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디
코트니 서머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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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지만 무심히 잊힌 여자들에 대한 반성이라는 문구가 큰 울림을 주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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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홈즈
전건우 지음 / 몽실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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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불면증으로 미소신경정신과에 다니며 상담을 받는 주부 공미리. 건조한 삶 속에서 남편도 아니고 자식도 아닌 병원의 박도진 선생만이 그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인물 중 하나다. 그녀에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친구같은 여인들이 셋 있었으니, 일흔을 코앞에 둔 광선슈퍼 주인 전지현, 남편이 경찰로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거라고 외치는 추경자, 대학에서 만난 선배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홀로 키우는 싱글맘 박소희가 바로 공미리의 쉼터였다. 그들은 곰인형에 눈을 붙이는 작업을 하면서 수다도 떨고 신세한탄도 하면서 서로를 의지하는 사이. 그런 그들이 모여사는 광선주공아파트에 바바리맨이 나타났다! 어두운 귀갓길 혼자 있는 여성을 노려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는 바바리맨의 이름은 일명 쥐방울. 탐정이 꿈이었던 공미리를 필두로 네 명은 주부탐정단을 조직하고, 피해자가 여성인만큼 경찰에게는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 거라며 앞장서서 쥐방울잡기에 나선다. 그런데, 아파트 내 쓰레기장에서 여성의 잘린 손목이 든 비닐봉투가 발견되고, 급기야 소희가 납치되면서 기피코 사건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밤의 이야기꾼들]을 읽고 '부디 팬으로 받아주세요!'를 외치게 만든 전건우 작가의 [살롱 드 홈즈]. 조금 무모하다 싶으면서도 가슴 속에 열정을 간직한 주부 네 명이 모여 주부탐정단을 조직했다. 남편들에게 무시당하고 그저 자식만 바라보며 어떻게든 버텨온 시간들. 이제 더는 이렇게 못살겠다! 지키고 있던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온다. 대리만족이 엄청나다. 나에게도 이렇게 열정을 불사를 무언가가 있었던가. 게다가 죽음 앞에서도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고 범인과 대치하는 이 여성들이라니. 평소에는 수다를 떨고 속엣말을 털어놓으면서 의지하고, 이제는 주부탐정단으로 끈끈하게 결속되어 진한 우정을 나누는 이 여성들이 정말 부러웠다. 결혼하고 아이낳고보니 인간관계가 소박해진 나로서는 이런 만남들이, 이런 관계가 그립다.

한국추리소설계의 보물답게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본 독자라면 범인을 알아채기가 어렵지 않다. 똥눈을 가진 나도 '앗, 이 사람 뭔가 수상해!'라고 생각했더니 범인이었던 것이다! 앞서 읽은 [밤의 이야기꾼들] 보다는 조금은 덜 무서웠지만, 쥐방울같은 녀석들이, 여자를 납치해 살해하는 무서운 사람들이 어쩌면 우리 주위에서 멀쩡한 얼굴을 하고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면 [밤의 이야기꾼들]과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남편으로 가면을 쓰고 있겠지. 작품 안에서 범인은 여자에게 접근할 때 치킨을 사가면서 딸과 통화하는 다정한 아빠를 연출한다. 실제로 범인이 저런 연극을 한다면 현실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경계심을 풀 것이다. 설마 자식이 있는 아빠가 비정한 살인마일 리 없다고 믿으니까. 하지만 매체를 통해 드러나는 범인들의 신상을 들어보면 누군가의 아빠인 경우가 참 많았던 것 같다. 추악하고 잔혹한 욕망 앞에서 전혀 가족에 대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 것이리라. 어쩌면 자신은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라 자만하는 것일지도. 누군가의 친절을, 호감가는 인상을 이제는 의심하지 않고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주부탐정단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어쨌거나 그들의 활약에 도움을 준 데다, 마지막에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경비원 광규씨의 주부탐정단 가입을 열렬히 환영한다. 노모를 모시며 살다가 결혼 시기도 놓치고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선 광규씨. 너무 멋져요! 광선슈퍼가 아닌 '살롱 드 홈즈'에서 새롭게 시작될 그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제발, 속편 써주세요! 제발,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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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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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베나는 16**년의 어느 날, 바베이도스를 향해 항해중인 크라이스트 더 킹호의 갑판에서 영국인 선원에게 강간당했다. 그 폭력의 산물이 바로 티투바다. 몇 주 뒤 브리지타운 항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임신한 상태였고, 아베나는 남자 두 명과 함께 다넬 데이비스라는 부유한 대농장주에게 팔려간다. 아베나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 다넬 데이비스는 그녀를 살 때 함께 구입했던 아샨티 출신 노예 야오에게 그녀를 줘버리고 다시는 농장에 발을 들이지 말 것을 명령한다. 야오의 극진한 사랑으로 안정을 찾아간 아베나. 딸인 티투바를 볼 때마다 자신이 폭행당했던 날의 악몽을 떠올리며 아이를 멀리하지만, 결국 모성과 야오의 사랑 덕분에 티투바에게 애정을 쏟게 된다. 하지만 다넬 데이비스에게 강간의 위협을 당한 아베나가 그를 칼로 상처입히게 되고, 결국 아베나는 처형당하며 야오 또한 다른 주인에게 팔려가는 도중 혀를 깨물어 자살한다. 혼자 남은 티투바는 만 아야라는 늙은 여인에게 거두어지면서 그녀로부터 다양한 식물들의 사용법과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소환하는 기술 등을 배운다.

