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엘러리 퀸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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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시리즈> 의 세 번째 이야기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다. '정통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우스운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셜록 홈즈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통속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기묘한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의 다섯 챕터, 총 21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이 작품집을 통해, 현실의 크리스마스는 끝났지만 다시 한 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이야기들에서도 눈에 띄는 유명 작가가 꽤 있는데 나의 범주에서는 말해 무엇할 엘러리 퀸, 토머스 하디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들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셜록 홈즈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장식한 질리언 린스코트, 에드워드 D.호크, 피터 토드다. 셜록 홈즈와 그의 영원한 파트너 왓슨 박사를 주인공으로 한 세 편의 이야기는, 바로 아서 코난 도일과 셜록 홈즈를 향한 헌사이자 독자들의 팬심을 자극하는 멋진 작품이었다. 질리언 린스코트의 <겨울 스캔들>은 어린 소녀 제시카의 시각에서 바라본 사건을 다룬다. 여기에서 셜록 홈즈는 '은 지팡이', 왓슨은 '네모 곰'으로 묘사되는데, 그 1년 전에 있었던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는 바로 에블린이 등장한다. 홈즈가 인정한 여성, 바로 그 에블린이다. 첫 번째 남편을 병으로 잃고 두 번째 남편의 살인용의자로 몰린 그녀지만, 어째서인지 사람들의 쑥덕거림을 피하지 않고 의연하게 같은 사건장소를 찾는다. 사건을 목격한 제시카의 증언을 세심히 검토하며 에블린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 에드워드 D.코트의 <크리스마스 의뢰인>에는 악명높은 모리아티 교수가 등장한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지은 루이스 캐럴이자 찰스 도지슨이 사건의 의뢰인으로, 그와 관련된 수수께끼가 제시되며 모리아티 교수의 계략을 꿰뚫는 홈즈의 모습이 그려졌다. 피터 토드의 <푸딩 그릇의 비밀...>은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웃음이 터졌는데, 바로 주인공들의 이름 때문이었다. 혈록 숌즈와 좟슨이라니!! 이런 귀염둥이 같으니라고!!

 

할머니의 결단이 눈부셨던, 크리스마스 만찬의 푸딩 속 비밀을 그린 <먹어 봐야 맛을 알지>, 으스스한 분위기 속에서, 진실이라 믿고 엄청난 일을 저질러버린 남자의 광기를 그린 <피와 살보다 더>도 인상적이었고, 아버지의 심부름을 다녀오다 강도를 만난 소년이 원수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이야기 <재채기를 참지 못한 도둑들>은 마치 한 편의 동화를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범죄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서로 사랑해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지만 현실 앞에서 좌절하게 되는 젊은 부부, 크리스마스라 더 비참하게 느껴지는 처지다. 결국 칠면조를 훔치는 아내와 '등기우편'을 훔치는 남편. 마지막 반전은 오 헨리의 작품처럼 따스하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패러디한 작품 <말리에게 바치는 화환>도 재미있다. 스크루지 못지 않을만큼 몰인정한 주인공. 자신을 찾아온 유령들을 통해 동업자인 말리를 죽인 진범을 찾고, 가장 중요한 순간 소중한 상대의 곁에 있어줄 기회를 얻는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이런 유령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시리즈>를 읽으면서 가장 큰 수확은 여러 미스터리 작가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기대했던 작가는 기대했던만큼, 이름조차 낯선 작가들의 작품은 기대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말 그대로 보석같은 작품들. 이제 남은 책은 [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이야기] 하나 뿐인데 벌써 아쉬운 마음 한가득이다. 범죄소설 마니아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시리즈. 마지막 한 권은 정말 조금씩 더 아껴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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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 근대의 문을 연 최후의 중세인 클래식 클라우드 26
이길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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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하면 딱 떠오르는 인물, 바로 마르틴 루터다. 유럽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15세기 독일의 작은 도시 비텐베르크에 새롭게 설립된 대학의 교수였던 그는 후에 유럽 전역을 뒤흔드는 개혁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가 힘주어 외쳤던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총-. 그는 구원을 위해서는 교회나 직제 같은 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적 존재'가 필요없다고 여겼으며, 신앙을 신과 인간 사이의 문제로 보았다. 여기에서의 인간은 '개인'을 이야기한다. 집단주의적 사유와 위계적 문화로 가득찬 중세에서 세상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인 '주체적 자아'를 부르짖었던 루터. 이 책은 그가 어떻게, 왜 그와 같은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위대한 여정을 따라가보는 시간이었다.

