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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자전거 같은 남자 오베.
주인공, 오베를 한 마디로 그렇게 표현해본다.
자전거는,
자신의 두 발로 바퀴를 돌려 나아간다. 오로지 자신의 근력과 기능과 판단의 힘으로 길을 간다.
오베는 그런 남자다.
차를 고치고, 혼자서 집을 짓고,
필요하면 배워서,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남자.
그런 의미에서 오베는 진정한 어른이다. 판단하고, 할 수 있고, 책임을 진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건 진정한 어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엔 진정한 어른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진정한 어른 오베는, 소신을 가지고 행동한다.
남들이 보기엔 괴팍하고 까다로워보이는 성격이었을지 모르지만, 오베는 자신이 가치를 두고 있는 일에, 누구의 시선도 누구의 평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16살 때, 아버지의 죽음으로 혼자가 된 오베는 남의 것을 탐내지 않은 원칙주의자다.
16일간 일을 한 아버지에게 지급된 월급에서, 14일간의 임금을 돌려 주러 가고, 아버지에게 배운대로 '우리는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다.'를 실천한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약자를 위해서는 아니지만)
그래서, 동료 톰이 그의 잘못을 덮기 위해 오베에게 누명을 씌웠지만, 오베는 결코 톰과 싸우지도 않았고, 고발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을 위한 변명도 하지 않는다.
블루칼라로 살면서 화이트 칼라에게 비굴하지 않고, 세상이 바뀌어 컴퓨터로 설계를 하고 집을 짓게 되었지만, 자전거 하나 고칠 줄 모르는 그들의 무능을 간단한 기술로 비웃는다.
조용하지만 강한 오베라는 남자의 가장 큰 약점은 감정표현에 서툴다는 것. 그러나 이 약점도 사랑스러운 아내 소냐를 만나면서 더 이상 약점이 아니게 되고,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행복을 다시 얻는다.
오베의 마음 속 깊이 숨겨져 있는 보석같은 정직과 이타심을 알아본 소냐. 오베에게 소냐는 우리나라의 평강공주와 같은 존대로, 소냐가 있어 오베가 가진 이타심이 더욱 빛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하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오베의 삶이 나같은 평범한 사람이 보기엔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아니 불행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소냐는 아이를 가진 상태로 교통사고를 당하여 태아를 잃고 자신은 평생 휠체어를 타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오베에게 그건 시련이 되지 않는다. 소냐를 위해 집을 개조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다. 그리고 그녀가 죽자 그녀를 따라가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죽음을 계획한다.
하지만 세상을 버리고 가려는 마지막 계획도 그가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빌어먹을'을 외치지만 내면의 이타심때문에 외면하지 못한다.
오베는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소냐를 따라 갈 때까지도 원칙을 고수하며 살아간다.
집을 고치고, 마을을 순회하며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고, 자전거를 정해진 장소에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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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의 주인공들, 오베와 소냐의 삶을 보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행, 불행의 조건을 바꾸어야하지 않는가?
행, 불행은 외면으로 드러나는 조건으로는 판단할 수 없지 않는가?
오직 개인의 마음 속에 깃든 어떤 삶의 자세로만 판단해야 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라면, 오베의 삶은 한번도 불행한 적이 없는 것이다.
오베는 원칙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행동을 누군가 봐 주길 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당연히 잘 보일 행동을 한 적도 없다. 하지만 물이 차면 넘치듯
그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되고,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 이끌린다.
소냐가 그의 옆에 있을 때 오베의 이타심은 소냐를 통해 이루어졌지만, 소냐가 없는 현실에서 오베의 이타심은 다수의 타인에게 실현된다.
훌륭한 이웃이 우리를 구한다.
그렇지 않은가.
오베에게서 나는 '비겁한 승리는 하지 않겠다'는 미국 서부영화의 주인공, 존웨인을 느낀다. 곤궁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슈퍼맨도 느낀다. 하지만 세상을 구하는 바쁜 영웅들인 그들에게 차마 나까지 구하란 말을 할 수 없다.
원칙을 따지며 잔소리 하는 가까운 이웃, 그 사람이 오베이다. 이런 이웃이 있다면 슈퍼맨을 부를 필요도, 존웨인을 불러올 필요도 없지 않은가.
끝으로,
아날로그의 힘에 대해서도 한 마디. 오직 속도로만 가치를 매기는 디지털 세대들이여, 아날로그의 느림의 힘을 무시하지 마시라.
전원 스위치로 모든 것이 시작되지만, 전원 공급이 끊기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 어떤 것의 동력이 다른 무언가의 동력에 달려있다면, 그걸 진정한 힘이라 할 수 있는가?
전원 공급이 끊어진 디지털기기의
모습이란....
작가는 공구를 다루는 멋진 오베를 통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주었고, 나는 덕분에 우리나라의 살아있는 수많은 '오베'들에게 존경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