 

만 아야가 죽고 다시 홀로 남은 티투바. 사람들은 만 아야의 능력을 이어받은 그녀를 두려운 존재로 여긴다. 이 사실에 충격받은 티투바는 동족들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예들을 찾아 병든 자들과 죽어가는 자들의 기력을 북돋아주기 시작한다. 어느 날 존 인디언이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자유롭던 생활을 청산한 채 그가 주인으로 모시는 수재나 앤디콧 밑으로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수재나는 티투바를 멸시하고, 그녀를 마녀로 오인하며 계략을 세운다. 수재나에게 복수하기 위해 작은 질병을 선사하지만, 그로 인해 수재나는 티투바와 존 인디언을, 푸르스름하고 차가운 눈동자에 뱀을 연상시키는 보스턴의 목사 새뮤얼 패리스에게 팔아버린다.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와 딸 벳시, 벳시의 사촌인 애비게일을 정성으로 돌보지만 어느 날부터 티투바를 보면 기절할 듯 소리지르며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아이들. 마녀로 몰려 감옥에 갇혀 처벌을 기다리는 티투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마리즈 콩데는 스웨덴 한림원이 성 추문에 휩싸이게 되면서 수상자 선정이 불발로 끝났던 2018년, 그 대안으로 제정된 대안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세상에 단 한 번 만들어지고 단 한 번 수여된 뉴아카데미 문학상. 평생 흑인, 여성, 피식민지라는 삼중고를 짊어지고 꿋꿋하게 살아온 이 작가는 우리에게는 낯선 존재이나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대가이다. 그녀는 1937년 프랑스의 식민지 과들루프에서 은행가인 아버지와 최초의 흑인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노예제도라는 말도 모를 정도로 과보호를 받으며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16세에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고나서야 프랑스인들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얼마나 역사적, 사회적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는지 인식한다. 백인보다 더 백인답게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그 동안 쌓아왔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새롭게 자신을 다져나가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첫사랑을 통해 '검둥이'라는 자의식을 확실히 깨닫게 된 콩데. 1960년부터 1973년까지 경제적 빈곤을 바탕으로 아프리카를 알아가는 경험을 거친다. 이 때의 경험으로 1976년 [에레마코농]이라는 소설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흑인, 여자, 가난한 미혼모가 아니었더라면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던 콩데의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런 고난의 시간이 '작가'인 그녀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그런 그녀의 글이기에 사회적 약자와 폭력과 차별의 희생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낸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는 그런 콩데의 성향이 잘 녹아든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같은 인간임에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팔려다니고, 강간당하고, 노예로서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아프리카인들. 심지어 백인을 상처입혔다는 이유로, 그 경위는 따지지도 않고 재판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순식간에 나무에 목매달리는 존재들. 이 작품은 1692년 보스턴 근교의 세일럼 마을 전체를 마녀 사냥의 광란으로 몰아넣으며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한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티투바가 감옥에 갇힌 후의 자세한 경위도 알 수 없었던 현실 세계에 콩데가 상상력을 불어넣어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자신의 욕망에 당당한 진보적인 한 여성을 만들어냈다.