 

 

 

아이슬레벤에서 태어났고 세상을 떠난 루터는 만스펠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의 성은 루더였는데, 어떻게 그는 '루터'가 된 것일까. 당시 서민들은 대부분 글자를 읽거나 쓰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조차도 글자보다 소리로 알고 있었다. 그저 알아듣기만 하면 어떤 발음이든지 크게 개의치 않았으나, 루터는 자신의 성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그리스어로 '자유인', 혹은 '자유롭게 된 자'를 뜻하는 '엘레우테리오스'에서 가운데 글자에서 자신의 성을 가져왔다고 추측했다.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성장한 탓에 루터의 여러 글에서 불안한 정서를 확인할 수 있지만, 비단 그것은 부모님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쟁과 페스트, 사회적 혼란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죽음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었던 중세 사람들. 당시 유행하던 <죽음의 춤>이라는 장르화 속 넘쳐나는 해골들을 통해 중세인들에게 이 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고 삶으로 다가왔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유럽 인구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간 페스트로 인해 신분상 페스트에 노출될 위험이 컸던 신부들 또한 대거 세상을 떠났고, 이는 준비되지 않은 사제의 양산을 초래했다. 여기에 기존 교회 권력의 부패까지 더해져 유럽 교회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교회의 분열, 성직의 매매, 성추문과 같은 교회의 타락, 마녀사냥 등으로 중세인들의 삶은 피폐해졌으며 루터 또한 그런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 지점이 루터가 '개인'의 신앙을 주장하게 된 이유였다. 서민들과 같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영원한 구원을 갈망했고,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신을 찾았다. 그가 갈구한 구원은 철저히 자신을 위한 것. 이름이 상징하듯이 죽음에서 '자유롭고' 싶은 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개인. 주체적 자아. 이 단어들이 루터의 개혁사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대학생이 되어 에르푸르트에 입성한 루터는 성마리아돔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이 곳에서 겪은 몇 차례의 실존적 체험. 그 중 가장 중요한 경험은 생애 처음으로 완전한 모습을 갖춘 성서를 만난 것이었다. 성서를 직접 읽게 됨으로써 세계에 대한 이해와 가치관을 오직 자신 스스로 정립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게 사제와 교회의 언어는 더 이상 절대적 권위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오직 성서주의'는 바로 여기에서 싹텄던 것이다.

 

 

 

사제가 된 루터는 신학 교육을 받았는데 대학에서 읽어야 하는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의 책에 실망한다. 항상 불안했던 그가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신을 만나는 것 뿐이었지만, 이 책에서는 신없이 세상을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오컴의 윌리엄으로 대표되는 유명론,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 신비주의 운동에 의해 방황에서 벗어난다. 오컴은 신앙과 이성을 철저히 분리해내며 인간의 인식으로는 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신은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서 나에 의해 '경험'되는 존재일 뿐이라고 선언하며,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이성보다는 믿음과 계시를 강조했고, 이는 '주체적 경험'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타나게 된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을 통해 인간의 전적인 부패성을 배우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원죄를 인정하며 신의 은총을 통한 구원을 강조했다. 루터가 지은 [독일 신학]으로 대표되는 신비주의 운동은 신앙에서 '개인적 경험'을 강조하며 가톨릭교회의 견고한 위계적 세계관을 거부한다. 여기에 로마 방문을 통한 교회와 직제에 대한 실망감이 더해져 루터는 한층 더 신과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는 특히 신의 의, 수동적 의에 대해 강조했다. 전적 타락의 가능성으로 더럽혀진 인간을 의로운 존재로 값없이 인정해주는 것이 신의 의, 이를 '외적인 의'에서 '수동적 의'로의 전환이라 불렀다. 의라고 하는 것이 인간적 노력과 공적에 따라 능동적으로 외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해 값없이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칭의론'이라 한다.

