사람의 인격체, 그 자체로 봐 주지 않는다.

류세이는 준카의 실력을 어떻게 훔칠까,

레이코와 노부키는 준카를 통한 자연스런 만남을.

그리고 리나 역시 멀어지는 노부키 마음을 준카를 통해 얻고자 한다.

 

준카가 마지막으로 서 있었던 누사마이바시 다리.

준코를 따라온 서예교습소 원생 요시후미의 비틀린 질투심 때문에 순수의 영역그 자체인 준카는 세상에서 사라진다.

준카의 죽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밀려온 후회와 정화의 시간.

그러나 정화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준카가 남긴 마지막 유작에 또 다른 욕망의 파도가 덮친다.

 

모든 사람의 마음엔 분명 순수의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수의 영역은 잠깐 존재할 뿐. 곧 뒤따르는 다른 감정에 덮여버리는 모양이다.

 

**

 

마지막 책장을 덮고 다 식어버린 커피를 마셨다.

쓴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순수의 영역>의 마지막 장면처럼.

 

<순수의 영역>을 읽는 내내 감정을 가라앉히고 주변 사람들의 기색을 살피게 되었다.

아마도 작가가 전달하는 심리 묘사에 나도 걸려들어 주인공의 기분으로 산 모양이다.

 

몇 년 전 홋카이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지금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삿포로에서 오타루 가는 열차를 탔을 때의 기억.

열차가 오타루에 가까워지면서 철로가 바다 옆을 지났다.

바다를 스치듯 달리는 기차.

파도가 제법 거칠었던 바다가 바로 옆에서 출렁이어 마치 바다 위를 달리는 것 같았다.

광활하고 웅장했던 태평양 바다. 그때 일본이 섬나라라는 것이 몹시 실감났다.

<순수의 영역>을 읽는 내내 오타루로 갈 때 보았던 바다가 떠올랐다.

그리고 겨울 홋카이도의 흰색과 회색이 <순수의 영역> 배경지로 겹쳐졌다. 물론 <순수의 영역> 배경은 일정이 짧아 가보지 못했던 구시로라는 곳이지만.

  

구시로엔 세계적인 습원이 있어 꼭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순수의 영역>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 또 하나 더 생겼다.

몹시 추운 겨울날 아침 이면 구시로 강에 연잎 얼음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구시로 강이 흐르는 누사마이바시 다리에서 연잎 얼음과 시립 도서관을 바라보고 싶다는. 그리고 내 마음의 순수의 영역을 찾아볼 것이라는.

근데 어쩌나.

홋카이도의 방사능 수치가 엄청 높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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