 

같은 인간이지만 흑인들이 떠안아야했던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작품 안에서 존 인디언은 살아있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티투바에게 여러 번 말하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즐기고 싶었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에 당당하고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드러내고 싶었다. 흑인이기에, 여성이기에 그녀가 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를 한정짓는 것은 백인, 그리고 남자들. 그 한계를 뛰어넘은 티투바의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삶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풍미를 지닌 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티투바. 자신의 존엄은 먼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자신의 한계를 결정할 수 있는 타인은 아무도 존재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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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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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의 어록을 줄줄 외울 정도로 혁명 사상이 투철하며 요리 잘하는 취사병으로서 인민해방군의 모범 병사로 불리는 우다왕. 그의 목표는 오로지 간부가 되어 시골에 있는 아내와 아들의 호적을 시내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사단장의 전속 요리사로 임명되어 그의 부엌을 돌보게 된 우다왕은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묻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며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는' 자세를 고수하며 오로지 맡은 바 임무를 해내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런 그의 모습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연심을 품게 된 사단장의 아내 류렌. 어느 날 사단장이 두 달간 부대를 더욱 정예화하고 행정조직을 간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중요한 회의에 두 달간 참석하기 위해 집을 비우면서 류렌의 적극적인 유혹이 시작된다. 마오쩌둥이 내세운 혁명의 모토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새겨진 나무팻말이 제자리에 없을 때는 자신이 볼 일이 있어 찾는다는 뜻이니 위층으로 올라오도록 명령한 류렌. 그리고 마침내 자리를 이탈한 나무팻말. 우다왕은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침실 문을 두드리고, 류렌은 우다왕에게 자신에게도 성과 애정의 봉사를 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시작된 그들의 짧은 인연.

 

2005년 봄, 중국 광둥성 격월간 문예지 [화청(花城)]3월호에 장편소설 한 편이 상당 부분 삭제된 채 발표된다. 중국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어느 군부대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그러나 이미 많은 부분을 사전에 걸러냈음에도 발간되자마자 중앙선전부의 긴급 명령으로 초판 3만 부가 전량 회수 및 폐기되고, 향후 출판 및 홍보, 게재, 비평, 각색을 할 수 없는 이른바 ‘5금(禁) 조치’를 당하게 된다. 중국 문단은 발칵 뒤집혔고 문예계는 거세게 저항했지만 당국은 요지부동이었다. 이 소설은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는 듯했으나 예상치 못한 환경에서 이 작품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수많은 중화권 독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해적판을 돌려 보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의 과잉 탄압은 오히려 독자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작품은 중화권은 물론 해외 독자들 사이에서도 반드시 읽어야 할 문제작이 되었다. 그렇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는 21세기 중국 문단 최고의 화제작이자 비공식 베스트셀러로 떠올랐으며, 해외에서도 10여 개국에 소개되어 세계 문학계의 찬사를 받았다.

 

파격적이고 시적인 성애 묘사로 논란의 중심에 놓였던 이 작품이 당국으로부터 금서 조치까지 받은 이유는 마오쩌둥이 내세운 혁명의 모토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의 언어로 전락시킴으로써 혁명 전통을 희화화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품 안에서는 마오쩌둥의 전신 석고상이 박살나는 장면, 류렌이 그의 초상화를 찢어 발로 짓밟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 사회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한마디는 혁명 언어의 경전이자 무소불위의 금언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언어를 인간의 욕망으로 해체함으로써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개개인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근원을 확인하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연월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옌렌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이번이 3판이다. 아주 오래 전 출간되었을 때는 단순히 성애 묘사 소설인 줄만 알았고, 이렇게 깊은 메시지가 담겨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연월일]에서 매혹되었던 그의 시적인 묘사는 이 작품에서도 역시 빛을 발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순간 불꽃 같았던 연심. 과연 류렌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성기능에 장애가 있으면서도 혁명정신으로 똘똘 뭉쳐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복수? 단순한 외로움 달래기? 서로 사랑한다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보이는 여자의 결심은 단호하다.