 

 

 

로마에서 돌아온 루터는 거주지를 에르푸르트에서 비텐베르크로 옮기고 성서를 독일어 중심으로 강의하기 시작한다. 그의 성서 해석 방법을 특히 '그리스도 중심적 성서 해석'이라 부르는데, 성서는 사랑과 자비의 신을 증명하는 책이므로 반드시 그리스도적 시각에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여기에 성서의 문자적 의미를 제대로 푸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면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주체적 개인이 스스로 습득한 능력으로 성서의 원문을 읽고 깨우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이것이 바로 루터가 가져온 '읽음의 혁명'이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에서 면벌부 판매를 비판하며 95개조 논제를 발표했다. 이 논제가 독일어로 번역되면서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이 시기가 대략 1518년 1월 즈음으로 이 때를 종교개혁의 시작이라고 본다. 이후 1518년 하이델베르크 논쟁을 시작으로 가톨릭교회와 루터의 전투가 시작되었고, 그 논쟁들 중 하나인 요하네스 에크와의 논쟁에서 에크는 루터를 이단으로 낙인 찍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를 바탕으로 교황 레오 10세가 루터를 정죄하는 교서를 발표하자, 그는 '종교개혁 3대 문서'로 자신의 개혁적 생각을 토로했다. 그는 만인사제주의에 기초하여 교황에게만 부여되었던 영적 신분의 우위성, 독점적 성서 해석권, 공의회 소집권을 모든 이에게 돌렸고, 이를 통해 교회가 개혁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루터가 개혁하려고 한 것은 종교라는 '제도'가 아니라 신앙적 언명에 대한 '해석'을 바꾸려고 했다. 그것은 성서에 기반을 둔 것으로 그의 종교개혁은 일종의 해석학적 운동으로 여겨진다.

 

 

 

만인사제주의는 후에 중세의 교육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는데, 루터는 공교육의 필요를 강조한다. 모든 도시에 학교를 설립할 것을 호소했고,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학교는 공적 기능을 해야 하므로 국가가 설립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다만 그가 말한 학교는 일반 세속 학교가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가르치는 학교로 국한되어 있었다.

 

 

 

한편 루터는 '종교개혁 3대 문서'를 통해 모든 이에게 자유로운 결혼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는 이후 수녀 출신의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하게 된다. 엄격하고 보수적이며 금욕적이었던 중세의 성 윤리.루터는 육체 역시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라며 부부간의 애정 표현을 신의 명령으로 해석했다. 책 안에서 루터는 씀씀이가 남다르고 제자들을 불러 대화를 나누길 좋아하는 인물로도 등장하는 반면, 카타리나는 그런 남편을 도우면서 생활력 강한 인물로 그려진다.

 

 

 

95개 논제를 발표한 이후 이단으로 찍힌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피신해 10개월 동안 성서 번역에 매진한다. 고대 그리스어로 기록된 신약성서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 독일어로 번역하는데, 이를 통해 표준 독일어가 형성되었고, 독일 민중에게 자국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독일 민족주의의 구심점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또한 교회 음악에도 큰 변화를 가져와 루터는 민중 독일어로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노래 또한 독일 민중이 쉽게 익히고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미디어 혁명도 빼놓을 수 없다. 구텐베르크의 활자 개발과 인쇄기의 발명으로 정확한 복제와 대량 인쇄가 가능해지면서 루터의 사상이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보수적인 수도사의 모습으로 결코 농민의 편에 서지 않았고, 주로 영주들의 힘을 빌려 자신의 개혁 수업을 완수하려 했다. 농민의 요구 중 수탈과 세금 문제는 지지했으나, 목회자 선임권과 노예해방에 관한 것은 거부한다. 사회와 계급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중세인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의 종교개혁 역시 각 개인의 자유로운 신앙 선택으로 연결되지 않고, 영주가 선택한 종교가 그 지역의 종교로 인정될 뿐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신의 은총을 기리는 주체적 자아를 강조하며 성서를 읽으면서 찾아낸 진리를 주변으로 전파하려 한 그의 노력을 잊어서는 안된다. 결혼이란 부부의 친밀한 사랑임을 스스로의 혼인을 통해 입증했고, 누구나 성서를 읽고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공교육 설립에도 전념했다.