 

중국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마오쩌둥과 혁명에 대해 나는 거의 모르는 상태로 류렌의 심리와 작가의 문장에 집중하며 책을 읽었다. 모두가 혁명과 충성이라는 기치 아래 앞을 향해 달려가는 그 시대에서 여자는, 개인으로서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을까. 어려우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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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고발 - 착한 남자, 안전한 결혼, 나쁜 가부장제
사월날씨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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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지기는 삼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갑자기 옆지기 출생신고). 위로 나이 차 많이 나는 누님과 형님이 한 분씩 계신다. 거의 10년이나 나는 나이 차로 인해 집안의 귀염둥이-가 아니라 그냥 막내로 자라났다. 공부보다는 노는 거 좋아해서 학창시절 어머니 속을 꽤 썩였고 뒤늦게 정신차려 공부에 올인, 대학원까지 나온 나름 수재(?)다. 아버님에게는 장남이 최고라 그리 귀여움 못 받은 듯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세상 예쁨 다 받고 성장했다. 늦게 태어난 자식, 앞으로 함께 지낼 날이 위의 자식들보다 짧을 것 같아 안쓰러우셨다고 한다. 비록 잔소리는 하시지만 절대 옆지기를 이길 정도는 아니고, 그냥 걱정되는 마음이 속에만 남아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밖으로 표현된다고 봐야 할까. 이 막둥이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 지대하여 옆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한 걸음만 잘못 디뎠어도 옆지기는 마마보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정~~~말 평범하게 자라 공무원이 됐다. 노는 거에 관심 없었고 남들 들으면 재수없다 생각할 지 몰라도 공부하는 게 좋아 공부 열심히 했다. 엄청 잘 하진 않았어도 최선을 다했고 이만하면 괜찮게 살았다 싶을 정도로 나름 성취감도 느끼며 살던 그 때. 사실 나는 결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옆에서 그런 나를 지켜보던 부모님은 조금 답답해하셨다. 혹시라도 이 딸래미가 혼자 늙어갈까봐. 그렇다고 부모님의 바람대로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는 없어서 나의 의지를 공고히 했다. 그러다 옆지기를 만났다. 학창시절에 이 남자를 만났다면, 아마 이 남자는 놀고 있었을 것이므로, 놀기만 하는 남자는 나의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을 텐데. 그나마 이 남자가 나와 만났을 때는 어머니 속 썩일 거 다 썩이고 사회인으로 자리돋움 하고 있을 때였던 것이다. 옆지기에게 말했는지 안했는지 모르지만 사실 처음 만났을 때 활짝 웃는 그 웃음에 내가 반했다. 사귀기 시작했을 당시 해프닝이 좀 있긴 했지만 적은 나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고, 결국 결혼했다. 4년 8개월 전에.