 

 

 

어렵고 고될 줄만 알았던 루터와의 여정이, 이길용 교수님의 글이 있어 한결 수월했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루터의 위대한 면모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불안, 한계 등도 함께 읽어내려갈 수 있어 더 가치있던 시간이었다. 보통 각 도시와 함께 인물을 소개할 경우 산만해지는 경우도 많은데 이번 경우에는 장소와 인물의 어울림이 잘 맞아떨어져서 더 즐겁고 명확한 여정이 될 수 있었다. 뭔가 충만해지는 기분. 바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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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대지 3부작 세트 - 전3권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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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의 작품, 완결되기를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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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크리스마스 캐럴 - 1843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찰스 디킨스 지음, 황금진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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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세상에는 돈벌이가 되는 건 아니지만 기쁜 일이 많아요. 크리스마스도 그런 일 중에 하나죠. 저는 매년 크리스마스를 신성한 명칭과 유래로부터 온 경건한 마음가짐을 제외하고서라도, 이런 마음을 따로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친절하고 용서하고 남에게 베풀고 기쁘게 보내는 때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알기론 크리스마스가 일 년 열두 달 중에 남녀노소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굳게 닫힌 마음을 활짝 열고,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목적지가 다른 별종이 아니라 저승까지 함께 갈 동지로 여기는 유일한 때란 말이죠.

p16-17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설레고 신이 났었지만 그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저 맛있는 것도 먹고 음악도 신나고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는 날이니까 마냥 좋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다시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게된 듯 하다. 아마도 사람들에게서 뿜어져나오는 행복한 기운, 타인을 도우면서 충만해지는 선한 영향력으로 가득찬 시기이기 때문 아닐까.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일년 중의 한때.

 

하지만 그런 선한 기운의 바깥에 존재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에브니저 스크루지. 짠돌이 중의 짠돌이로 불리는 바로 그 인물이다. 그에게 크리스마스는 같이 일하는 서기를 하루 쉬게 만들어줘야 하고,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을 모진 말로 쫓아내야 하며, 없는 살림에 나갈 돈만 많아지는 날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만 더 있으면 나이도 한살 더 먹게 되고, 그렇다고 한 시간 전보다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닌 손해만 막심한 날. 같이 저녁을 먹자는 조카의 청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는 더 빨리 오라며 윽박을 질러 서기를 퇴근시킨 스크루지. 외로움이 뭔지도 모른 채 자신만의 성으로 돌아간 그 앞에, 7년 전 죽은 동업자 제이콥 말리의 유령이 찾아온다.

 

말리의 유령이 예고한대로 찾아오는 세 명(?)의 유령. 첫 번째 유령은 스크루지의 과거를 함께 관찰하며 그가 어떤 소년이었는지, 어쩌다 돈만 밝히는 사람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세상에나! 그 과정에서 스크루지는 사랑을 약속한 연인마저 잃었다. 그가 이제는 더 이상 자신과의 사랑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한 연인이 스스로 그의 곁을 떠난 것. 두 번째 유령은 스크루지의 현재상황을 보여준다. 그가 거절한 조카와의 저녁식사 자리, 서기인 밥의 가족들이 보내는 소박하면서도 풍성한 크리스마스 만찬, 그 와중에 몸이 약해보이는 밥의 아들 팀을 향해 솟아나는 스크루지의 연민. 마지막 유령은 스크루지의 미래, 죽음 이후를 생생히 목도하게 한다. 그 누구도 스크루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그의 집에서 쓸만한 물건을 훔쳐 판매하기까지!!