옆지기와 시가는 [결혼고발]의 저자 사월날씨의 경우처럼 무난한 사람들이다. 옆지기는 사람 좋아하고 자유로운 영혼에 집안일 잘 하고(냉장고 정리, 화장실과 베란다 청소, 집안전체청소 등등. 나는 주로 빨래만 하네) 아이들과 잘 놀아준다. 단점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여기서 단점까지 마구 어필하고 싶지는 않은 이 마음. 아버님은 별 말씀 없으시다기보다는 장남인 아주버님댁보다 딱히 우리에게 관심 없는 느낌이랄까. 어머니는 막둥이사랑이 하늘을 찌르는 분이시지만 형님네와 작은 분란이 있은 후로 시집살이를 마구 시키지는 않으신다. 그런데 무난하다고 해서 시부모님이 편할 리 만무하다. 어느 때를 기점으로 어머니가 무척 불편해졌다. 신혼 때는 시가에서 걸어서 1분이면 오갈 수 있는 집에 살았는데, 어느 날 새벽 6시 반에 어머니가 들이닥쳤다. 우리가 아침으로 뭘 먹는지 보시겠다면서. 아침이라 비몽사몽에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않은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옆지기가 나와의 협의 없이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새벽 방문에 동의한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왜 아들이 사는 집이라고, 같이 사는 아들의 아내는 생각지도 않고 새벽에 당당하게 방문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신 건가. 그가 전화를 끊고 나에게 미안한 눈짓을 보냈고 나는 모른 척 했다. '어머니가 우리 아침에 뭐 먹는지 보시려고 오시나' 했더니 그의 대답은 '우리 엄마는 안 그래' 였고, 말 그대로 들이닥친 어머니의 첫 마디는 '뭐 먹는 지 보려고 왔지' 였다.

 

그 후로 수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내가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 중 대부분은 '말'에 의한 것이었다. 나와의 통화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셔놓고, 옆지기와의 통화에서는 저렇게 말씀하시는 일이 잦았으며, 때문에 이후로는 어머니와 통화할 때는 항상 스피커 폰으로 진행했다. 하시는 말씀에 맞장구라도 치면 옆지기에게 '걔(어머니는 나를 주로 야, 걔 이런 식으로 부르셨다)는 직업이 그래서 그런지 말대꾸를 좀 한다'고, 싫은 소리 듣기 싫어 그냥 가만히 말씀만 듣고 있으면 나중에 꼭 '어디가 아픈 거냐, 표정이 왜 그러냐'는 식으로 또 한소리를 하셨다. 어쩌라는 건지. 위로 계신 형님 집에는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셔서 형님을 기겁하게 만들어 아주버님에게 크게 난리를 당하신 후 우리집에 비번을 누르고 들어오신 적은 없었지만 저녁마다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참 불편했더랬다. 나에게 늘 당부하신 말씀은 '아들 밥 잘 챙겨라' 였는데, 어머니 저도 같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시가에 가면 꼭 옆지기에게 '밥 먹고 왔냐'로 대화가 시작되었고, 옆지기가 먹고 왔다고 하면 '거짓말하네'를 스스럼없이 말씀하셨다. 아니 뭐가 '거짓말하네'인가. 내가 예민한 건지 모르겠으나 그 말에는 '네가 지금 네아침도 안 먹고 와서 네 마누라 편을 드냐' 라는 진심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명절에는 새벽부터 시누이가 오는 밤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고, 아들 안색이 안좋다고 확신하는 순간 '너희 싸웠냐, 왜 싸웠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싶어하신다.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하니 너도 나를 친정엄마라고 생각해라' 였다. 책에서도 등장하는데 나도 이 말에 동의하 수 없다. 저 친정엄마 계시는데요. 어머니, 저 같은 딸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저희 엄마 제 성격보고 고집세고 지랄맞다 하세요. 저 엄마한테는 마음 속에 있는 불만 이야기하면서 난리 버거지를 피울 때도 있지만 어머니한테는 그렇게 못해요. 제가 만약 그러면 어머니 뒤로 넘어가실 거에요. 저 몸 안 좋으면 엄마집 가서는 누워 잘 수 있어도, 어머니댁 가면 애들 돌보느라 제 밥 챙겨먹기도 힘들어요. 결국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가장 큰 차이는 속에 있는 말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느냐가 아닐까. 엄마와는 싸울 수 있다. 울며불며 이거 서운하다, 저거 서운하다 다 말하고 난리를 피워도 며칠 지나면 미안하다 사과하고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아니다. 혹시라도 속엣말을 하게 되면 '지랄하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어머니의 말들 중 충격적인 것은 며느리들에게 '지랄하고 자빠졌네'를 수시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이렇게는 못살겠다 하여 옆지기를 통해 내 의사를 전달했다.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대놓고 한 마디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전통적인 여성에 대한 인식이 내 안에도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쁨 받고 싶다는 욕구,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 어머니에게 고마운 점도 분명히 존재해서 이 널뛰는 듯한 내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도 했다. 결론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자는 것. 나를 '딸처럼' 생각한다는 어머니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나는 그저 어머니를 '시어머니'로 대하기로 했다. 잘 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못하지만 않으려고 했다. 어머니와의 통화는 옆지기에게 맡겼고, 옆지기도 친정에 자주 전화하지 않는다. 챙기는 것은 챙기더라도 효도는 셀프. 어머니도 아들이 보고싶지 며느리가 보고 싶겠는가. 옆지기는 처음에는 나를 통해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하더니, 이제 포기했다. 결혼 전에는 세상 개방적인 척 하던 옆지기는 알고보니 아버님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일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고, 가끔 나의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아들'이 되려는 그를 향해 내가 일침을 날리는 중이다. 힘들어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나를 만나버린 것을.