 

유령들의 방문이 하룻밤 꿈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스크루지는 일어나자마자 변화를 시도한다. 밥의 집에 배달할 거대한 칠면조를 주문하고, 한 번도 나간 적 없던 산책을 다녀오며 그 전날 몰인정하게 쫓아보냈던 구빈원 사람들에게 거액을 약속하기도. 그런 그의 모습을 비웃는 사람들도 생겨났지만 그런 이들조차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스크루지는 어느 덧 크리스마스 정신을 기리는 인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간단한 듯 보인다.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어도 베푸는 기쁨을 알지 못하고 인색하게 살면, 결국 그 누구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 내가 이렇게 하니까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고 존경해야 해-라는 개념이 아니라, 나누는 삶, 더불어 풍족해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장 최근의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나갔지만, 그 시기에 느꼈던 풍요롭고 설레던 마음을 다시 기억해보자. 일년 내내까지는 힘들더라도 크리스마스에 활짝 열었던 마음의 문을 그 때처럼 살짝 열어놓는다면, 우리의 일상이 조금은 더 숨쉬기 편해지지 않을까.

 

**<더스토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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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의 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2
하야미 가즈마사 지음, 박승후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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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장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을 되뇌이게 하는 무수한 사건들. 사람들의 인생에서 단 한번 잘못 들게 되는 길목. 그 곳은 어디일까. 한번이 다른 한번으로 연결되고, 또다른 한번으로 이어지는 삶의 고비고비. 그 어딘가에 단 한 사람만 있었더라면, 그 사람이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었더라면 누군가의 삶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나카 유키노의 삶 속에서 그런 따뜻한 손의 간절함을 느꼈다. 잠시나마 호스티스로 일했고 험한 남자를 만나 유키노를 갖게 됐지만, 결국 엄마로서의 각오를 다지고 유키노를 낳아 소중히 길러주었던 그녀의 엄마 히카루. 신경계에 지병이 있어 흥분하면 의식을 잃었던 엄마의 병을 그대로 이어받은 유키노였지만 유년시절은 행복했다. 유키노를 낳기 전 히카루는 좋은 남자를 만나 재혼했고, 남자의 딸인 요코까지 네 식구가 편안하고 온화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히카루의 엄마 미치코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동네에 히카루에 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결국 사고로 히카루가 세상을 떠나면서 유키노는 미치코에게 맡겨져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 유키노는 과거 연인이었던 남자의 일가족을 방화로 몰살시킨 죄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동안 유키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그녀를 거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듣는 유키노의 이야기. 반성하지도 변명하지도 않는 유키노와 달리 변호사는 재심 청구에 앞장선다. 그런 유키노의 주변을 알게 모르게 맴도는 어린 시절 친구 사토시와 쇼. 억울한 희생양인가, 희대의 악녀인가. 미디어는 그녀를 잔인하게 매도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유키노는, 그저 작은 행복을 바란 한 인간이었을 뿐, 오히려 운명의 장난에 놀아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읽고 있고, 흥미를 느끼면서도, 읽기 싫다고 생각하게 되는 작품들이 더러 있다. 읽어내려가기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현실에는 이런 인생이 부디 존재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읽게 되는 이야기들. 때로는 현실의 어느 부분은 소설보다 더 잔혹하고 두려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런 일들에 직접적으로 고통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래서 면역 없이 접하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에, 이렇게 가슴이 도려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 아무리 의문을 제기해봐도 떠오르는 것은 그저 '운명'이라는 단어 뿐. 그리고 유키노에게 간절했을 한조각 따스함. 주변에 유키노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과연 그이에게 손을 내밀어줄 수 있을까.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오히려 사형에 처해진 자신의 삶에 편안함마저 느끼는 듯 보이는 유키노다.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인생. 너무나 쉬운 자신의 목숨에 대한 포기와 처절한 그 체념에 공감되어서 눈물조차 제대로 흘리지 못했다. 눈물은 주변 사람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울어야 할 사람은 유키노였으니까. 가슴에 지나가는 이 서늘한 바람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입양한 아이를 끝내 죽게 만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하루종일 뒤숭숭한 마음에, 그 아이에게도, 유키노에게도 내밀어지지 못했던 따스한 손, 마지막까지 갈구했을 온기만을 헛되게 그려본다.

 

 

 

제68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 제28회 야마모토슈고로상 노미네이트에 빛나는 작품.

 

** 출판사 <비채>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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