 

[결혼고발]을 읽다보니 할 말이 참 많아진다. 혹자는 여성의 이기심이라고, 시가를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다. 내가 너무 기가 센 거 아니냐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그가 만약 여성이라면 좋은 시가를 만났구나 하겠다. 남성이라면,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련다. 그 은근한 분위기와 말투, 며느리는 그저 아들에게 종속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그런 환경을 당신이 직접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아무 말 말고 있으라고 하고 싶다. 사위는 손님, 며느리는 식구니까 맛있는 것은 다 사위가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도 있다. 게다가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피해보다 이득을 보는 경향이 많은 집단일 가능성이 크므로 더 말하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이고 페미니스트고를 떠나 우리 사회가 여성의 대우에 각박한 건 맞지 않나. 과하다 싶을 때도 물론 있지만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악을 쓰고 찾게 된 경위는,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여자라는 이유로 받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다. 반대의 성이 겪는 고충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지탄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저자가 너무하다 싶은 것도 물론 있다. 반찬을 해오셨는데 밑에서만 받고 돌아가시게 하는 것은 예의는 아니다. 누구를 위한 반찬이든 어쨌든 수고를 들이셨으므로 그 부분은 인정해드려야 한다고 본다. 그 횟수가 과연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지만. 아들 생각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이렇게 쓰고보니 결혼이 어마무시 무섭고 두려운 일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분도 계실 것 같지만, 힘든만큼 행복도 많다. 세상 게으른 내가 곰돌이 둘 낳아서 '내가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살고 있고, 맨날 투닥투닥 지지고 볶고 하지만 그래도 이 사람처럼 내 성격 다 받아주는 사람 없다는 생각에 오늘도 다혈질인 성격 누르고 산다. 내가 시가에 불만이 있는 것을 아는 옆지기는 친정에 가면 자기가 나서서 이런 저런 일 다 한다. 설거지도 하려고 하고, 자잘한 집안일 살피고. 그도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불만으로 부루퉁한 아내가 미울 때도 있겠지만 나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어쩌겠는가. 이 대한민국에서 막둥이사랑 나라사랑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것을. 미안하기도 하지만 내가 며느리라서 받는 대접(?)의 고충을 그도 알아야 한다.

 

이 리뷰를 대체 어디서 끊어야 할 지 모르겠다. 결론은, 서로 좀 이해 좀 하고 살자는 것.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적으로 보지 말고 같은 여성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측은지심을 가져달라는 것. 남자들의 고충도 물론 있겠지만 [결혼고발] 리뷰니 여성들의 고충을 이번에는 먼저 생각해보자는 것. 그리고 나는 앞으로, 그냥 '나'로 살겠다는 것. 정말 죽어라 하기 싫은 일은 못한다고 말하면서 내 개인의 독립적인 인격을 지켜나가면서 살겠다는 것. 그렇다고 나 버릇없고 예의없는 인간 아니므로 태클은 사절. 참고로 그렇다면 집값은 보탰느냐 하는 속물적인 질문에 답하자면 시가에서 해 준 집값 못지 않게 혼수와 집값 같이 했다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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